화성행행도는 조선 후기에 정조가 화성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여러 행사를 치른 장면을 담은 기록화이다. 수원능행도라고도 한다. 8폭 병풍으로 구성되었는데 첫째 「화성성묘전배도」는 성묘 참배 장면이다. 「낙남헌방방도」·「봉수당진찬도」·「낙남헌양로연도」는 건물 안에서 거행된 행사 장면이다. 「서장대성조도」는 서장대를 중심으로 화성 전역에서 벌어지는 행사 장면이다. 「시흥환어행렬도」·「주교도」는 환궁하는 행렬 장면이다. 화성행행도는 행사 장면을 배치한 구성력, 다양한 표현 형식 등이 매력이다. 이 기록화는 김홍도 화풍으로 제작되었다.
전체 8폭으로 구성되었고,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미술관리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정조가 1795년(정조 19)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화성(華城, 지금의 수원)에서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의 회갑연과 여러 행사를 치른 후 그린 기록화이다.
이 그림은 8폭의 병풍으로 꾸며져 있는데,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 「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낙남헌양로연도(洛南軒養老宴圖)」, 「서장대성조도(西將臺城操圖)」,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시흥환어행렬도(始興還御行列圖)」, 「주교도(舟橋圖)」로 구성되어 있다.
「화성성묘전배도」는 윤 2월 11일 정조가 화성에서의 첫 번째 공식 행사로 거행했던 성묘(聖廟) 참배의 장면이다. 「낙남헌방방도」에는 윤 2월 11일 화성에서 문무 양과에 걸친 과거 시험을 본 뒤 낙남헌에서 합격자를 발표하고 시상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봉수당진찬도」는 윤 2월 13일 정조가 화성행궁(華城行宮)의 정당인 봉수당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진찬례(進饌禮)를 올리는 잔치 장면이다. 「낙남헌양로연도」는 윤 2월 14일 정조가 낙남헌에서 영의정 홍낙성(洪樂性) 등 능행에 수행한 노대신(老大臣) 15명과 수원부에 사는 노인 등 총 384명에게 양로연을 베푸는 장면이다.
「서장대성조도」는 윤 2월 12일 밤 정조가 화성의 서장대에 갑옷을 입고 행차하여 군사 조련을 실시하는 장면이다. 「득중정어사도」는 윤 2월 14일 오후 정조가 화성행궁 안의 득중정(得中亭)에서 신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한 다음 저녁에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장면이다. 「시흥환어행렬도」는 윤 2월 15일 화성행궁을 출발하여 서울로 올라오면서 시흥행궁(始興行宮) 앞에 다다른 장대한 행렬 장면이다. 「주교도」는 윤 2월 16일 노량진의 주교(舟橋)를 건너며 서울로 환궁하는 정조와 혜경궁의 행렬 장면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꾸며진 이 병풍 그림은 일련의 장대한 행사 장면을 긴 화폭의 병풍에 효과적으로 배치한 구성이 주목된다.
「화성성묘전배도」에서는 성묘의 전배하는 장면이 주산을 배경으로 좌우로 톱니바퀴 모양으로 에워싼 능선 속에 표현되어 있다. 산수의 배경이 행사의 권위를 더욱 돋보이게 배치되어 있다. 그 가운데 화면 왼쪽에는 문성왕묘(文聖王廟)로 이어지는 길이 트여 있어 행렬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낙남헌방방도」, 「봉수당진찬도」, 「낙남헌양로연도」는 건물 안에서 거행된 행사의 장면을 묘사한 구도이다. 화면 위 전각을 중심으로 마당에 정연한 행사 장면을 위주로 배치했고, 자유로운 행색의 구경꾼까지 삽입하였다. 「득중정어사도」는 건물 밖 야외의 행사 장면이어서 주변에 자리한 건물들의 일각이 구성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서장대성조도」는 서장대를 중심으로 화성 전역에서 벌어지는 행사 장면으로 전체상을 살리면서 행사 장면도 충실히 표현하는 두 목표를 함께 충족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 행사는 밤에 치러진 장면인데, 곳곳에 불을 밝힌 것 외에는 거의 밤이라고 느껴지지 않아서 야경 표현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시흥환어행렬도」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긴 행렬을 표현한 장면이다. ‘之’자로 배치한데다 원근법을 적용하여 후미를 아득하게 표현하여 행렬의 장대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주교도」도 역시 원근법을 사용하여 배다리의 위용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행사의 내용에 걸맞게 행사의 위용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 궁중 기록화이다. 장대한 행사 장면을 효과적으로 배치한 구성력, 다양한 표현 형식과 화려하고 밝은 색채, 그리고 구경꾼에 의한 자유로운 풍속 장면의 삽입 등이 이 그림의 매력이다.
배경의 청록산수(靑綠山水)를 보면, ㄱ자 또는 ㄴ자 형으로 바위의 결을 묘사한 준법(皴法)의 표현과 녹각지(鹿角芝)의 수지법(樹枝法)을 선호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김홍도(金弘道), 이인문(李寅文) 등의 그림에 나타나는 양식으로 이 병풍이 김홍도 화풍으로 제작되었음을 보여 주는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