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경회첩 ()

기사경회첩 표지
기사경회첩 표지
회화
유물
1744년(영조 20)에 영조가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계첩(契帖).
정의
1744년(영조 20)에 영조가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계첩(契帖).
개설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은 1744년 9월에 영조가 51세의 나이로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여 기로소에서 주관하여 제작한 계첩이다. 조선시대 기로소는 정2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70세 이상의 관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국가 원로 우대 기관이었다. 왕은 60세 이상이 되면 태조의 고사를 따라 기로소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숙종·영조·고종 등이 이에 해당하였다. 『기사경회첩』의 기본 체제는 1719년(숙종 45)에 숙종이 기로소에 들어갔을 때 제작된 『기사계첩(耆社契帖)』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계첩은 영조의 어첩 자서, 기로소에 들어간 날 영조가 쓴 어제(御製) 어필, 어제에 차운한 기로신의 시, 경희궁 경현당에서 선온할 때 영조가 지은 어제, 어제에 화답한 기로신의 연구(聯句), 좌목(座目), 행사도 5장면, 기로신들의 초상화, 각 행사에 참여한 기로신의 명단, 이성룡(李聖龍, 1672∼1748)의 발문, 계첩 제작에 참여한 실무자 명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행사도 5점은 9월 9일 영조가 몸소 기로소에 행차하여 어첩에 글씨를 쓰는 장면을 그린 「영수각 친림도(靈壽閣親臨圖)」, 이튿날인 10일 기로신들이 경희궁 숭정전에서 진하례를 올리는 장면을 그린 「숭정전 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같은날 저녁 경현당에서 기로신들에게 선온한 장면을 그린 「경현당 선온도(景賢堂宣醞圖)」, 그리고 10월 7일 숭정전에서 치러진 진연을 마치고 영조가 내린 음식과 음악을 앞세우고 기로소로 돌아가는 기로신들의 행렬을 그린 「사악선 귀사도(賜樂饍歸社圖)」, 기로소에 도착한 기로신들이 벌인 연회를 그린 「본소 사연도(本所賜宴圖)」 등이다. 초상화는 기로신들의 반신상으로 이의현(李宜顯, 76세), 지중추부사 신사철(申思喆, 74세), 행부사직 윤양래(尹陽來, 72세), 김유경(金有慶, 76세), 이진기(李震箕, 92세), 정수기(鄭壽期, 81세), 이하원(李夏源, 81세), 이성룡(73세), 조원명(趙遠命, 70세), 조석명(趙錫命, 71세) 등 10명의 초상이 관직순으로 장첩되어 있다.

특징

대부분의 궁중 기록화에는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기사경회첩』의 맨 마지막 장에는 계첩 제작을 감독한 관리[監造官] 고정삼(高挺參), 글씨를 쓴 서사관(書寫官) 장수대(張壽大), 그림을 그린 장득만(張得萬, 1684∼1764), 장경주(張敬周, 1710∼?), 정홍래(鄭弘來, 1720∼?), 조창희(趙昌禧) 등 화원 4명의 이름이 쓰여 있다. 고정삼과 장득만은 숙종 대의 『기사계첩』에도 같은 자격으로 참여하였으며 정홍래를 제외한 3명은 모두 어진도사(御眞圖寫)의 경력을 가진 당대 최고의 화원이었다.

의의와 평가

『기사경회첩』은 기로소와 관련된 궁중 회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제작 일시가 뚜렷하고 제작 실무자 명단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18세기 전반 궁중 기록화 및 초상화의 기준작이 될 만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영조 대의 잔치 그림』(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조선시대 궁중 기록화 연구 』(박정혜, 일지사, 2000)
집필자
박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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