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서산(瑞山). 1406년(태종 6) 대사성이 된 뒤, 1408년에는 좌사간대부, 생원시원(生員試員)이 되었다. 당시 태종이 학문에 조예가 깊던 김과(金科)와 권근(權近) 등이 모두 여러 관직을 겸직하여 바빴던 관계로 시학자(侍學者: 왕과 왕세자와 학문을 논하는 일을 맡은 사람)를 청하자, 유생 중에 이수(李隨)를 천거하였다. 그 뒤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를 지낸 뒤 인녕부윤(仁寧府尹)이 되었고, 경사(經史)에 통달하여 국학장관(國學長官)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