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세이(洗耳), 호는 유항(柳巷). 유영문(柳榮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격(柳格)이다. 아버지는 홍문관교리 유시행(柳時行)이며, 어머니는 군수 이대화(李大禾)의 딸이다.
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교육을 받았다. 글재주가 비상하여 9세에 매화화분을 보고 좋은 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627년(인조 5) 진사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와 주서·설서 등 관직을 역임하였다. 1632년에 전적으로 승진되고, 다시 정언(正言)·수찬(修撰) 등의 요직을 거쳤다. 1636년 간성현감으로 있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힘을 다하여 난민들을 위로, 구제하였다. 1638년 이조좌랑이 되고, 이듬해 관서어사(關西御史)로 나가 관원들의 비위를 척결하였다.
이듬해 내직으로 들어가 헌납(獻納)을 거쳐, 1642년에 응교(應敎)가 되고, 이어 사인(舍人)·사성·상의원정(尙衣院正)·태복시정(太僕寺正) 등을 역임하였다. 1645년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참상을 당하자, 애통해하다가 병을 얻어 끝내 죽었다. 겉으로 유순하였지만 안으로는 방정하며 성품이 검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