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정숙(靜叔). 할아버지는 참찬 이몽량(李夢亮)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이며, 어머니는 감찰 오언후(吳彦厚)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어머니의 절행(節行)으로 정경세(鄭經世)가 경연(經筵)에서 천거하여 벼슬에 나갔다. 1631년에 북방 야인이 자주 침구하므로 자진출전하여 공을 세웠고,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왕을 호종하였으며, 예조판서라 가칭하여 청나라 진지에 왕래하기도 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홍원현감·영암군수를 거쳐 동지중추부사로 승진하였으나, 당시 평안·황해 양도가 호란으로 인하여 문란하여졌던 민정(民情)이 회복되지 않았고, 연행(燕行)의 요충지이며 청나라 사신들이 빈번히 왕래하는 곳이어서 많은 읍들이 피폐하였으므로,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1638년에 영원군수로 부임하였다.
그 뒤 양덕현감·수안군수를 거쳐, 1651년(효종 2)에 백령첨사·이산군수·풍천부사·신천군수·서흥부사를 지냈다. 그 뒤 1664년(현종 5)에는 장연부사·상원군수 등 관서지방의 외직을 역임하였다. 그 뒤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러 정헌대부(正憲大夫)의 위계에 올랐다. 풍천부사에서 체임(遞任)할 때에는 오직 쌀 한 섬만을 싣고 귀향할 만큼 청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