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하경(夏卿), 호는 매산(梅山) 또는 육우당(六寓堂). 이우인(李友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찬성 이상의(李尙毅)이고, 아버지는 지평 이지안(李志安)이며, 어머니는 영제군(寧堤君)이석령(李錫齡)의 딸이다. 실학자 이익(李瀷)의 아버지이다.
1654년(효종 5)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62년(현종 3)에 내시교관을 지내고, 1666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이듬해 가주서·사옹원직장·전적, 예조좌랑·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1668년 지평(持平)이 되고, 1674년 수찬(修撰)·헌납이 되고, 그 뒤 1676년 공조참의·대사성이 되고, 1678년에는 도승지·대사헌에 이르렀다.
1680년(숙종 6) 대사간 재임시 영의정 허적(許積)의 서자인 허견(許堅)의 불법을 허목(許穆)이 상소하여 관직에서 쫓겨나자 허목을 두둔하다가 숙종의 진노를 사서 진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얼마 뒤 관직을 그만두었다. 김석주(金錫胄)와 매사에 뜻이 맞지 않아 운산에 유배되고, 1682년 배소에서 죽었다.
그는 시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붓을 들면 몇 편의 시를 지었고, 또한 명필이었다. 1685년 복관되었다. 저서로는『육우당집』과 비문으로는 「문수사풍담대사비(文殊寺楓潭大師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