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종은 조선시대, 24대 임금 헌종의 부친이며 추존왕이다. 효명세자로 더 알려져 있다. 4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1세에 관례를 치렀고 같은 해에 조만영의 딸과 혼인하였다. 외척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순조의 뜻에 따라 19세에 대리청정을 시작하였다. 이때 자신의 측근을 인사와 경제 관서에 포진하고, 백성들의 청원에도 귀를 기울였다. 1827년에 순조와 순원왕후에게 존호를 올리고 순조 등극 30주년을 맞이하여 연향을 베풀면서 악장을 친히 짓고 정재를 재정비하였다.
1809년(순조 9)에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당일에 원자로 호가 정해졌고, 4세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이름은 영(旲), 자는 덕인(德寅), 호는 경헌(敬軒), 학석(鶴石), 담여헌(淡如軒), 시호는 효명(孝明)이다. 1817년 9세에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1세에 경희궁 경현당에서 관례를 치르고, 부사직 조만영의 딸을 왕세자빈으로 맞이해서 아들(후일의 헌종)을 두었다. 1830년(순조 30)에 22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의 아들 원손(元孫)은 조부인 순조가 사망하자 왕위에 올라 부친인 효명세자를 임금으로 추존하고 묘호를 익종으로 하였다. 익종의 형제로는 모친 순원왕후가 낳은 3명의 누이가 있었는데, 명온공주, 복온공주, 덕온공주다.
익종은 왕세자로 생을 마쳤으나 그의 아들이 순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임금으로 추존되었다. 이후 익종비인 신정왕후가 고종을 양자로 삼음으로써 대한제국이 수립된 이후에는 문조(文祖) 익황제(翼皇帝)로 추존되었다.
1827년(순조 27)에 19세의 나이로 외척 안동 김씨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순조의 뜻에 따라 대리청정을 하였다. 대리청정 초에 자신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게 정치세력을 재편하여 측근들을 이조 · 병조 · 호조 · 선혜청 등 인사와 경제를 담당하는 관서에 포진하였다.
또 새로운 인재 육성에도 관심을 두어 과거 시험의 폐단을 엄금하고 응제, 강(講), 제술 등의 시험 횟수를 늘렸다. 군사력 확보를 위해 군영의 군관과 군병에 대한 시재를 꾸준히 시행하고, 군사 훈련을 겸한 능행도 1년에 평균 2회 정도 거행하였다. 오래된 민은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서 상언과 격쟁을 다시 활성화하여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한편으로 왕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1827년(순조 27)에는 원손 탄생을 계기로 순조와 순조비에게 존호를 올렸다. 1829년에는 순종 등극 30주년과 40세를 축하하여 진작 · 진찬례 등의 연향에 사용되는 악장을 친히 짓고 정재를 재정비하였다. 또 조부 정조와 마찬가지로 궁궐의 영건에도 힘을 기울였다. 상세하게 세부 묘사를 한 동궐도를 만들었고, 의두합(倚斗閤)과 연경당(演慶堂) 등을 영건하였다.
익종이 지은 시, 악장, 치사 등이 그의 문집인 『경헌시초(敬軒詩抄)』, 『 학석집(鶴石集)』, 『담여헌시집(淡如軒詩集)』, 『 경헌집(敬軒集)』, 『 열성어제(列聖御製)』 등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