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홍보(弘甫), 호는 삼도(三島). 아버지는 임희중(任希重)이다.
1576년(선조 9)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진보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전 현감 박광전(朴光前), 능성현령 김익복(金益福), 진사 문위세(文緯世) 등과 보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와병 중이던 박광전 대신 의병장으로 추대되고, 순천에 이르러 장윤(張潤)을 부장으로 삼았다. 다시 남원에 이르기까지 1,000여명을 모집하여 전라좌도 의병장이 되었다. 전라우도 의병장 최경회(崔慶會)와 함께 장수·거창·합천·성주·개령 등지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1593년 제2차진주성싸움에 그는 부장 장윤에게 정예군 300명을 이끌고 먼저 성에 들어가게 하고, 자신은 밖에서 곡식과 무기를 조달하다가 적이 이미 성을 포위하였으므로 성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성의 함락과 함께 장윤은 전사하였는데, 그는 함께 죽지 못한 것을 종신토록 한스럽게 생각하였다. 선조가 환도한 뒤에 양주·정주·해주·순창 등지의 목사를 역임하였다. 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삼도실기(三島實紀)』가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