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이라고도 한다. 거울면이 약간 오목하며 뒷면에는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고 주연(周緣)에는 단면 반원형의 테두리가 돌고 있다. 가운데에서 약간 치우쳐 허리가 오목한 리본모양의 고리가 2, 3개 붙어 있다.
청동기시대 전기에 사용되었던 거친무늬거울[粗文鏡]의 무늬에 비해 기하학적인 무늬가 다양해지고 무늬가 섬세해지므로 잔무늬거울이라 한다. 대개 한국식 동검 후기형식과 동과(銅戈)·동모(銅矛)·방울류 등과 반출되는 예가 많아 늦은 시기에 유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은 약 20점에 달한다. 한반도에서는 평안북도와 함경도지방에서는 보이지 않고, 대동강유역·강원도지방·금강유역·전라남도지역·경주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또한 일본의 구주(九州)·나라(奈良)지방에서도 발견되어 거친무늬거울보다 분포지역이 전체적으로 남하하고 있다. 유적은 대부분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돌널무덤 또는 토광묘계통으로 알려져 있다.
동질은 은백색이 나는 백동(白銅)으로서 양호하며, 크기는 지름이 8∼21㎝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대개 12∼13㎝ 내외가 대부분이다. 전라남도 영암에서 발견된 석제 거푸집은 잔무늬거울의 특징이 모두 구비되었으나 무늬가 없다.
정밀한 무늬를 제작하는데는 석제 거푸집으로는 불가능해 밀랍으로 원형을 만들고 진흙으로 틀을 만든 이범(泥範)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유물로 발견된 것은 없다. 구도는 뒷면의 기하학적인 무늬로 보아 외구(外區)·중구(中區)·내구(內區)의 3구로 나뉜다.
외구는 평행선으로 채워진 톱날무늬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배치한 대향(對向)삼각열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중간중간에 원 8개를 배치한 것도 있고, 또 복잡한 세선문대(帶)로 구획하기도 하였다.
중구는 외구와 내구를 각각 몇 개의 동심원문으로 구분하고, 평행선으로 채워진 둔각삼각형띠, 또는 교차하는 사선문띠, 기타 동심원을 구획해 방사선띠와 무문띠를 교대로 배치한 무늬띠로 채웠다.
내구는 세로·가로로 선을 그어 이루어진 사각형을 대각선으로 구획하고 서로 방향이 다른 평행선으로 채운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1971년 국보로 지정된 정문경(잔무늬거울)은 크기도 가장 크며 무늬도 가장 섬세한 완성형이다. 잔무늬거울은 청동기시대 전기의 거친무늬거울이 발전된 형태로서, 서기 전후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듯하며 철기의 전래·확산과 더불어 소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