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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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가서 산다고 믿는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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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저승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가서 산다고 믿는 사후세계이다. 명부·황천·유계 등으로도 불린다. 저승에 극락과 지옥이 있다는 관념은 도교와 불교의 저승관이 한국에 도입된 이래 민간에서 통용되었다. 이때 극락과 지옥은 저승의 하위개념이다. 한국에서는 다종교가 공존하는 특성을 보이는데 종교마다 나름의 저승관을 갖고 있어서 여러 종류의 저승 관념이 공존한다. 한국의 전통종교인 무, 불교, 도교의 저승관은 관련 의례나 전승하는 민담·문헌 등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에 반해 유교의 저승관은 상당히 막연한 편이다.

목차
정의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가서 산다고 믿는 사후세계.
내용

이승이 이생[此生]에 어원을 두고 있듯이 저승은 차생[彼生]에서 유래하였다. 저승은 후생(後生) · 타계(他界) · 명부(冥府) · 음부(陰府) · 명도(冥途) · 명토(冥土) · 황천(黃泉) · 유계(幽界) · 유명(幽冥)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가운데 명부와 음부는 이승의 관부(官府)와 같은 개념을 저승에 상정한 것이다. 저승에 극락과 지옥이 있다는 관념은 도교와 불교의 저승관이 한국에 도입된 이래 통용된 것이고, 극락과 지옥은 저승의 하위개념이 된다.

종교마다 나름의 저승관을 갖고 있다. 한국종교는 다종교 공존의 특성을 지닌다. 여러 종교가 동시에 함께 사회에 존재하면서 신앙되기에 한국에는 여러 종류의 저승이 공존하는 셈이다.

도교와 불교의 것 외에 조선 후기 이 땅에 들어온 기독교의 저승이 있고, 또 광복 이후에는 비록 소수의 신봉자에 불과하나 이슬람의 정착으로 그 저승 마저 우리 나라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밖에도 수많은 민족종교와 신흥종교가 조선 말 이래 생겨나고 유입된 바, 이들도 나름의 저승관을 갖고 있기에 실로 다양한 저승이 한국에서 관념 · 신앙되어 온다.

이들 저승이 한국인의 관념 속에 기계적으로 공존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 전체의 의식과 무의식에는 이들이 층위를 이루거나 혼재하여 있고, 각자의 종교에 따라 어느 저승관이 주로 신앙되기도 한다. 한편 여러 저승관은 한국 역사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각기 나름의 독특한 한국적 저승관을 형성해 온다.

이런 성격은 한국종교사의 흐름 속에서 잘 드러난다. 고조선이래 한국인의 전통 종교는 무(巫 : 샤머니즘)이다. 삼국시대 중엽 유교 · 불교 · 도교가 그 기반 위로 수용된다. 이래 이들 종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국문화의 형성 · 전개에 각기 기여해온 것이다.

한국의 전통종교라면 무와 유교 · 불교 · 도교를 들게 된다. 그에 따라 이들의 저승관이 한국의 주된 저승을 이루어온다. 이들 가운데 무와 불교 · 도교는 꽤나 구체적인 저승관을 형성하고 관련의례를 통하여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유교의 저승관은 막연한 편이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이 분리되어 백은 신체와 함께 분묘에 남고 혼은 사당에 모셔야 하는 것으로 믿는다. 조상의 혼은 그리하여 조상신이 되나 신체의 소멸과 병행하여 혼도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서 서서히 사라지는 것으로 여긴다. 한편 조상 가운데 시조신(始祖神)이나 역사에서 공이 높은 신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본다.

유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저승으로 황천이 있다. 황천은 본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것은 『춘추좌씨전 春秋左氏傳』 첫째 권에서 장공(莊公)과 영고숙(潁考叔)과의 대화 가운데 나타나는 죽은 사람의 세계이다. 거기서 황천은 사람이 죽어 지하에 매장되는 곳이고 땅 밑에 가로 세로로 뚫린 동굴과 같은 것을 상상케 한다.

이것이 『맹자(孟子)』에 언급되고 유학자 · 문인들의 입에 회자되면서 한국의 유학자들이 즐겨 차용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다시 한국의 민간신앙에 영향을 주어 한국인들은 언제부터인가 상두소리 속에서 황천을 노래한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황천길이 멀다더니 앞산인줄 왜 몰랐나”가 그것이다.

불교의 저승은 극락과 지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락은 안양(安養) · 안락(安樂) ·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 등으로도 불린다. 그것은 이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불토(佛土)를 지나서 있다는 정토(淨土)이다. 모든 일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이 없는 자유롭고 안락한 이상향으로 믿어진다.

『무량수경 無量壽經』과 『아미타경 阿彌陀經』 등 정토종 경전에는 정토가 잘 묘사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대지는 금 · 은 · 유리 · 산호 · 호박 등의 칠보(七寶)로 되어 있어 광명이 아름답게 비치고, 그 대지는 무제한으로 넓다. 춘 · 하 · 추 · 동 4 계절의 변화도 없고 항상 춥지도 않고 온화하다.

칠보로 된 수목이 정연하게 무성한 가운데 시원한 바람이 칠보 나무들 사이로 불면 기묘한 음악이 연주된다. 강당 · 정사(精舍) · 궁전 · 누각 등 뛰어난 건물들도 모두 칠보로 되어 있다. 건물들 좌우에는 역시 칠보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못이 있는데 못에는 청 · 홍 · 황 · 백의 연꽃이 피어 있다.

불교의 정토는 아미타불의 정토 외에도 아축불(阿閦佛)의 동방정토로서의 묘희(妙喜)세계, 약사불의 유리광(瑠璃光)정토, 미륵보살의 도솔(兜率)정토, 『도사경 兜沙經』에 설한 시방[十方]정토, 관음의 보타락(補陀落) 정토, 『유마경 維摩經』의 유심(唯心)정토, 화엄정토 등등 무수하다.

극락의 관념과 그에 대한 신앙은 불교가 삼국에 전해지면서 진즉 도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정토신앙이 민중 사이에 널리 유포되면서 한국인의 극락신앙 형성에 구체적이고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중국불교에서 지옥개념의 형성은 여러 단계를 거친다. 당대(唐代)에 와서야 인간이 생전의 죄악에 따라 저승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시왕(十王)신앙이 발전을 보게 되고 명부가 체계화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통일신라 때에 불교의 지옥 개념이 들어오고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지옥 관념이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선조 때 휴정(休靜)대사가 지었다는 <별회심곡 別回心曲>에는 조선 중기에 신앙되던 불교의 지옥이 소상하게 그려져 있다.

그것에 의하면 지옥의 십대왕으로 제일전에 진광(秦廣)대왕, 제이전에 초강(初江)대왕, 제삼전에 송제(宋帝)대왕, 제사전에 오관(五官)대왕, 제오전에 염라(閻羅)대왕, 제육전에 변성(變成)대왕, 제칠전에 태산(泰山)대왕, 제팔전에 평등(平等)대왕, 제구전에 도시(都市)대왕, 제십전에 오도전륜(五道轉輪)대왕이 열거된다.

이 열시왕의 명을 받은 일직사자(日直使者)와 월직사자(月直使者)는 이승에 와 해당 인간의 집을 찾아서는 그 사람의 성명 삼자를 부르고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끌고 간다. 저승은 거기서 바로 대문 밖이다.

저승 원문(轅門)에는 우두나찰(牛頭羅刹)과 마두(馬頭)나찰이 지키고 있다. 열두 대문으로 들어가면 어두귀면(魚頭鬼面) 나찰들이 기치창검에 형벌기구를 차려놓고 전후좌우에 벌어서서 명을 기다리는 가운데 열시왕이 좌개(座開)하고 최판관(崔判官)이 문서를 잡고서는 남녀 죄인을 잡아들여 다짐받고 봉초(捧招:죄인을 문초하여 구두로 진술 받던 일)한다. 거기서 인간 세상에 나가 무슨 선심(善心)을 하였는가를 따진다.

죄인은 먼저 풍도옥(酆都獄)에 가두고 죄목을 물은 후에는 온갖 형벌이 가해진다. 그리고 망자의 죄의 경중을 가려서 도산(刀山)지옥 · 화산(火山)지옥 · 한빙(寒氷)지옥 · 검수(劍樹)지옥 · 발설(拔舌)지옥 · 독사(毒蛇)지옥 · 아침(牙針)지옥 · 거해(鉅解)지옥 등으로 죄인을 처결한다.

반면 착한 사람은 대웅전에 초대되어 다과를 접대 받는다. 그리고 옥제(玉帝)에게 주문(奏文)하고 석가여래 아미타불에게 제도(濟度)토록 문서를 보내고 산신(産神)을 불러 의논하여 이승으로 다시 태어나 귀한 몸이 되게 한다. 옥제는 도교의 옥황상제이고 아기의 출산을 담당하는 산신 또한 도교의 신령이다. 당시 불교지옥이 도교의 영향을 받아 있음을 보인다.

<별회심곡>에는 이와 함께 시왕의 명부가 행정관청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곳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으나, 조선조에 유통되던 지옥 관련 불경에 의하면 제일전의 진광대왕은 망자의 선악을 저울질하여 극락으로의 직행이나 제십전으로의 송치 등을 판결한다.

각 전의 대왕은 망자의 죄를 심사하고 마지막 제십전의 오도전륜대왕은 망자가 가게될 지옥 · 아귀 · 축생 · 인간 · 천도 등 5도의 윤회전생(輪廻轉生)을 결정한다. 악업이 중한 죄인이 갈 지옥으로는 8대지옥(大地獄)과 각 지옥 아래로 16소지옥(小地獄)이 있어 죄인은 그곳을 거쳐가며 처벌과 고통을 받는다. 지옥은 한국불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 등에 탱화로 묘사되어 오랫동안 한국인에게 지옥의 두려움과 선심공덕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도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불교의 도입과 때를 같이 한다. 그 뒤로 조선 중기에 이르도록 도교는 특히 왕실을 중심으로 신앙되었다. 중국에서 도교의 지옥이 확립된 것은 불교지옥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일이다. 그러므로 도교의 지옥이 이 땅에 알려지고 신앙된 것도 통일신라 때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도교의 지옥은 불교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시왕이 명부에 있고 지옥의 처벌을 다 받은 이가 육도로 전생하며 착한 사람이 인도환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명부에 여러 다른 관청이 더 있고 지옥 관련 신령이 다르다는 점이 불교지옥과 구분된다. 불교의 지장(地藏)이 도교지옥의 수장(首長)으로 되어 있어 지옥 형성에 불교와 도교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음이 드러난다.

시왕신앙이 조선시대 도교에서도 널리 성행하였음은 성현(成俔)『용재총화 慵齋叢話』에서 확인된다. 그 가운데 성현이 직접 참여했던 초제(醮祭 : 별을 향하여 지내는 제사)의 기록에 의하면 소격서(昭格署)의 내외제단에서 여러 신령들과 함께 명부시왕에도 제사하고 있었다.

한편 중국도교의 저승 관련 문헌인 『옥력경세편 玉歷警世篇』은 조선조 말까지 왕실과 사대부 부녀자들에 의해 필사된 바, 도교 저승의 신앙이 상류사회에서 일정한 지지세력을 얻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도교가 이렇듯 한국의 왕실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신앙되어 오면서 도교의 지옥은 한국 무의 저승관념에도 영향을 끼쳤다.

무(巫)는 고조선 이래 한국 종교문화의 기층신앙을 이루어오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신도를 두고 있다. 불교와 도교는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어 무의 종교 문화적 바탕 위에 수용되고 토착화하였다. 그리고 이들 종교가 서로 공존하면서 상호 영향 아래 나름의 종교적 관념을 형성 · 전개해 나갔다. 따라서 무는 한국인의 고유한 저승관을 간직하면서 불교와 도교의 여러 저승 관념을 그 안에 수용하여 있다.

무의 저승관은 망자를 위한 의례에 표현된다. 망자천도(亡者薦度)굿은 각 지역마다 있어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서울 · 경기지역의 진오귀 또는 새남굿, 함흥의 망묵이굿, 평안도 · 황해도의 수왕[十王]굿, 제주도의 시왕맞이, 경상도의 오구굿, 전라지역의 씻김굿 등이 그러하다. 이들 망자천도굿에는 저승과 관련된 많은 상징과 의례가 펼쳐지지만, 하나의 거리로서 구송되는 <바리공주> 신가(神歌)는 한국무 고유의 저승관과 그에 대한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가장 잘 보여준다.

저승은 거기서 대문 밖의 세계이다. 죽을병에 든 부모를 살리는 약을 구하러 바리공주는 문밖을 나서는데, 동서를 분간하기 어렵고 천지가 아득해지면서 바로 저승길에 오른다. 저승에 가서 바리공주는 장기 · 바둑을 두는 신선을 만나고 십대왕이 죄인들을 문초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십대왕의 안내로 여러 지옥을 둘러본다.

부처에게서 받은 나화(羅花)로 그녀는 지옥문과 지옥의 성(城)들을 깨뜨리고 무수한 죄인들을 극락과 시왕으로 보낸다. 그런 다음 무장승을 만나 물긷고, 나무하고, 일곱 아들을 낳아주고는 약을 얻어서 온 가족이 이승으로 나온다. 오는 길에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이 있고, 이승에 나오자 부모의 상여를 만나 바리공주는 꽃과 약수로 부모를 살려낸다. 그리고 바리공주는 망자를 천도하는 무당이 된다.

<바리공주>신가의 저승에는 불교와 도교의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십대왕은 불교 · 도교 양쪽에 걸리는 것이고, 무상선(無上仙)이 와전된 것으로 보이는 무상선과 신선은 도교의 것이다. 죽은 이를 살리는 약이란 개념도 도교적이다.

바리공주가 부처에게서 받았다는 나화는 우담바라화(優曇鉢羅花)의 약칭인데, 삼천 년 만에 한 번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할 때마다 핀다는 이 꽃을 바리공주가 세존에게서 받았다는 것은 그녀가 부처의 권능을 위임받았음을 뜻한다. 그 꽃으로 바리공주가 지옥문과 지옥성을 깨뜨려 죄인들을 구해낸 것은 『목련경 木連經』에서 목련존자가 세존의 도움으로 지옥을 파하고 어머니를 그 고통에서 구하는 불교의 설화를 차용한 것이다.

저승으로 갈 때 건너야 할 강이란 개념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저승관에서 두루 확인되고 있지만, <바리공주>신가에서의 그것은 불교의 저승관에서 빌어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무의 이 저승 신가에서 불교와 도교의 요소를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꽃밭과 그 꽃으로써 죽은 이를 재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극락과 지옥으로 분화된 저승이 아니라 그렇게 분화되기 이전의 한국 무의 원형적 저승이다. 저승의 꽃밭은 뒷동산에 있고 신가에서 꽃밭동산은 한국인이 마을 주변에서 흔히 보는 그런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바리공주가 그녀의 부모를 천도 · 재생하게 한 곳은 그 뒷동산의 꽃밭이다.

국조(國祖) 단군(檀君)이 일찍이 은퇴하여 산신이 되었다 하거니와, 한국인은 죽어 본향(本鄕) 산에 묻힌다. 한국인의 저승은 결국 뒷동산의 본향꽃밭이고 한국인은 죽어 그 본향꽃밭에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믿어 온다.

한국인의 저승으로서의 본향꽃밭과 꽃에 의한 재생은 <원앙부인본풀이>로 불리기도 하는 제주도 <이공본풀이>계통의 신가에도 잘 드러난다. 평안북도의 <신선세텬님청배>, 경남 김해지역의 <악양국왕자노래>, 동해안 신가<오구대왕놀이>가 이 계통에 든다.

한국 무의 한 원형신화인 이 신가는 계속 무의 신가로 존속해오는 한편,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12년(643) 경주함월산(含月山) 기림사(祇林寺)의 연기설화로 되어 나오고, 이후 <안락국태자경 安樂國太子經>으로 정착되었다가 조선초 『석보상절(釋譜詳節)』『월인석보(月印釋譜)』에 편입되며, 나아가 민간에서는 소설 <안락국젼>과 불교소설 등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기림사 연기설화에는 범마라국(梵摩羅國) 임정사의 광유성인(光有聖人)이 500제자를 거느리고 꽃밭수리를 항규(恒規)로 삼고 있다. 서천국(西天國) 사라수(沙羅樹)대왕이 자비롭고 보시를 즐겨함을 들은 광유성인은 제자 바라문을 그곳에 보내 꽃밭수리에 동참할 사람을 구한다.

사라수대왕은 먼저 여덟 여인을 뽑아 보내고, 성인이 재차 바라문을 통해 대왕이 직접 꽃밭 수리의 공덕을 이루라 하자, 왕비 원앙부인과 함께 임정사로 향한다. 임신 중이던 원앙부인이 도중에 발병으로 인해 더 이상 동행할 수 없게 되자 대왕과 상의해서는 자신과 태어날 아기를 죽림국(竹林國) 자현장자 집에 종으로 판다.

원앙부인과 아들 안락국은 자현장자에게 온갖 시련을 겪다가 안락국이 아버지를 찾아 도주한다. 강을 건너 임정사에 간 안락국은 아버지를 만난다. 성인은 어머니가 자현장자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알려주고 안락국에게 꽃을 주고 가서 어머니를 환생시키라 한다.

죽림국에 돌아온 안락국은 세 토막 내어 죽여 대밭에 버려진 어머니 사신을 수습하고는 꽃으로 어머니를 살려낸다. 모자는 아미타불의 용선(龍船)을 타고 임정사에 가 아버지를 만나고 성인을 뵙는다. 자현장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신가에서는 끝에 원앙부인이 망자를 천도하는 무당이 된다.

이 원형신화에서 강을 건너 도달하는 임정사는 이승이 아닌 저승 상상계이다. 그곳에 꽃밭이 있고 신령은 그 꽃밭수리를 한다. 그 꽃은 이승 현상계 인간들의 기도와 정성으로 피어나고 인간은 그 꽃으로 재생을 얻는다. 그것은 <바리공주>에 보이는 꽃밭과 동일한 것이고 한국인 본향의 꽃밭이다.

불교의 극락에 꽃밭이 있으나 그것은 인위적이고, 도교의 상상계에도 꽃밭이 보이나 그것은 인간세계를 벗어난 초월적 성격을 띤다. 한국인의 저승으로서의 본향꽃밭은 그것들에 비하여 바로 문밖의 뒷동산에 즉자적으로 펼쳐져 있는 특징을 갖는다. 그것은 한국의 자연환경인 금수강산에 바탕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저승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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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옥 연구-무(巫)의 저승」(조흥윤, 『샤머니즘 연구』 창간호, 한국샤머니즘학회, 문덕사, 1999)
「안락국전 연구-원앙부인본풀이」(조흥윤, 『샤머니즘 연구』, 한국샤머니즘학회, 제2집,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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