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덕(盈德). 자는 언결(彦潔). 아버지는 정창국(鄭昌國)이다.
1583년(선조 16)에 무과에 급제하여 이탕개(尼湯介)의 변에 공을 세우고, 여러 벼슬을 거쳐 1592년에 김제군수로 나갔다.
이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권율(權慄)의 지휘하에 나주판관 이복남(李福男), 해남현감 변응정(邊應井), 의병장 황박(黃樸) 등과 함께 웅치(熊峙)를 방어하였다.
이 때 금산을 거쳐 전주를 점령하려는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 휘하의 일본군을 7월 7·8일 양일간에 걸쳐 웅치에서 백병전을 벌이면서 끝까지 방어하여 그들의 진격을 막고, 모두 전사하였다.
일본군은 그 충절에 경의를 표시하여 ‘조조선국충의간담(弔朝鮮國忠義肝膽)’ 라는 묘비를 세웠다. 1690년(숙종 16)에 정문이 세워졌고, 뒤에 병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영해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