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낙보(樂甫), 호는 수와(睡窩)·휴와(休窩). 조계원(趙啓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희석(趙禧錫)이고, 아버지는 도정 조태래(趙泰來)이며, 어머니는 윤계(尹堦)의 딸이다.
1691년(숙종 17) 진사시에 합격하여 선릉참봉이 되고, 1702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 부수찬·집의를 거쳐 1710년에 승지가 되었다. 1719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대사성, 호조와 예조의 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고 이어 형조·병조의 판서를 지냈다.
1722년(경종 2) 신임사화 때 무고로 사사(賜死)된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인 작은아버지 조태채(趙泰采)의 죄명에 연루되어 옥구에 유배되었고, 다시 안음에 이배되었다가 1724년(영조 즉위년) 8월에 풀려나 공조와 병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1726년 우의정이 되었다가 다음해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집권하자 파직되었다. 1728년 판돈녕부사로 임용되고,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민심진정에 힘썼으며, 그 뒤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시호는 정희(靖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