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연백 출신. 1919년 6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가입, 국경주재 연통(聯通) 책임자로 선임되어 국내와의 연락업무를 담당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1월 임시정부 국내실정조사원이 되어 고향인 황해도 연백군일대를 내왕하면서 동정을 살피다가 1921년 5월 붙잡혀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4년 출옥 후 다시 동삼성(東三省)으로 건너갔으나 의성단장(義成團長)의 요청을 받아들여 국내에 돌아와 정보입수와 군자금모집을 담당하였다. 그 뒤 동삼성으로 나가 활동하였으며 1928년 만보산(萬寶山)을 근거로 무장독립조직강화에 힘썼고, 1933년 5월에는 다시 국내로 들어와 조선일보사(朝鮮日報社)에 입사, 기자로 복무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1934년 4월 다시 동삼성으로 건너가 의성단을 거점으로 하여 조직을 강화하였고, 1943년 7월 서울에 들어와 김영희(金永熙) 등을 충칭[重慶]임시정부로 밀파하려다가 붙잡혀 1년간 복역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