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영송리선사유적(抱川永松里先史遺蹟)은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집터, 중도식 민무늬토기, 타날문토기 등이 출토된 원삼국시대 마을유적이다. 1994년 한양대학교가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원삼국시대 철자(凸字) 모양 집터 5동과 토기 무더기 1개소를 확인하였다. 1994년 7월 2일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송리 일대에 해당하는 원삼국시대 마을유적으로, 1994년 7월 2일 경기도기념물(158-2번지 외 30필지)로 지정되었다. 이 유적은 향토사학자인 이우형이 처음 발견하였다.
발굴 조사는 영평천 일대의 자갈과 모래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유적의 일부가 훼손된 것을 국민대학교박물관 장명수가 언론에 제보함에 따라 포천군의 긴급 의뢰로 1994년 7월 16일부터 같은 해 9월 14일까지 한양대학교박물관이 실시하였다.
조사는 동쪽으로부터 A, B, C구역으로 나누어 A, B구역은 전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C구역은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지역은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송리 269번지, 270-2번지 일대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유물이 채집되고 유적 훼손이 신고된 곳은 A구역에 해당하며, 조사 결과 원삼국시대 집터 2동, 토기 무더기 1개소 등이 확인되었다.
B구역은 원래 지형이 잘 남아 있는 곳이지만, 향후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조사 결과 원삼국시대 집터 3동이 발견되었다. A구역과 B구역의 하층은 자연 퇴적층이 발견되고 있어 더 이상의 문화층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A-1호 집터는 (타)원형으로 3m×2.2m, A-2호 집터는 철자(凸字) 모양으로 동쪽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B-3호 집터는 5.8m×4.2m의 철자 모양으로 추정되고, B-4호 집터는 5.5m×4.8m의 철자 모양으로 추정되나 출입구 부분이 파괴되어 정확한 형태를 확인할 수 없다. B-5호 집터는 8m×6m의 철자 모양으로 가장 크다.
한편 토기 무더기는 총 3개의 토기가 원형을 그리며 둘러 있었는데, 2개는 똑바로 서 있었고 1개는 옆으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토기들은 모두 아가리 부분을 냇돌과 토기 파편으로 덮은 상태였다. 이러한 형태는 저장 구덩이에서 많이 발견되는 형태로 집 외부에 시설한 별도의 저장 공간으로 추정된다.
집터의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와 기둥구멍들이 확인되었다. 화덕자리는 집터의 뒷벽 쪽으로 치우친 중앙에서 발견되었는데, 뒷벽 쪽에 불막음돌을 세워 둔 중도식 화덕자리로 추정된다. 그리고 A-1호 집터에서는 북서쪽 모퉁이의 솥받침 위에 중도식 민무늬토기 바리가 올려진 부뚜막이 발견된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위치와 구조로 볼 때 외줄구들(한 줄 고래를 갖춘 난방시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출토 유물은 다수의 중도식 민무늬토기와 소수의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가 확인되었고, 가락바퀴, 갈돌 등도 출토되었다. 특히, 중도식 민무늬토기는 목있는독과 손잡이달린독이 확인되고 아가리가 짧게 밖으로 구부러진 항아리들이 많다. 타날문토기는 A-5호에서 몸통편 1점만이 출토되었는데, 표면에 평행선문을 타날한 것이다. 철기류는 집터에서 출토되지 않았다. 다만 조사 과정에서 쇠창, 손칼, 쇠낫 등이 출토되었다.
포천영송리선사유적은 보존을 목적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대표적인 유적이다. 그리고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에 여 · 철자 모양 집터가 존재했음을 확인해 준 유적이다.
포천영송리선사유적의 연대는 집터의 형태와 출토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집터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이 중도식 민무늬토기이다. 특히 중도식 민무늬토기 기형 가운데 목있는독, 손잡이달린독, 아가리가 짧게 밖으로 구부러진 형식의 토기들이 다수 확인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2세기 대를 중심으로 하는 유적이다.
그런데 토기 무더기에서 발견된 중도식 민무늬토기와 타날문토기는 집터에서 출토된 유물들보다 늦은 형식의 토기들이고, 제토 과정에서 발견된 쇠창 역시 늦은 형식이다. 따라서 3세기 대까지도 마을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조사 과정에서도 많은 수의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발견되어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