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하경복(河敬復)이다.
1427년(세종 9) 호군(護軍)이 되었고, 1433년 임금이 경회루 아래에 나아가서 상호군(上護軍) 홍사석(洪師錫) 등 33명에게 명하여, 3대(隊)로 나누어 과녁에 활을 쏘게 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맞혀 활이 하나 하사되었다.
같은 해 9월 첨절제사로 군관 호군 박배(朴培) 등 30명을 영솔하고 갑산(甲山) 등지에 가서 수자리를 살았다. 이듬해 5월 회령진첨절제사(會寧鎭僉節制使)가 되었고, 12월에 영북진첨절제사가 되었다.
지종성군사(知鍾城郡事)를 거쳐 1438년 4월에 경상좌도 도만호(都萬戶), 1442년 8월에 길주목사(吉州牧使)가 되었다. 그 뒤 1447년 7월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가 되었다. 이후 1460년(세조 6)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보임되었다가 그해 12월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강장(剛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