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호부상서 한공의(韓公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 한수(韓脩)이고, 아버지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상경(韓尙敬)이다.
종묘서령(宗廟署令)으로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판관(判官)이 된 뒤 문무과(文武科) 복시(覆試)를 볼 때 전사소윤(典祀少尹)이 되었다. 1419년(세종 1) 겸지사간원사(兼知司諫院事)가 되었다.
이듬해 지사간(知司諫)으로 여러번 이종무(李從茂)·김양준(金陽俊)을 파직할 것을 청하였고, 동부대언(同副代言)이 되었다. 1422년 우부대언(右副代言)으로 왕의 명을 받들어 도성을 수축한 각 도의 수령관과 수령들에게 잔치를 내리게 하였다.
1423년 좌대언(左代言)이 되고, 1426년 병조참의가 되었다. 1428년 예조참판을 거쳐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가 되었고 절일사(節日使)로 황제에게 바치는 건연어(乾年魚) 2,000미(尾)·대구어(大口魚) 1,000미·연어자(年魚子) 10병(甁)·대문어(大文魚) 300수(首)를 아울러 받들고 출발하자 왕으로부터 모관(毛冠)과 옷·갓·목화 등이 하사되었다.
1429년 절일사(節日使)로 북경에서 돌아와 1430년 전라도감사(全羅道監司)에 이어 함길도감사·함흥부윤(咸興府尹)이 되었다. 아들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한계미(韓繼美)·서평군(西平君) 한계희(韓繼禧)·청평군(淸平君) 한계순(韓繼純)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