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마곡부락의 극락강과 황룡강의 합류지점에 있는 정자이다. 조선 중종 · 명종대의 인물인 유사(柳泗)가 당시의 사화를 보고 벼슬을 사양하고 낙향하여 은둔생활을 하면서 1548년(명종 3)에 세웠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나 1871년(고종 8) 후손들에 의하여 중건되었으며, 1933년 다시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내에는 유사의 시 · 기(記) 및 이안눌(李安訥) · 오겸(吳謙) · 김성원(金成遠)의 시, 기정진(奇正鎭)의 기문 등 당대 문장가들의 글이 걸려 있다. 정자의 명칭인 '호가(浩歌)'는 욾조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크게 소리 내어 노래한다는 뜻이다. 『연재집(淵齋集)』에 있는 「설강유공묘갈명(雪江柳公墓碣銘)」을 보면 중국 소강절(邵康節)의 '호가지의(浩歌之意)'에서 그 이름을 취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