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565년(명종 20년) 경 작. 세로 54㎝, 가로 30㎝.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감지(紺紙)에 금니(金泥)로 윤곽을 그리고 본존의 육계(肉髻) · 입술 · 약합(藥盒) 등에만 채색을 가한 금니화(金泥畫)이다.
이 불화는 구도면에서 여래와 보살이 화면 중심에서 상하로 구분되는 2단 구도를 이루고 있어 고려 불화 양식의 전통을 잇고 있다.
본존은 높은 수미단(須彌壇) 위에서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는데 두 발 위에 놓인 왼손으로 약합을 들고 있다. 좌우협시보살은 중앙을 향하여 합장하고 있다. 보관에는 각기 일상(日像)과 월상(月像)의 표식이 보이고 있어 약사불의 협시인 일광 · 월광 보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본존의 세장(細長)한 신체 모습과 작고 긴 얼굴, 꼬리가 올라간 가는 눈, 지극히 작은 입, 뾰족한 육계와 큼직한 정상 계주(頂上髻珠)의 모습 등은 당시 16세기 불화의 양식적 특징을 잘 표출하고 있다.
윤곽선과 세부 묘사에 있어 굵은 선과 가는 선을 적절히 구사하여 채색보다 필선의 효과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박력 있고 거침없는 묘선의 필세가 특히 돋보이고 있다. 보살의 천의(天衣)에 표현된 뾰족한 끝단 처리에서는 당시 불화의 공통적인 특색을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옷주름 사이에 가해진 복잡, 화려한 문양의 표현, 대좌를 장식한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과 연꽃잎무늬의 세련된 모습은 금색이 주는 효과와 함께 화려한 궁정 취향 불화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본존의 원형 광배 좌우 여백에는 장식적인 서운(瑞雲)과 도안화된 꽃무늬로 채워져 장엄하게 보인다.
이 불화에는 화면의 좌측(향우측)과 하단부에 금자(金字)로 쓰인 화기(畫記)가 있는데, 표구 시 일부가 잘려 전문을 판독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부분과 일본 도쿠가와미술관(德川美術館)에 소장된 같은 형식의 약사삼존도와의 비교, 검토로 1565년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발원한 불화임을 알 수 있다.
즉, 명종 20년 문정왕후가 그 아들 명종의 병세 회복과 건강 그리고 세자의 탄생을 기원하여 석가 · 미륵 · 아미타 · 약사여래의 화상을 각각 금화로 50점, 채화(彩畫)로 50점 등 도합 400점을 제작하여 회암사 중 수경에 개안 공양(開眼供養)한 불화 중의 한 폭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약사삼존도는 억불 숭유 정책 아래에서도 왕실에서 행하여진 불교 숭배의 상황을 알려 주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그리고 현존 예가 희귀한 조선 전기 불화인 점에서, 당시 불교계의 상황과 불화의 양식 등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