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높이 110㎝, 무릎 너비 104㎝. 팔공산 자락의 원효암 극락전 뒤편으로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4m 높이의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다. 바위면을 쪼아 길쭉한 반원형의 얕은 감실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마애불은 감실 면보다 약간 돌출된 전신 광배[擧身光]를 배경으로 두 겹으로 된 올림꽃의 연화좌 위에 앉아 있다. 연꽃대좌 아래로 바닥까지 이어지는 연꽃 줄기가 바위면에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고, 머리 위까지 솟아오른 끝이 뾰족한 꽃잎형의 광배(혹은 주형(舟形)광배)와 함께 어우러져 마치 연봉우리 안에 불상이 봉안된 것처럼 형상화되어 있어 독특하다.
여래상은 얼굴과 몸의 비례가 알맞고 무릎 너비가 넓어 안정적이다. 소발(素髮)의 머리에는 둥근 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었고, 둥글고 볼이 통통한 얼굴은 눈, 코, 입의 마모가 심해 자세한 표현은 확인하기 어려우나 귀는 어깨까지 닿을 정도로 길다. 착의법은 통견식(通肩式)으로 대의(大衣)를 양어깨 위에 걸쳤고 상반신은 가슴을 드러내고 있으며 U자형의 주름이 잡혔고 하반신은 마모로 인해 옷주름 표현을 알아보기 힘들다. 이 여래상은 손모습이 특이한데 양손 모두 손등을 보이며 오른손은 가슴 위에 두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오른손을 가슴 위에 얹은 모습의 수인(手印)은 경주 남산 왕정골 석조여래좌상, 경주 장항리사지 석조여래좌상 등에서 보이나 현재까지 도상적 연원을 밝히기는 어렵다.
둥글고 통통한 얼굴, 무릎이 넓어 안정적인 신체 비례, 통견식 착의, 감실을 얕게 파고 불상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조각 수법 등은 통일신라시대 여래상의 특징이다. 더욱이 간략화된 세부 표현과 도식화된 연화좌의 꽃잎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여래상은 중심지 경주가 아닌 외곽 지역인 팔공산자락에 새겨진 통일신라 후기 마애불이라는 점에서 통일신라 불교조각의 지역 양식과 마애불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