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창건됐다고 한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나옹(懶翁)이 원나라에서 인도 스님 지공(指空)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고 1358년(공민왕 7) 귀국하여 이 절에 머물렀다.
당시 원나라 황제는 금자화엄경첩(金字華嚴經帖)과 금강저 한 쌍을 하사하여 이 절에 두었다고 한다. 1667년(현종 8)에 세워진 사적비에는 대성산에 수십 개의 절이 있는데, 그 중 이 절이 가장 컸다고 나와 있다.
1700년(숙종 26) 무렵 천왕문과 해탈문이 소실했으나, 1727년(영조 3) 복구했다. 그 뒤 동봉 욱일(東峰 旭日)이 이 절에서 김영유(金永濡), 박철손(朴哲孫)과 함께 시를 짓고 노닐었다. 일제강점기의 31본산시대에는 영명사(永明寺)의 말사였다.
1950년 6.25 때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1990년 대웅전은 복구되었다. 현재 북한 불교계의 총본산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건물로는 대웅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대웅전 앞에 팔각오층석탑이 있는데, 다른 곳에서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팔각오층석탑은 북한의 국보급 제185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