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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도감(敎定都監)

고려시대사제도

 고려 후기 무신집권 하의 최고 권력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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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무신집권 하의 최고 권력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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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일명 교정소(敎定所)라고도 한다.
1209년(희종 5) 4월, 최충헌(崔忠獻) 부자의 살해를 모의한 청교역(靑郊驛)의 역리와 승도 등을 수색·처벌하기 위해 영은관(迎恩館)에 설치했던 임시기구였다.
그러나 그 뒤 계속 존속하면서 최충헌의 반대세력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서무(庶務)를 관장하고 모든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등 국정을 총괄하는 중심기관이 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및 변천
국가의 비위에 대한 규찰과 전국의 공물과 특별세 등 세정(稅政)사무 및 인사행정을 담당하였다.
규찰기능은 교정도감의 설치 배경이 비상시국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으며, 실제로 1257년(고종 44) 몽고로 도망가려던 별장 이성의(李成義)·유거(劉巨) 등이 이양(李陽)의 고발에 의해 교정소에 잡혀 죽음을 당하였던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1250년 최항(崔沆)이 교정별감의 공첩으로써 청주·안동·경산(京山 :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해양(海陽 : 지금의 경상남도 남해) 등지의 각종 별공(別貢)과 금주(金州 :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홍주(洪州) 등지의 어량(魚梁) 및 선박세(船舶稅)를 면제하게 하고, 또 각 도에 파견한 교정도감의 수획원(收獲員)을 소환하게 하는 한편, 그 일을 각 도의 안찰사에게 위임해 인심을 수습하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교정도감은 전국의 공물과 특별세 등 세정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227년 최우(崔瑀)가 교정도감을 시켜 금내육관(禁內六官)에 통첩해 과거 급제자로 아직 관직에 오르지 않은 자 가운데 재행(才行)이 있는 자를 천거하도록 한 사실로 보아, 인사행정에도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1227년은 최우가 인사행정 담당기구인 정방을 설치한 2년 뒤이기 때문에, 이때는 천거권 뿐이었는지 모르지만 정방(政房) 설치 이전에는 인사행정권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밖의 기능으로는 1228년 자혜원(慈惠院)을 짓기 위해 강음현(江陰縣)에서 목재를 벌채하였는데, 그 감독관이 이를 금하고 벌채한 목재를 몰수하자, 이 절을 짓던 승려가 최우에게 청해 교정도감의 공첩을 얻어내고, 또 최우에게 호소해 그 관리를 멀리 귀양보냈다는 사실에서 지방행정에까지도 영향이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정도감은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기구였지만 그 뒤로도 권신들의 중추부적 구실을 하는 정청(政廳)이 되어 강력한 기능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그 장(長)인 교정별감은 원칙적으로 장군의 직위에 있는 자만이 임명될 수 있었다. 형식상으로는 왕으로부터 임명되었으나 실제로는 최고 무신집권자가 자동적으로 계승하였다.
즉, 교정도감을 세운 최충헌이 스스로 교정별감이 된 뒤, 아들 최우가 그 직을 계승하였고, 최항 및 최씨정권을 무너뜨린 김준(金俊)과 임연(林衍)부자도 교정별감에 임명되고, 그 직권으로써 일국의 정치를 좌우하였다.
그런데 교정별감이 비록 형식적이나마 다른 관직과 마찬가지로 국왕에 의해 임명되었다는 것은 국왕이 이들 권신의 집권을 합법화해 주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데 있었다고 하겠다.
이처럼 무신집권시대에 국왕의 권력보다도 상위에서 국정을 마음대로 천단하던 교정도감도 1270년(원종 11) 당시의 집권무신 임유무(林惟茂)가 피살됨과 동시에 소멸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교정도감은 무신집권기에 존립했던 다른 지배기구보다도 더 큰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즉 무신집권 초기에는 무신의 합좌회의기관인 중방(重房)에 의해 정치가 행해졌는데, 이는 집단적 정권장악에 의한 지도체제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경대승(慶大升)의 도방(都房)이나 최씨 집권기의 교정도감은 지도체제가 일인체제로 바뀌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방이 일인체제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등장한 기구라고 한다면, 교정도감은 일인독재에 영합된 체제로 무신집권기의 정치지배기구의 성격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 준 기구라 할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최씨정권(崔氏政權)의 지배기구(支配機構)」 ( 민병하 , 『한국사』 7,1981)

  • 「고려후기(高麗後期)의 무반(武班)에 대하여」 ( 변태섭 ,『서울대학교논문집』 12,1966)

  • 「고려무인정치기구고(高麗武人政治機構考)」 ( 김상기 ,『동방문화교류사논고(東方文化交流史論攷)』,1954)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변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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