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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金官伽耶)

고대사지명

 가야연맹체의 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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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중 금관
이칭
가락국, 伽落國), 駕洛國, 본가야, 本加耶, 남가야, 南加耶, 구야국, 狗邪國, 구야한국, 狗邪韓國
분야
고대사
유형
지명
성격
가야 소국(小國)
소재지
경상남도 김해 일대
시대
고대-삼국-가야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가야연맹체의 한 나라.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금관가야(金官加耶)는 6가야(六加耶)의 하나로, 서기 전후부터 532년까지 경상남도 김해를 중심으로 존속했다. 금관가야라는 이름은『삼국유사(三國遺事)』오가야조(五伽耶條)에 인용된『본조사략(本朝史略)』을 통해 알려졌다. 가락국(伽落國)주 01)이라고도 했으며, 초기에는 여러 가야 중 맹주국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대가야(大加耶) 또는 본가야(本加耶)라고도 불렀다. 또 지리적으로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남가야(南加耶)라고도 하였다.
3세기 후엽에 쓰여진『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는 구야국(狗邪國)이라고 했으며, 왜인조(倭人條)에는 구야한국(狗邪韓國)이라고 하였다. ‘구야(狗邪)’는 가야에 대한 한자 표기이다.
왜인조에는 위(魏)나라의 사신이 대방군(帶方郡)을 떠나 왜국에 이르는 항로를 기록했는데, 한반도의 서해안을 남하해 남해안의 구야한국에 이르고, 다시 바다를 건너 대마국(對馬國)에 다다른 경로로 보아 구야한국이 지금의 김해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형성 및 변천
금관가야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에 따르면, 김해소경(金海小京)조에 “제10대 구해왕(仇亥王)에 이르러 신라에 항복했으므로 그 땅을 금관군(金官郡)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금관가야는 본래 구야(狗邪)·가락(駕洛)주 02)·가야라고 불렸던 것으로, 뒤에 6가야의 하나로 ‘금관가야’라 이름 지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삼국유사』에는「가락국기(駕洛國記)」가 인용되어 있어서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탄생설화와 왕력(王曆)이 실려 있다. 즉 김해지역의 9간(九干)이 구지봉(龜旨峰)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알을 수습하여 집에 가져오니 모두 사람이 되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수로왕으로 ‘가락국’을 세웠고, 나머지 다섯 사람도 모두 돌아가 5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이는 금관가야가 초기에 6가야의 맹주국이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류의 삼각주 지역에 자리잡아 농업이 발달하고, 또 남쪽으로는 바다와 접해 있어 낙동강과 아울러 수운의 편리함을 이용해 경제적·문화적 발전에 유리하였다. 그리하여 초기에는 여러 가야의 맹주국이 되어 대가야라고 불렸던 것이다.
「가락국기」에는 제2대 거등왕(居登王)부터 제10대 구형왕(仇衡王)까지 역대 임금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으나, 그 밖에 금관가야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다만『삼국사기』신라본기에 따르면, 532년(법흥왕 19)에 마지막 왕인 구해(仇亥)는 신라에 나라를 바친 뒤 높은 벼슬을 받고, 본국을 식읍(食邑)으로 받았다고 한다.
후에 아들 무력(武力)은 신라와 백제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뒤에 신주도(新州道) 행군총관(行軍摠官)이 되었다. 무력은 이러한 공로로 각간의 자리까지 올랐는데, 이 사람이 바로 김유신(金庾信)의 할아버지이다. 금관가야는 532년에 신라에 멸망되었는데, 멸망 연대는『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사에 따르면 532년보다 약간 앞선 때인 듯하다.
532년금관가야가 신라에 편입된 후 김유신 일가를 위시한 금관가야계 유민들이 기존의 김씨성을 지닌 진골귀족(眞骨貴族)과의 구별을 위하여 신김씨(新金氏)를 칭하였다. 이 신김씨를 칭한 인물로는 신라 하대(下代) 고승 진경대사(眞鏡大師)심희(審希)가 대표적이다. 성덕왕(聖德王)대, 혜공왕(惠恭王)대를 거치며 금관가야계 후손들은 그 위상이 매우 약화되었고, 이에 9세기 후반에 김씨 칭성(稱姓)을 규제당하면서 신김씨(新金氏)를 칭하게 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일본서기(日本書紀)

  • 『가야연맹사』(김태식,일조각,1994)

  • 「금관가야계의 시조 출자전승과 칭성의 변화」(이문기,『신라문화제학술논문집』25,2004)

  • 「후기가야제국의 성장기반 고찰」(김태식,『부산사학』11,1986)

  • 「복원가야사」(천관우,『문학과 지성』28·29·31,1977·1978)

  • 「가야경역신고」(김정학,『부산대학교논문집』22,1976)

  • 『任那と日本』(金廷鶴,小學館,1977)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駕洛國
주02
伽落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정학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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