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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식(金冠植)

현대문학인물

 해방 이후 「귀양가는 길」·「다시 광야에」·「춘잠에게」 등을 저술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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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해방 이후 「귀양가는 길」·「다시 광야에」·「춘잠에게」 등을 저술한 시인.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사천(泗川). 호는 추수(秋水)·만오(晩悟)·우현(又玄). 충청남도 논산 출신. 한약방을 경영하면서 서원의 전교와 향교의 제관을 하던 아버지 김낙희(金洛羲)와 어머니 정성녀(鄭性女)의 차남이다. 시인 서정주(徐廷柱)와 동서간이다. 4세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한문 경서를 배우고 제자백가를 익혔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952년 강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충남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고려대학교로 적을 옮기고, 1953년 다시 동국대학교 농과대학으로 전학하여 4년에 중퇴하였다. 강경상업고등학교를 다니던 도중에도 최병심(崔秉心)·정인보(鄭寅普)·최남선(崔南善)·오세창(吳世昌) 등 당대의 한학 대가들을 찾아가 성리학·동양학을 공부하였다. 문단의 친우로는 같이 『현대문학』에 추천된 시인 박재삼(朴在森)을 비롯하여 천상병(千祥炳)·신경림(申庚林)·고은(高銀) 등이 있다.
그는 ,경기도 여주농업고등학교 교사로 출발하여, 1954년 서울공업고등학교·서울상업고등학교의 교사와 세계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하였다. 1960년 서울 용산 갑구에서 민의원에 출마하였다가 낙선하였다.
이듬해 세검정의 과수원을 처분하고 홍은동 산1번지로 이사하여 무허가 블로크 집을 지어 팔기도 하며, 시와 술로 지내다가 1970년 간염으로 죽었다. 호방한 성격과 희귀한 동양적 예지, 한시적 소양, 그리고 남다른 기행으로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1955년 『현대문학』에 서정주의 추천으로 시 「연(蓮)」·「계곡에서」·「자하문 근처」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러나 문단 활동 전에 이미 처녀시집 『낙화집』(1952)을 조지훈(趙芝薰)의 서문을 받아 출간한 바 있다.
이형기(李炯基)·이응로(李應魯)와 같이 펴낸 『해넘어가기 전의 기도』(1955)와 『김관식시선』(1956)에서 나타나는 시 경향은 일찍이 한학을 익힌 탓으로 동양적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자연과 인생을 폭넓게 읊어내려 가는 웅혼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표 시로 「귀양가는 길」·「다시 광야에」·「춘잠(春蠶)에게」·「해일서장(海溢序章)」·「자하문 밖」·「목양송(牧羊頌)」·「나의 임종은」·「문복(捫腹)의 서(書)」 등을 발표하였다.
1960년대 후반의 시세계는 이 시대의 사회적 부조리와 정치적 모순에 대한 꾸밈없이 생각한 바의 매도를 시로 표현하였고, 가난하게 사는 자신과 이웃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정이 융합된 시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의 시로 「강동(降冬)의 서(書)」·「자다가 일어나 보니 배추밭에서」(1967)·「가난예찬」(1968)·「호피(虎皮) 위에서」(1970)·「폐가(廢家)에 부쳐」(1970)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서경(書經)』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신동한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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