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

개신교
단체
그리스도교 개신교의 한 교파인 성공회의 한국 관구.
단체
설립 시기
1890년 9월 29일
설립자
고요한(Charles John Corfe)
상위 단체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전신
조선종고성교회(朝鮮宗古聖敎會)
발간지
성공회 신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대한성공회는 그리스도교 개신교의 한 교파인 성공회의 한국 관구이다. 1890년 9월 29일 고요한 주교가 인천 제물포에 도착하면서 선교가 시작되었다. 성공회의 신학과 역사를 따라 신약 성서와 구약 성서, 니케아 신경과 사도 신경, 세례와 성찬례, 역사적 주교직을 교회의 근간으로 삼는다. 또한 한국 근현대사로부터 교회 일치, 사회 정의, 평화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의
그리스도교 개신교의 한 교파인 성공회의 한국 관구.
개설

16세기 종교개혁 때 천주교에서 독립한 영국 성공회로부터 설립된 한국의 성공회로, 세계 성공회 공동체(Anglican Communion)의 관구의 하나이다. 1890년 9월 29일 주교 고요한(Corfe, C. J.)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성공회는 예배와 풍습은 천주교와 유사한 부분이 있으나, 교리와 관행은 개혁 교회(改革敎會)의 성격을 띠는 교회이다. 성서의 교훈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주교직의 권위와 통일성 아래 교회는 다양성과 일치를 유지하고 있다. 천주교나 정교회처럼 주교 제도의 전통을 지키고 있으나, 천주교와 같이 세계를 법적으로 총괄하는 중앙 기구나 헌장은 없다. 주교, 사제, 부제 등 성직(聖職)에 대한 호칭은 천주교와 같으나, 성직의 완전한 상호 인정은 여전히 신학적 논의를 거치고 있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는 천주교와의 일치를 위한 국제 성공회-천주교 일치 선교위원회(IARCCUM)와 성공회-천주교 국제위원회(ARCIC)를 구성하고 있으며, 정교회, 루터회, 감리회 등과도 다양한 교회 일치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연원 및 변천

1885년 중국 선교사신부(神父) 울프(Wolfe, J. R.)가 2명의 선교단을 구성하여 부산에서 2년간 선교 활동을 한 적이 있지만, 영국의 켄터베리 대주교 벤슨(Benson, E. W.)이 영국 해군 군종 신부(軍宗神父)인 주교 고요한을 보냄으로써 본격적인 한국 선교가 시작되었다.

1890년 9월 29일 주교 고요한은 의사 랜디스(Landis, E. B.)와 함께 인천 제물포에 도착하여 한국 선교를 시작했다. 1891년 3월 6일 서울 충무로에 선교 본부인 ‘부활의 집’을, 또 5월 17일 낙동성당을 축성하였고, 인천 교회의 건립과 함께 1893년 강화도 선교를 개시하였다. 초대 선교사들은 성공회의 토착화를 위하여 한국 문화 및 종교 연구 · 사회 복지 활동 · 의료 활동 등을 하였다.

1891년 인천과 서울에 병원을 개설하였으며, 진천 애인병원과 여주병원 등 병원 개설은 전국적인 규모였으나 1940년경 일제의 그리스도교 탄압으로 모두 폐쇄되었다. 또한, 출판 활동으로 고요한 주교가 인쇄 전문가를 데려와 1891년 우리나라의 두 번째 영한 사전 및 신앙 관계 서적을 발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1914년 4월 30일 성직자 양성 기관인 성미가엘신학원(현, 성공회대학교)을 세워 1915년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희준(金熙俊, 마가)이 서품되었다. 1916년 5월 11일 제1차 교구 의회가 조직되어 대한성공회 교리와 전례(典禮)의 기본적 선언을 포함한 헌장과 법규를 의결하였다.

또한, 언더우드(Underwood, H.) · 게일(Gale, J. S.) 등이 벌이던 성서 번역 사업에도 참여하였다. 한편, YMCA 창설에 참여하였는데 이것이 그 뒤 교회 연합 활동으로 발전하였다. 선교 지역은 1923년부터는 평양, 1927년부터는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1931년 일제의 억압 정책으로 교회 부설 학교 등이 폐쇄되었고, 1936년부터는 성직자들이 연행되거나 감시를 받았다. 1941년 주교 구세실(Cooper, C.)을 비롯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강제 국외 추방을 당하였으며, 성미가엘신학원은 자동적으로 폐쇄되었다. 그러나 대한성공회는 민족 수난기에 민중에게 고난을 이길 소망의 복음 전파로 교회의 기틀을 다졌다.

6 · 25전쟁 때는 공산군에 의하여 한국인 성직자 3명, 영국인 성직자 2명, 수녀 1명이 처형당하였는데, 이때 주교 구세실은 모스크바까지 납치되어 갔다가 1953년 포로 교환 때 풀려나왔다. 의료 · 출판 · 구호 · 교육 등이 중심이 되었던 초기 활동에 비하여 1950년대 이후의 선교는 산업 선교 · 학원 선교 · 한국 교회 주체성 확립 등에 역점을 두었다.

1955년에 취임하였던 주교 김요한(Daly, J.)은 태백산 광산촌에서 산업 선교의 효시를 이루어 산업 선교 연합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61년 동숭동 서울대학교 앞에 ‘성베다관’(현, 성 베다 대학로교회)을 건립하여 학원 선교 활동을 폈다. 1965년 5월 27일 신부 이천환(李天煥)이 첫 한국인 주교로 서울 교구장에 취임하였으며, 동시에 대전 교구가 분할 창설되었다.

1974년 부산 교구가 창설되고 2명의 새로운 한국인 주교가 선출되었다. 1991년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관구로부터 독립하여 독립 관구로 승격되었으며, 관구 안에 서울 · 대전 · 부산 3개 교구를 두었다.

1990년 9월 30일에 대한성공회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교구 연합 성찬례가 3개 교구장 주교 공동 집전과 캔터베리 대주교 로버트 런시(Runcie, R. K.) 설교로 서울 올림픽 경기장에서 거행되었다.

2010년 서울 교구는 제46차 교구 의회에서 북한 선교 교구 설립을 의결하였으며, 2023년 현재 제6대 서울 교구장 이경호 주교를 제2대 선교 교구장으로 하여, 분단 이전부터 존재하던 9개 전도구, 56개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능과 역할

성공회의 기본적 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계승되어 오는 보편 교회로서의 교리를 준수하고, 이의 근거가 되는 신앙 고백은 니케아 신경과 사도 신경(使徒信經)을 따른다.

둘째, 신앙과 도덕의 근원적 표준으로서 구약 성서(舊約聖書) 39권과 신약 성서(新約聖書) 27권을 정경(正經)으로 하고, 성서의 해석은 그리스도가 설립한 교회의 전통적 해석에 따른다. 이밖에 제2경전은 신앙 생활의 모범과 도덕의 교훈으로 삼는다.

셋째, 그리스도가 설립한 성사(聖事)를 굳게 지킨다. 성사는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여 은혜를 베풀고 섭리하는 형상과 표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성세 성사(聖洗聖事: 세례)와 성체 성사(聖體聖事: 성찬례)이며, 이 두 성사는 예수가 복음서를 통하여 형상을 나타낸 것이고, 십자가 위에서 흘린 피와 물을 통하여 표징한 것이다. 이 두 성사 외에 동서방 교회가 역사적으로 표징해온 다섯 가지 성사, 즉 견진 · 고해 · 서품 · 혼배 · 조병 성사가 있어서,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형편과 환경에 따라 받게 된다.

넷째, 성공회는 예수의 사도시대부터 교회에 역사적으로 계승되어 온 주교직을 교회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성공회는 지역적인 특성과 상황을 이성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모든 교회가 동일한 예식과 규범을 따를 필요는 없으나, 예식과 규범의 적절한 변화는 주교에게만 주어진 권한이다.

대한성공회의 선교이념은 다음과 같다.

① 역사가 교회에 요구하는 사회 정의와 인권, 인간화와 의로운 개혁에 대한 예언자적 사명을 이념으로 정치 · 사회 · 경제 ·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하느님의 뜻을 증거함으로써 교회가 ‘선교를 위한 공동체’로서 연합하고자 노력한다.
② 주체적인 교회로서 세계의 모든 교회와 유대를 강화하며 신앙적 고백과 경험을 서로 나누는 ‘선교 동역자’로서의 책임을 다한다.
③ 교회 중심주의나 교파주의를 떠나서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증언하기 위하여 교회를 개방하고, 그리스도교 이웃 교파와 일치 운동을 벌이는 것은 물론, 이웃 종교와의 대화도 모색한다.

대한성공회는 역사적 상황에 따라 독자적인 선교 양식과 정책 아래 세계 교회와 횡적인 관련을 맺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세계성공회협의회(ACC)와 세계교회협의회(WCC) · 아시아교회협의회(CCA), 국내적으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참여하고 있다.

현황

대한성공회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개방된 교회 체제를 가지고 민주적인 교회 조직을 이루고 있다. 적게는 교회로부터 지방 선교 조직인 교무구와 교구가 모두 위원회 또는 의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 · 대전 · 부산의 3개 교구가 전국 의회로 통합되어 있으며, 전국 의회는 2년마다 열리는 최고 의결 기구로서, 선교 · 교육 · 전례 · 대외관계 등 기본적인 선교 정책을 다루고 있다. 2023년 현재 전국 의회 의장주교는 제6대 서울 교구장 이경호 주교이다.

전국에 130여 교회, 160여 사회 복지 및 선교 기관, 약 5만 명의 신자가 있다. 부설 기구로는 성공회대학교 · 사회복지관 · 나눔의 집 · 수도원 · 출판부 등의 기구와 관구 행정을 담당하는 교무원이 있으며, 그 외에도 특수 학교와 각종 복지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백낙준, 『한국개신교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
이재정(대표집필), 『대한성공회 백년사: 1890-1990』 (대한성공회 출판부, 1990)
『한국종교편람』 (문화공보부, 1984)
Corfe, C. J., The Anglican Church in Korea. (London: Livingstones, 1906)

인터넷 자료

대한성공회 관구 누리집(https://anglicankr.church)
집필자
차보람(성공회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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