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성군 ()

대동여지도 중 황해도 벽성 부분
대동여지도 중 황해도 벽성 부분
인문지리
지명
황해도 중남부의 해안에 위치한 군.
정의
황해도 중남부의 해안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연백군·평산군, 서쪽은 옹진군·장연군, 남쪽은 황해, 북쪽은 신천군·재령군에 접하고 있으며, 남부 중앙부에는 해주시가 있다.

동경 125°17′∼126°59′, 북위 37°36′∼38°16′에 위치하며, 면적 1,552.98㎢, 인구 15만 1133명(1944년 현재)이다. 20개 면 157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해주시에 있다.

자연환경

멸악산맥이 군의 북부에 동서로 뻗었으며, 그 여맥이 서남부까지 미치고 있어서 북부와 서남부 지역은 산지가 많다. 동부와 남부는 광탄천 등의 하천 연안과 서해에 접하는 해안선을 중심으로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중앙에 수양산(首陽山, 899m)과 설류봉(雪留峰, 945m)이 자리잡고 있고, 서쪽에 덕대산(德大山, 353m)과 국사봉(國師峰, 527m)이 있으며, 북쪽에는 운달산(雲達山, 600m)·성암산(城巖山, 468m)·지남산(指南山, 623m)·천봉산(天峰山, 625m)·작산(鵲山, 593m)·달마산(達磨山, 596m) 등이 잇달아 있어서 인접한 군과 자연적인 경계를 이룬다.

하천은 삼탄천이 동쪽의 평산·연백 군계에서부터 서류하고, 어사천이 남류하여 서해로 유입하고 광탄천이 달마산에서 발원하여 서부 지역을 남류하며, 지남산에서 발원한 금강천(金剛川)이 동남류하여 서해로 흘러든다.

해안선은 바다같이 완만한 경사로 되어 융기해안(隆起海岸)을 형성하고 있다. 지질은 대체로 한국계 수성암(韓國系水成岩)이며, 수양산 서북쪽 산지는 화강암층이고, 중간 산협의 사면 지대는 화강편마암층으로 되어 있다.

기후는 대체로 해안과 가까운 지대는 해양성 기후의 특색을 지니며, 산간과 내륙 평야 지대는 대륙성 기후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해주만을 중심으로 연평균 기온 10∼11℃, 1월 평균 기온 -5℃, 8월 평균 기온 24.9℃이며, 연 강수량은 1,000㎜ 내외이다.

역사

[고 대]

구석기·신석기 시대의 유물과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인접한 평산과 해주 등지에서 구석기·신석기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발굴된 바 있다. 또한, 군내 통산리 등지에서 무문토기와 동모·동검 등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선사 시대에 이미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본래 마한의 영역에 들어 있다가 삼국 시대에 접어들자 백제의 영역이 되었다. 그러나 313년(미천왕 14)부터 고구려에 소속되어 내미홀군(內米忽郡) 또는 지성(池城)·장지(長池)라고 불리었다.

고구려 멸망 후 한때 당나라 군대의 군정이 실시되었으나 676년(문무왕 16) 당군 축출로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폭지군(瀑池郡)으로 개칭되었다.

이들 지명은 대개 해주시 부근의 지성산성(池城山城)에 있는 높이 100여m의 지성폭포에서 연유한다. 신라 말에는 수양(首陽)·영해(瀛海)라고 불리기도 하였으며, 궁예(弓裔)의 후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고 려]

936년(태조 19)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을 두루 살피며 다니던 중 이곳에 이르러 이 군의 남쪽이 바다에 임하였다고 하여 해주(海州)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해주라는 지명은 후고구려 때인 905년부터 나타난다.

수양산 북쪽 기슭에는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진철대사(眞澈大師)의 비석이 남아 있고, 그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사찰 광조사(廣照寺)는 터만 남아 있다.

해주에는 983년(성종 2) 목(牧)이 설치되어 처음으로 지방관이 파견되었으며, 995년에는 관서도(關西道)에 속하여 절도사가 파견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서해도(西海道)에 속하는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로 개편되었다.

1122년(예종 17)대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247년(고종 34)에 해주목으로 변경되었다. 1216년(고종 3) 거란군이 쳐들어왔을 때 이곳의 군대가 싸워 막아 내었으나,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침입하여 해주성이 함락된 뒤에 여러 차례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을 받았다.

모여드는 학도들을 구재(九齋)로 나누어 교육하여 문헌공도를 배출한 최충(崔冲)이 이곳 출신이어서 일찍부터 유교에 교화된 곳이었다. 무신란을 주도한 정중부(鄭仲夫) 또한 이곳 출신이다.

1330년(충숙왕 17)에 원나라의 태자가 수양산에서 금불상을 지성껏 받들어 모신 뒤 귀국하였는데 황제(順帝)가 되었다고 전한다. 고려 말 학자로 이름난 이색(李穡)이 이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조 선]

1417년(태종 17)해주에 도절제사를 두고 평산의 서쪽 변경 지방을 떼어 해주에 이속시키고 대령(大寧) 또는 서해(西海)라고 불렀다. 1421년(세종 3) 해주목에 새로이 진(鎭)을 설치하여 주변 지역의 방어를 관할하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 해주성도 함락되었는데 이 지방 주민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봉기하였다. 그리하여 50여 명의 왜군을 유인 지성폭포에 떨어지게 해 몰살시키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다.

해주는 1616년(광해군 8) 해옥사건(海獄事件) 때문에 군으로 강등되었는데, 이때 비로소 벽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지명은 푸른 바다와 솔숲으로 둘러싸인 수양산·용수산 등의 자연경관에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1623년(인조 1) 다시 해주목으로 승격되었고, 1675년(숙종 1)에 해주목사가 관찰사를 겸직하였다. 1755년(영조 31)에 목사가 따로 배치되었다가 2년 후 다시 목사가 관찰사를 겸임하였다.

15세기 중엽의 인구는 해주부를 포함하여 총 1,926호 6,814명이었다. 조선 중엽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인 이이(李珥)는 1575년 이후 처가가 있던 이곳에서 육영에 힘쓰는 한편 향약 실시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근 대]

갑오개혁 이후 이 군은 해주군의 일부로 존속되어 오다가 1938년해주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해주를 제외한 전 지역이 벽성군으로 개편되었다. 황해도의 중심지인 해주를 포괄하고 있어서 벽성은 도내에서 일어났던 의병 운동, 3·1운동 등에서 자연히 중심지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근대의 대표적 인물로는 이토(伊藤博文)를 저격, 살해하고 순국한 안중근(安重根)과 동학운동 및 의병 운동을 벌이다가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독립 운동을 한 김구(金九)가 있다. 1942년 현재 인구 17만 9666명이다. 군의 형세가 매우 크나, 군청을 비롯한 주요관서는 모두 해주시에 있었다.

광복 후 동강·송림·해남 등의 3개 면은 38선 이남에 속하게 되어 1945년 11월옹진군과 연백군에 편입되어 대한민국의 관할 아래 있다가 1953년 휴전선 이북에 놓이게 됨으로써 미수복 지구가 되었다.

유물·유적

멸악산의 지맥 수양산에는 고성지가 있는데, 고죽국(孤竹國)의 두 왕자 백이(伯夷)·숙제(叔齊)가 고사리만을 먹다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산맥에서 동쪽으로 6㎞ 지점에 신라 경덕왕 때 쌓은 지성산성이 있다.

서석면 신광리에는 신광사(神光寺)가 있는데, 1342년(충혜왕 복위 3)에 원나라 순제(順帝)가 보낸 건축 자금과 목수 등의 기술, 우리의 것 등이 합쳐진 합작품이며, 석탑과 불우도 남아 있다.

금산면 냉정리에는 고려 태조 때 지은 광조사 사지(寺址)가 남아 있으며, 절을 창건하였다는 진철대사 비석이 있다. 서석면 서원리에는 문헌서원이 있으며, 연평도 언덕 위에는 임경업(林慶業)을 제사지내는 충민사(忠愍祠)가 있고, 이이의 유적지인 석담구곡이 있다.

이 계곡에는 청계당(聽溪堂)·요금정(瑤琴亭)·소현서원(紹賢書院)·은병정사(隱屛精舍) 등이 있으며, 가좌면 취야리에 취야정(翠野亭), 서석면 서원리에 충절묘(忠節廟)가 있다.

취야정은 조선 명종 때에 노경린(盧慶麟)이 창건하였고, 이이(李珥)가 장인 노경린의 집에 자주 머물면서 항상 독서와 영시로 소일하였던 정자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지방 사림과 서생들이 독서강학에 힘쓰던 장소였으나, 일제 강점기 이후 취야시장 한복판의 중심 장거리가 되어 각종 물자의 집산처가 되고 지방민과 상인들의 집회처로 그 모습이 바뀌게 되었다.

1361년(공민왕 10)에 목사 최영유(崔永濡)가 홍건적의 난을 만나 주성(州城)을 피해 지성산성에서 적과 싸우다가 산성마저 함락되자 도망쳐 신광천(神光川) 휴암(鵂巖)에 이르러 관인을 연못에 던지고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고 못에 빠져 자결하였다.

이때 시종 한 명과 애견까지도 빠져 죽었다. 그때부터 이 바위를 투인암(投印巖)이라고 하였다. 지방 백성들이 그 시체를 거두어 휴암 북쪽 4㎞ 지점에 장사 지내고 절사(節祀)와 기신제(忌辰祭)를 관비로 제사를 지내 왔다.

원래 충절묘는 해주성 안 향일루(向日樓) 북쪽에 건립되어 있었으나, 1700년(숙종 26)에 목사 이희조와 지방 사림들과 협의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665년(현종 6)에 목사 홍석기(洪錫基)가 지은 글을 참봉 최직(崔稷)이 필서로 새긴 비석이 1945년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교육·문화

이 군은 본래 해주시를 포함한 해주군 지역이었으므로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현재는 해주시에 있는 해주향교(海州鄕校)가 최초의 관학 기관이었다.

서석면 서원리에는 문헌서원(文憲書院)이 있는데 최충(崔冲)과 그의 아들 유선(惟善)을 제사 지내기 위해 설립되었다. 1550년(명종 5)에 사액되었고, 1571년(선조 4)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라졌다가 1909년에 재건되었다.

고산면 석담리에 있는 소현서원은 1582년(선조 15)에 창건, 주희(朱熹)·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을 향사하였고, 이이가 강학을 하였으므로 각지의 선비들이 모여 수학하였다. 그 뒤 이이·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 등이 추향되었다.

고산면 입암리입암서원(立巖書院)은 1668년(현종 7)에 설립된 것으로 이이·성혼을 향사하였다. 이 밖에 석담·송애에 1726년(영조 2) 설립된 소현서원(紹賢書院), 나덕면 송라동에 청현서원(淸顯書院), 서석면 연근리의 보산서원(寶山書院) 등이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8년에 이종국(李鍾國)이 미율면 안곡리에 진명학교(進明學校)를 설립하였다가 일제에 의해 1920년 폐교당하였고, 1921년 김영택(金泳澤)·오국동(吳國東)이 영천면 청풍리에 해주고등보통학교(뒤의 東中學校)를 설립하였다.

이 밖에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문정면에 문헌당강습소, 고산면에 석담학원 등이 설립되었으나 일제의 억압에 의해 폐교당하였다.

1945년 현재 교육기관은 국민학교 39개교, 그 밖의 사립학교 15개교가 있다. 종교 상황으로는 불교 사찰 9개, 천주교 성당 2개, 개신교 교회 30개가 있다.

산업·교통

이 군에는 황해도 내에서는 제일 넓은 읍천평야와 취야평야가 있어서 논농사 및 밭농사가 활발하다. 1942년 현재 총농경지는 687.4㎡로서 경지율이 44.8%이다. 이 중 논이 230.4㎢로 총경지의 33.5%이며, 밭이 457㎢로 66.5%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밀 등이다. 농가 부업으로는 누에치기·소·돼지 등의 사육이 행하여지고 있다. 어업으로는 연평도·용매도·수압도·육도 등의 어장에서 조기·새우·민어·도미·갈치·숭어·망둥이 등의 어획과 조개의 채취가 많다.

특히, 연평도 어장은 5∼6월에 조기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하다. 해주만 남쪽에 있는 수압항(睡鴨港)은 섬 일대가 새우 어장으로 연평도 부근에서 소만(小滿) 사리 조기잡이가 끝나면 어부들은 중선으로 갈아타고 새우잡이에 들어간다.

광공업은 대거면 은동리와 검단면 도락리에 금이, 금산면에는 석회석, 동광면에는 고령토, 수양산에서는 화강암 등이 채굴된다. 서석면 율동리에는 화약 회사가 있으며 검단·운산면에 도자기 공장, 영천면 좌랑리에 토기 공장, 미율면 도현리에 기와 공장 및 유기점이 있다.

상업 활동은 정기 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모두 5일장이다. 이 군내에서는 1942년 현재 6개의 장이 선다. 가좌면의 취야장은 3·8일에, 추화면의 청단장·송림면의 지경장은 1·6일에, 검단면의 온천장은 4·9일에, 장곡면의 죽천장은 2·7일에 각각 열린다.

이들 시장의 주요 거래 품목은 농수산물·직물류·축산물·채소류 등이다. 이 밖에 연평도·용매도·거래포·읍천포·홍랑포·강정포 등지에서는 계절적으로 고기잡이 및 해산물 채취 철에 수산물의 거래가 크게 이루어진다.

도로와 철도가 해주시를 거쳐 재령·개성·옹진 등지와 연결된다. 주요 철도가 해주∼토성 간, 해주∼사리원 간, 해주∼옹진 간, 해주∼용당포 간에 놓여 있으며, 취야·청단·신덕은 철도 교통의 요지이다.

주요 도로는 개성·옹진·사리원·장연·남천을 잇는 국도가 해주를 중심으로 하여 군내를 통과하며, 이 밖에도 인접 군을 연결하는 3등도로가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한편, 해운으로는 해주만과 황포 연안을 따라 해항 포구가 있어 매우 활발한데, 이 중에도 연평도항·용매도항·수압도항 등은 어항과 더불어 기항지 구실도 함께 하였다.

명승지로는 석담구곡(石潭九曲) 및 지성폭포(池城瀑布)가 있으며 영천면 장방리에는 우다굴(于多窟)이 있다. 석담구곡은 선적봉과 지남산 사이의 깊숙한 계곡이다. 은병정사를 중심으로 한 상·하 석담천의 아홉 굽이 풍광이 뛰어나 1575년(선조 8) 이이가 구곡의 이름을 붙이고, 〈고산구곡가 高山九曲歌〉를 지었다.

지성폭포는 마치 푸른 하늘 은하수가 구름 끝에 걸리어 폭포수가 된 듯 그 상쾌한 물장구 소리를 내며 산곡 간에 메아리치는 굉음의 쾌활함으로 천하 절경의 장관을 이루어 일년 내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읍·면

[가좌면 茄佐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1.43㎢, 인구 9,635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취야리이다. 본래 가좌방(茄佐坊)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해주군 가좌면으로 되었으며,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되고 벽성군이 새로 편성될 때, 그 관할이 되었다.

면내에는 높은 산이 없으며, 대체로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을 형성하는 평야 지대이다. 동쪽의 서석면과의 경계에 석담천이 남류하여 서해로 흘러들고, 동남부는 황포(黃浦)에 접하고 있어 저지대를 이룬다.

취야천이 면의 서북부에서 동남류하여 취야평야 중앙을 흐르고 있다. 따라서 이들 하천과 해안선 부근은 토지가 비옥하고 수리 시설이 잘되어 있어 주요 생산 지대가 된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조·밀·콩·대마 등이 있으며, 특산물로 취야리 북부 지역의 사과와 용호리의 어패류가 있다.

해주∼옹진을 잇는 철도와 2등도로가 군의 중앙부를 동남으로 통과하므로 취야·국봉·자양에 철도역이 있으며, 해주에서 장연·태탄·용호도·강령으로 통하는 도로가 취야를 지나므로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유적으로는 취야리에 취야정과 야두재(野頭齋)가 있으며, 석담구곡에 이와 관련된 유적인 청계당·은병정사·소현서원·요금정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취야(翠野)·용호(龍湖)·장현(長峴)·오봉(五峰)·국봉(菊峰)·옥정(玉井)·자양(紫陽)·매곡(梅谷) 등 8개 이가 있다.

[검단면 檢丹面]

군의 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85.43㎢, 인구 7,251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온천리이다. 본래 검단방(檢丹坊)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검단면으로 되어 해주군의 관내에 들게 되었다가, 1938년에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새로 편성된 벽성군에 속하게 되었다.

면의 동북단에는 천봉산, 동남단에는 지남산이 있고, 마식령산맥의 지맥이 뻗은 서북부에는 작산·달마산·팔봉산(八峰山, 481m)이 잇달아 솟아 산악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산간지대에서 발원하는 광탄천은 면의 서·남부를 흐르며 유역에 평지를 형성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콩·조·맥류 등이고, 특히 산기슭 지대에서는 사과·밤·배 등의 과일이 많이 산출된다. 온천리에는 미율면에서 산출되는 고령토를 원료로 하는 도자기 공장이 있어 여기서 만든 도자기는 인근 지방으로 반출된다. 도락리에 행영동금광이 있다.

해주∼송화 간, 신천∼읍저리 간의 2등도로가 면의 서남부와 서북부를 각각 통과하여 온천리에서 교차한다. 온천리에는 탄산천(炭酸泉)인 약수가 솟아 나와 각처 주민들이 모여든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와 그 밖에 간이학교 및 학당이 1개교가 있다. 온천(溫泉)·도락(道樂)·대암(大巖)·냉정(冷井)·지남(指南)·가현(加峴) 등 6개 이가 있다.

[고산면 高山面]

군의 서부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56.02㎢, 인구 5,028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평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산면으로 되어 해주군에 속하였으며,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새로 편성된 벽성군의 관할이 되었다.

면의 북부에는 망조산(望祖山, 356m)이 넓게 동서로 뻗어, 그 여맥이 남부까지 미친다. 남부는 대체로 평지이다. 특히 면의 동쪽에는 석담천(石潭川)이 남류하고, 석담저수지가 있어 유역에 규모는 작으나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조·대마 등이다.

장연∼해주 간의 3등도로가 동북부를 통과하고 등외도로가 각 주요 마을 취락에 연결된다. 철도는 없지만 취야역이 가까워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입암리에 입암서원이 있으며, 명승지로는 석담리에 석담구곡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원평(原坪)·석담(石潭)·사현(士峴)·수정(壽井)·입암(立巖) 등 5개 이가 있다.

[금산면 錦山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79.03㎢, 인구 8,745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작천리이다. 본래 금산면은 고촌방(古村坊)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산면으로 개칭하여 해주군에 속하였으나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새로 벽성군이 되자 그 관내가 되었다.

동북부에는 설달산(雪達山, 494m)의 여맥이 면내로 뻗었고, 서부에는 설뢰봉이 높이 솟아 있어 고산 지대를 이룬다. 이 동·서의 산지 사이를 작천이 흐르고 하류는 읍천이라고 한다. 이들 강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밀·콩·과일 등과 특용작물로 목화가 재배된다. 감수리에서 석회석이 채굴되는데 주로 소석회(燒石灰)로 이용된다. 철도는 황해선이 면내를 남북으로 지나며 신주막·학현에 철도역이 있고, 이와 병행하여 해주에서 재령으로 가는 1등도로가 지난다.

명승고적으로는 고려 말 진철대사(眞澈大師)가 창건한 광조사(廣照寺)가 있었는데, 지금은 폐사되고 다만 사지(寺址)와 진철대사보월승공탑비(眞澈大師寶月乘空塔碑)가 남아 있다. 그리고 지성폭포와 지성산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작천(鵲川)·감수(甘水)·송전(松田)·추정(楸井)·학현(鶴峴)·냉정(冷井)·산산(蒜山)·부산(缶山)·신창(新昌) 등 9개 이가 있다.

[나덕면 羅德面]

군의 중앙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109.94㎢, 인구 8,180명(1941년 현재). 면 소재지는 통산리이다. 본래 이 면은 대덕방(大德坊)과 소라방(所羅坊)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병합하여 나덕면이 되면서 해주군에 속하였다가,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새로 생긴 벽성군의 관할이 되었다.

동남쪽에 멸악산맥의 여맥인 설류봉(雪留峰, 945m)을 비롯하여 서쪽에 지남산, 남쪽에 책암산·검봉산, 북쪽에 취봉 등이 높이 솟아 분지를 형성하고 있어서 대부분 지역이 산악 지대이다. 따라서 평지는 거의 없으며 다만 재령강 지류인 염탄천(鹽灘川)에 의한 침식분지(浸蝕盆地)가 몇 군데 형성되어 있다.

농업이 주요 산업이고 밭농사가 주가 되므로 조·밀을 비롯하여 콩·대마·인삼 등이 주로 생산되며, 이 밖에 곶감·시탄·목재·밤 등이 산출된다.

등외도로가 통산리에서 十자로, 통천리에서 T자형으로 교차되나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이 면에서 다른 곳으로 여행하려면 옛날부터 소석우현(小石隅峴)·월재궁현(越齋宮峴)·고유현(古踰峴) 등의 고개를 반드시 넘어야만 하였으나 현재는 사정이 많이 바뀌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통산(通山)·자하(紫霞)·전산(錢山)·한평(閑坪)·일곡(日谷)·통천(通天)·중덕(中德)·내곡(內谷)·나치(羅峙) 등 9개 이가 있다.

[내성면 來城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43.44㎢, 인구 5,573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소호리이다. 본래 내성방생성(來城坊甥城)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해주군 내성면으로 되었고,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되자 다른 면과 같이 신설되는 벽성군에 편입되었다.

동쪽에는 어사천이 추화면과의 면계를 남류하고, 서쪽은 해주만에 접해 있고, 북쪽은 영천면과의 경계를 읍천이 흐른다. 따라서 면 전체의 대부분이 비옥한 평야 지대이며, 읍천평야의 일부가 이 군에 속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 등이 생산된다. 연해의 팔학포 어장(八鶴浦漁場)에서는 조기·새우·도미·망둥이·숭어·꼴뚜기 등이 많이 어획되며, 특히 조기는 이 고장 특산물로 이름나 있다. 이탄(泥炭)이 많이 채굴되어 일반 가정용 연료로 사용된다.

해주∼토성 간 철도와 국도가 면의 북부를 동서로 지나고, 해주∼거래포 간에는 도로가 서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면내에 내성역이 있다. 해운으로는 팔학포가 있어 배의 드나듦이 활발하므로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소호(蘇湖)·대산(大山)·화전(花田)·금성(錦城)·오봉(梧鳳)·팔학(八鶴) 등 6개 이가 있다.

[대거면 代車面]

군의 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09.40㎢, 인구 7,719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평리이다. 이 면은 본래 대진방(代陳坊)과 어거방(馭車坊)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지역이 합쳐져 대거면이 되었고 해주군의 관내에 속하였다가,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되면서 다른 면과 함께 신설된 벽성군에 속하였다.

남쪽은 백운봉(白雲峰)·수대산(秀垈山) 등의 구릉의 기복으로 평지가 적으며, 북쪽은 덕대산 및 그 여맥이 뻗은 부분 외에 지역은 대체로 평지와 낮은 구릉으로 되어 있다.

북쪽의 광탄천(廣灘川)이 운산면과의 경계를 따라 서쪽으로 흐르다가 휴암에서 다시 남류하여 옹진군과의 경계를 흐르면서 유역에 넓은 평야를 전개시켰고, 면의 중앙을 서류하는 강정천과 합류하여 옹진군과의 경계 부근에도 넓은 평야를 형성하였다.

유역 평야는 토지가 비옥하고 수리 시설도 잘되어 농업 경영에 적당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대마 등이다. 은동리에는 은동광산이 있는데 금·은의 산출량이 제법 많아서 황해도 내에서 손꼽히고 있다.

태탄∼신천 간의 3등도로가 면의 서쪽 끝부분을 남북으로 지난다. 명승지로는 강정리에 조오정(潮悟亭, 일명 江亭)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간이학교 1개교가 있다. 도평(桃坪)·강정(江亭)·은동(隱洞)·숙달(淑達)·수동(水洞)·갈현(葛峴)·고산(苽山)·종평(宗坪) 등 8개 이가 있다.

[동강면 東江面]

군의 최남단 반도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7.66㎢, 인구 5,480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금리이다. 본래 해주군에 속하였으나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되면서 신설된 벽성군에 편입되었다. 1945년 8·15광복 시에 38선 이남 지역이었으나, 1953년 휴정협정 이후 휴전선 북쪽에 놓이게 되어 미수복 지역이 되었다.

지세는 반도상(半島狀)을 이루는데 동북쪽으로는 진동(津洞)·내고잔(內古棧)·택화봉(澤火峰)의 3갑(岬) ‘出’자형으로 돌출되었다. 북부에 봉대산, 남부에 덕현산 등의 낮은 구릉이 기복되어 있지만 대체로 평야 지대에 속한다.

남쪽 연안은 사빈(砂濱)으로 되어 굴곡이 단조롭지만 동·북 연안은 비교적 복잡하고, 황포 연안에는 곳에 따라 특이한 작은 만(灣)을 형성한다. 그러나 세 연안은 조석 간만의 차가 심하여 간조 때에는 선박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주민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연안 지방에서는 농·어업을 겸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조 등이며, 그 밖에 잎담배·면화의 산출도 많다. 감은 이 지방의 특산물이다. 수산물은 조기와 조개류의 어획 및 채취가 많다. 연봉리에서 질이 좋은 고령토가 산출되어 도자기 공장에 수송된다.

교통으로서 화산리는 수운, 오금리는 육운의 중심지가 된다. 면내에 3등도로와 등외도로가 통하고 멀리 해주시·용당포에도 연결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오금(梧琴)·화산(花山)·연봉(鳶峰)·금산(琴山)·덕현(德峴)·사인(舍人)·석교(石橋) 등 7개 이가 있다.

[동운면 東雲面]

군의 동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110.05㎢, 인구 8,499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덕달리이다. 본래 이 면은 동대방(東大坊)과 운곡방(雲谷坊)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지역을 병합하여 동운면으로 개칭한 후 해주군에 속하게 되었다가,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신설되는 벽성군으로 편성됨에 따라 벽성군의 관내로 되었다.

면의 동북부에는 멸악산맥이 뻗어 있고, 북쪽에 운달산(雲達山, 600m)이 솟아 있어 북부는 산간지대로 되어 있으나, 이 산지에서 발원하는 어사천이 면의 중앙을 남류하면서 동남부에 비교적 넓은 평야 지대를 형성하였다. 하천을 이용한 황해·연해 저수지는 일대 연백평야의 관개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과일 등이다. 광공업으로는 덕달광산과 병암광산(屛巖鑛山)에서 금·은이 채굴되며, 공수리에 주물 공장이 있다. 도로는 해주∼연안 간의 3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른다. 유적으로는 영정리에 1387년 이색이 건조한 영귀정(咏歸亭)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와 그 밖에 간이학교 1개교가 있다. 덕달(德達)·운양(雲陽)·사동(沙洞)·영정(咏亭)·주산(周山)·두동(斗洞)·공수(公須)·삼정(參井) 등 8개 이가 있다.

[미율면 彌栗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9.47㎢, 인구 6,324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석정리이다. 본래 미륵방(彌勒坊)과 율지방(栗枝坊)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지역이 합쳐져 미율면이 되어 해주군에 속하였다가,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새로 신설된 벽성군의 관할이 되었다.

남쪽에 수양산의 한 지맥이 뻗어 내려 망조산(望祖山, 356m)을 이루었고, 서남쪽에는 마이봉(馬耳峰, 231m) 및 100m 내외의 구릉들이 있다.

북쪽에는 지남산의 여맥인 높이 300∼400m의 산괴들이 잇달아 있어서 면의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다. 이들 산지 사이를 남북으로 높이 약 200m의 구릉이 이어져 하천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동쪽의 물은 석담천이 되어 황포 방면으로, 서쪽의 물은 광탄천이 되어 대동만 방면으로 흐른다.

이들 하천 유역에 규모는 작지만 평지가 형성되어 이 면의 농토 및 주거지가 된다. 논보다 밭이 훨씬 많으며 주요 농산물은 보리·콩·조·인삼 등이며 쌀은 약간 생산된다. 가정리에서 고령토가 산출되며, 이를 원료로 한 옹기를 도현리에서 구워 내고, 석정리에서는 고려자기를 모방한 자기를 생산한다.

도로는 해주∼송화 간의 2등도로가 면의 중앙부를 동서로 통과하며, 이 밖에 각 주요 마을에 이르는 등외도로가 있으나 교통은 불편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사립학원 4개소가 있다. 석정(石井)·둔창(屯倉)·가정(佳亭)·안곡(安谷)·매정(梅井)·내동(內洞)·동호(東湖)·도현(道峴) 등 8개 이가 있다.

[서석면 西席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110.42㎢, 인구 1만 4073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남파리이다. 본래 이 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해주군 서변면(西邊面)과 석동면(席洞面)이 되었으나,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되면서 벽성군을 새로 구성하고 서변·석동 양면을 합하여 서석면으로 개칭하였다.

면의 동북단에는 수양산과 설류봉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고 서쪽으로 책암산(冊巖山)·다보산(多寶山)·검봉산(劒峯山) 등이 잇달아 있어 면의 북부는 산간지대를 이룬다.

남부는 해안선을 따라 광대한 평야가 전개되며, 북숭산 계곡과 마이산 계곡에서 발원한 신광천이 면의 중심부로 취야평야의 일부인 서원·문정 평야를 지나 서해로 흘러든다. 또 석담천이 가좌면과의 경계를 남류하여 관개에 큰 구실을 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 등이며 신광천의 은어는 이 지방의 특산물이다. 광공업은 신광광산에서 금·은이 채굴되며, 동양리에 제지 공장, 율동리에 화약 제조 공장이 있다.

해주∼옹진 간의 철도가 남부를 동서로 지나고 문정과 서석에 역이 있으며, 해주∼옹진 간의 2등도로가 남부를 가로지르고, 해주∼신천 간의 3등도로가 면의 서북 방면을 통과한다.

유적으로는 신라 원효·의상 대사에서부터 유래되는 신광사와 석탑 등이 신광리에 있고, 연근리에는 고인돌과 보산서원이 있으며, 서원리에는 문헌서원과 충절묘가 있다.

명승지로는 문정리에 관간정(觀澗亭)이 있으며, 신광천 상류의 북암(北巖)과 승선암(昇仙巖)은 경치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 및 간이학교 1개교, 사립학원 3개소가 있다.

남파(南坡)·연근(蓮根)·신광(神光)·서원(書院)·송간(松澗)·백운(白雲)·석동(席洞)·지동(芝洞)·읍청(挹淸)·동양(東陽)·문정(文井)·율동(栗洞) 등 12개 이가 있다.

[송림면 松林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47.85㎢, 인구 5201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송현리이다. 본래 해주군에 속하였으나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되면서 새로 신설되는 벽성군에 편입되었다.

1945년 8·15광복 시에 38선 이남 지역이어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땅이었으나 1953년 휴전협정 이후 휴전선 북쪽에 놓이게 되어 미수복 지역이 되었다.

서쪽의 군계에 진목산(鎭木山)을 중심으로 높이 100m 내외의 구릉이 기복되고 그 여맥이 면의 전체에 미치지만 그외는 대체로 낮고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해안에 이른다.

남쪽은 서해에 면하여 앞바다에 육도·대수압도·소수압도·용매도·연평도 등이 있다. 연해는 멀리까지 얕은 바다가 되어 여러 곳에 간석지를 형성한다. 하천으로는 동쪽 해남면과 경계에 작은 시내가 평야 지대를 흘러 관개용수에 이용된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지만 어업을 겸업하는 경우가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면화 등이며, 수산물로 조기·조개·새우 등의 어획이 비교적 많다. 대연평도 동안(東岸)에서는 돌김의 양식이 성황을 이룬다.

특히 수압도·연평도를 중심으로 하는 해역에서는 조기의 어획이 많아 국내 3대 어장의 하나로서 조기 철에는 파시를 형성한다.

도로는 면의 중앙을 동서로 3등도로가 통과하여 서쪽의 강영리, 동쪽의 해주항에 연결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송현(松峴)·내동(內洞)·가평(佳坪)·소수압(小睡鴨)·대수압(大睡鴨)·연평(延平)·육도(六島) 등 7개 이가 있다.

[영천면 泳泉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87.99㎢, 인구 9,108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공해리이다. 본래 이 면은 천결방(泉決坊)·영동방(泳東坊)·동변방(東邊坊)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주군 관내의 영동면(泳東面)과 천결면(泉決面)으로 되었다가,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영동·천결면을 합쳐 영천면으로 하고 벽성군에 속하게 되었다.

북부는 수양산의 산줄기가 뻗어 내려 다소 높은 산간지대를 이루지만 남부로 가면서 경사가 져서 말단에서는 해안평야를 전개시킨다. 읍천이 면의 서부를, 어사천이 동부를 남류하면서 읍천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과일 등이며, 특히 근년에는 사과·배 등의 과일 수확이 증가하고 있다. 읍천포를 중심으로 한 근해에서는 조기·새우·도미·조개류 등의 어획이 많다. 좌랑리에서는 특산물로 옹기를 생산하고 있다.

경의선 철도의 토성역에서 분기되는 황해선이 이 면을 지나 영양과 천결에 역이 있으며, 도로는 해주에서 토성·곡산·남천·사리원·안악으로 통하는 국도 및 2·3등도로가 지나므로 교통이 편리하다.

명승고적으로 수산·매산·장방리에 고인돌이 있으며, 척두리에 관군정(冠軍亭)이 있고, 장방리에 우다굴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공해(控海)·매산(梅山)·수산(繡山)·영양(迎陽)·좌랑(佐郎)·척두(尺頭)·갈산(葛山)·장방(長芳)·한우(閑右) 등 9개 이가 있다.

[운산면 雲山面]

군의 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70.84㎢, 인구 6,452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지촌리이다. 본래 청산방(靑山坊)과 백운방(白雲坊) 두 지역이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지역을 합쳐서 운산면이 되면서 해주군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신설된 벽성군 관할이 되었다.

면의 북쪽은 높지 않은 대지성 구릉(臺地性丘陵)이며,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평지이다. 남쪽 면계에는 광탄천 및 그 지류가 흘러 하천 유역에 기름진 평야가 형성되었고, 주요 생산 지역 및 거주 지역이 된다.

주산업은 농업이며, 논과 밭의 비율은 거의 반반이며, 쌀·콩·밀·조·대마 등이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황금리에서 옹기가, 아랑골에서는 곱돌이 생산된다.

도로는 취야에서 장연에 이르는 3등도로가 면의 동남부를 횡단하고, 동서부에는 등외도로가 남북으로 종단하였으나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와 간이학교 1개교가 있다. 지촌(芝村)·당동(堂洞)·유정(柳亭)·황금(黃金)·오담(鰲潭)·서동(書洞)·정(柏亭)·관동(館洞) 등 8개 이가 있다.

[월록면 月祿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06.68㎢, 인구 7,499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림리이다. 본래 월곡방(月谷坊)·녹달(祿達)·월창(月倉)·월량곡(月良谷)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월록면이 되었으며 해주군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신설되는 벽성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서북쪽에 덕대산(德大山, 353m)을 비롯하여 녹달산(祿達山)·국사봉(國師峰) 등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면 전체에 뻗어 내려 구릉성 산지이다. 따라서 이 면에는 평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산악의 경사지 또는 계곡에 밭을 일구었고, 면의 동북 지역은 상림천이 동류하며 취야천에 합류하므로 이 부근에 월창평야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메밀·감자 등이다. 철도는 해주∼옹진선이 남부를 지나고, 장둔역(長屯驛)이 설치되었다. 도로는 등외도로가 주요 마을을 통하였으나 교통은 대체로 불편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간이학교 2개교가 있다. 상림(桑林)·사천(沙川)·군만(群巒)·현(三峴)·답동(畓洞)·안현(安峴)·장둔(長屯)·용정(龍井) 등 8개 이가 있다.

[일신면 日新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33.86㎢, 인구 5,217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생왕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해주군에 속하였고,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되면서 새로 신설되는 벽성군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50m 내외의 낮은 구릉이 약간 있을 뿐, 면 전체가 대체로 평야 지대를 이룬다. 동쪽은 어사천이 추화면과의 면계를 남류하면서 부근의 평야 지대를 지나고, 서쪽은 서해에 접하고 해안선에 따라 넓은 갯벌이 형성되었다.

주민의 생업은 주로 농업 및 어업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밀·콩·면화 등이 생산되며, 주요 수산물은 조기·새우·도미 등이 어획된다. 한편 무정리∼천석리에 이르는 해안선은 갯벌이 넓고 해수의 염도가 강하므로 해수를 끓여 소금을 생산한다. 여러 군의 지역에서 채굴되는 토탄은 가정용 연료로 사용된다.

도로는 해주∼거래포 간의 도로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고, 연해는 멀리까지 얕아 선박이 정박하기에 불편한 까닭에 해상 교통은 발달하지 않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생왕(生旺)·내동(內洞)·무정(武井)·법교(法橋)·심해(深海)·광전(廣田)·저산(저山)·천석(泉石) 등 8개 이가 있다.

[장곡면 壯谷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0.25㎢, 인구 7,128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죽천리이다. 본래 이 면은 고장박방(古壯朴坊)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곡면이 되었고,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신설된 벽성군의 관할이 되었다.

남쪽에 국수봉(菊水峰) 능선과 덕대산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내려 곳곳에 작은 구릉이 잇달아 있지만 대체로 평지를 이룬다. 광탄천이 면의 북서부를 남·서류하고 그 지류가 면내를 흘러 관개에 이용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대마 등이다. 광탄천변에서는 사금이 채취된다.

도로는 죽천리를 기점으로 하여 3등도로가 취야·신천·태탄·장연 방면으로 통하므로 교통은 편리하다. 유적으로는 죽천리에 죽천정사(竹川精舍), 동봉리 포동에 정철(鄭澈)의 거처였던 포천재(浦川齋)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와 그 밖에 분교 1개교가 있다. 죽천(竹川)·죽동(竹洞)·국봉(菊峰)·정현(精峴)·쌍암(雙巖)·동봉(東峰)·백운(白雲)·회산(回山)·대성(大成) 등 9개 이가 있다.

[청룡면 靑龍面]

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35.30㎢, 인구 9,390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영양리이다. 본래 청운방(靑雲坊)과 용문방(龍門坊)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곳을 합쳐 청룡면이 되었으며 해주군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되면서 신설되는 벽성군의 관할이 되었다.

동북쪽으로는 삼탄천과 어사천이 흐르고, 동남·서·남쪽은 서해에 면하고 면 전체가 낮은 평야 지대를 형성한다. 서해 연안은 굴곡이 심하고 갯벌이 넓어 간척 사업에 유리하며, 연안에 용매도(龍媒島)와 그 부속도, 선도(蟬島)·저미도(低尾島)·촌도(村島)·여념도(汝念島) 등의 도서가 산재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면화 등이며, 주요 해산물은 새우·조기·조개 등이다. 용매도는 근해어업의 중심지로 성어기에는 전국에서 고깃배가 많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고 파시(波市)가 열린다.

해주∼거래포 간의 도로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며, 해주만과 인천 등지로 운항하는 해상 수로도 발달하였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영양(迎陽)·학월(鶴月)·맹해(孟海)·학산(鶴山)·덕녕(德寧)·구정(龜井)·용매(龍媒) 등 7개 이가 있다.

[추화면 秋花面]

군의 동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80.77㎢, 인구 1만 631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약현리이다. 본래 추이방(秋伊坊)과 화양방(花陽坊)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각각 면(面)으로 되어 해주군에 속하였으나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되고 나머지 지역이 벽성군으로 편성되면서 두 면을 합하여 추화면이라고 개칭하여 이 군에 속하게 되었다.

이 면은 넓은 평야 지대로, 남쪽에 마룡산(馬龍山)이 있으며 높은 산은 없다. 동부에는 삼탄천이, 서부에는 어사천이 남류하여 연해 저수지의 수원이 되므로 하천 유역에 비옥한 청단평야(靑丹平野)가 형성되었다.

주산업은 농업이며, 주요 농산물은 쌀과 그 밖에 보리·조·콩·감자·면화의 생산도 적지 않다. 특산물로는 이탄(泥炭)이 면 전역에서 채굴되며, 옹기와 주물을 생산한다.

서해에 연한 남쪽 해안은 갯벌이며, 해안선이 멀고 얕아 어업이나 해운에 이용하기에 부적당하다. 해주∼토성을 잇는 국도와 철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청단에 역이 설치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여 상업의 주요 지대가 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와 그 밖에 간이학교 1개교가 있다. 약현(藥峴)·오천(鰲川)·향산(香山)·만송(晩松)·신왕(新旺)·서덕(瑞德)·학남(鶴南)·마룡(馬龍)·순명(順明)·월학(月鶴) 등 10개 이가 있다.

[해남면 海南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37.15㎢, 인구 4,000명(1942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남리이다. 본래 해주군에 속하였으나 1938년 해주읍이 해주시로 승격되면서 새로 신설되는 벽성군에 편입되었다.

1945년 8·15 광복 시에 38선 이남 지역이어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땅이었으나 1953년 휴전협정 이후 휴전선 북쪽에 놓이게 되어 미수복 지역이 되었다.

서북부에 학산(鶴山)이 솟아 그 여세가 면내에 미치어 서반부는 낮은 구릉 지대이나 동부의 황포에 면한 지역은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된다.

토지가 비옥하여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 등을 비롯하여 각종 농산물의 경작이 활발하다. 연해에는 조기·갈치·파래 등의 어획 및 채취가 많다. 특산물로 감이 유명하다.

황포동은 수륙 교통의 요지이나 연안의 조석 간만의 차가 심하여 선박의 운항에 불편을 준다. 육지의 교통도 이곳을 기점으로 2등도로가 사방으로 연결되어 해주시와 옹진군 옹진읍 등으로 통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오남(梧南)·항현(項峴)·봉대(峰垈)·당산(堂山)·삼봉(三峰) 등 5개 이가 있다.

광복 후 변천

1952년 옛 벽성군의 서석면·나덕면·검단면 일부와 미율면·장곡면·월록면·가좌면 등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으며, 1954년 황해도를 황해남·북도로 나눌 때 황해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61년 신광리를 해주시로 이관하였다. 현재 황해남도의 남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해주시, 서쪽은 태탄군, 남쪽은 옹진군·강령군, 북쪽은 신천군·신원군과 접하여 있다.

동경 125°22′∼125°49′, 북위 37°58′∼38°13′ 사이에 위치하며, 남쪽 끝 가까이를 북위 38°선이 횡단하고 있다. 인구는 6만 7200여 명이다.

행정구역은 벽성읍과 옥정(玉井)·장현(長峴)·석동(席洞)·서원(書院)·상림(桑林)·월현(月峴)·용정(龍井)·죽천(竹川)·쌍암(雙巖)·백운(白雲)·대성(大城)·월봉(月峰)·안곡(安谷)·내호(內湖)·도현(道峴)·통산(通山)·원평(原坪)·사현(士峴)·석담(石潭) 등 19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벽성읍이다.

군의 북쪽에는 지남산(指南山, 623m)에서 달마산(達磨山, 596m)을 거쳐 장산곶(長山串)으로 뻗어 내리는 멸악산맥(滅惡山脈)이 있고, 서쪽에는 덕대산(德大山, 353m)·국사봉(國師峰, 527m)이 있으며, 동쪽에는 책암산(冊岩山, 682m)이 솟아 있다. 책암산과 신광천(神光川)이 해주시와의 자연 경계를 이룬다.

군의 중앙을 석담천(石潭川)·취야천(翠野川)·광탄천(廣灘川) 등이 흐르면서 소규모의 선상지(扇狀地)를 퇴적시키고 있다. 남쪽의 옹진반도와의 사이에는 작산(鵲山, 357m)·상산(裳山, 307m) 등이 있고, 남동부는 황포(黃浦)와 대하고 있다. 지질은 석영반암·석회암·화강암층이 발달하였고, 토양은 산림적갈색토·산림갈색토·충적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후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를 이루어 우리 나라에서도 보양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연평균기온 10.8℃, 1월 평균기온 -5℃, 8월 평균기온은 24.5℃이며, 연 평균 강수량은 1,204㎜이다. 첫서리는 10월 7일경, 끝서리는 4월 18일경이다. 이곳의 철새로 학과 황새는 유명하다.

벽성평야(광복 전의 취야평야)는 취야저수지(翠野貯水池)가 있는 취야천, 석담호(石潭湖)가 있는 석담천의 관개의 편의를 받아 벼농사가 발달하였으며, 농산물은 밀·옥수수·조·콩·팥·메밀 등의 생산량이 많고, 가축의 소·돼지의 사육 두수도 많다.

황포에서는 김과 바지락·대합의 양식도 성하다. 월봉리 부근에서 채굴되는 고령토는 질이 우수하여 해주의 도자기 공장으로 수송되고 있다.

교통망으로는 남부를 옹진선(옹진∼해주)이 횡단하여 해주와 옹진을 잇는 도로와 함께 교통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또한, 벽성을 중심으로 하여 장연·신천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있다.

석담천 상류 계곡에는 해서 제일의 경승지로 꼽히는 석담구곡(북한 명승지 8호)이 있다. 수양산(首陽山)에서 뻗어 내리는 정봉산(鼎峰山, 327m)과 망조산(望祖山, 356m) 사이의 계곡인데, 이곳에 북한이 자랑하는 석담 휴양소가 있다.

선적봉(仙適峰)과 진암산(眞岩山)은 이이(李珥)의 유적지이며, 석담 계곡은 〈고산구곡가〉로 유명한 곳으로 이들 유적도 잘 보존되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황해도지』(황해도지편찬위원회, 1982)
『북한문화재실태와 현황』(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85)
『벽성군지』(벽성군지편찬위원회, 1987)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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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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