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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수자직으로 제직된, 다양한 종류의 단류를 총칭하였으나 현대에는 견직물을 총칭하는 용어.
이칭
이칭
주단, 깁, 필단, 저사(紵絲), 단자(段子), 단
내용 요약

비단은 조선시대에 수자직으로 제직된 단(緞)류를 총칭하였으나 현대에는 견직물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16세기 최세진이 『노걸대(老乞大)』를 번역한 『번역노걸대』에서 다양한 단 종류를 ~비단이라 언해하였다. 그 후 비단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의 문헌에 없었으며,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휘보(朝鮮彙報)』에도 여러 종류의 단직물이 기록되었으나 비단은 없다. 비단이라는 명칭은 문헌보다는 단직물을 비단이라 부르는 구어체의 관습에서 비롯되어 현대에는 ‘비단옷’, ‘비단 가게’와 같이 견직물을 총칭하는 것으로 변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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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에 수자직으로 제직된, 다양한 종류의 단류를 총칭하였으나 현대에는 견직물을 총칭하는 용어.
연원

비단은 조선시대에는 주1으로 제직된 단(緞)류를 칭하였으나 현재는 일반적인 주2주3. 비단이라는 한글 명칭이 처음 사용된 시기는 1509~1517년에 최세진이 번역한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이다. 최세진은 고려 말부터 주4이나 상인들의 중국어 학습서로 사용되어 온 『노걸대(老乞大)』에서 주5주6처럼, 수자직으로 제직된 견직물을 모두 ~비단이라 번역하였다. 예를 들면 ‘앵가록보상화단자(鸚哥綠寶相花段子)’는 ‘연초록비체보상화문하온비단’으로 번역하였으며 주7흉배주8이 된 ‘심청직금흉배단자(深靑織金胸背段子)’도 ‘직금흉배한 비단’이라 하였고 무늬가 없는 ‘소단자(素段子)’도 ‘뮌비단’이라 번역하였다. 최세진이 1527년(중종 22)에 쓴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도 “段[비단 단, 속칭 저사(紵絲)라고도 하며~]”과 같이 단(段)을 비단 단이라 번역하였다. 이런 자료들로 미루어 16세기 무렵 조선에서 비단은 수자직으로 짠, 단의 총칭이었을 뿐, 현재와 같이 일반적인 견직물의 총칭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면 비단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문헌 기록에 나오며 지금처럼, 견직물을 총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을까? 조선시대의 의복과 직물 명칭이 자세히 수록된, 『조선왕조실록』이나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상방정례(尙方定例)』, 『만기요람(萬機要覽)』 등의 문헌에 비단이라는 한자 명칭은 없었으며, 수자직의 직물은 주로 ‘단’, ‘단자’, ‘저사’로 쓰거나 좀 더 구체적으로 무늬의 유무에 따라 주9, 주10 혹은 주11, ‘소단(素緞)’으로 기록되었다. 특별히 무늬가 있는 단은 무늬의 종류에 따라서 주12, 칠보세화문단(七寶細花紋緞), 용문단(龍紋緞) 등과 같이 매우 구체적으로 부르기도 하고 색상에 따라 남단(藍緞), 홍단(紅緞)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처럼 여러 문헌 자료에서 비단이라는 용어는 찾아보기 어렵고 19세기 한글 기록인 『발기』류에서도 중국에서 보낸 옷감 물목을 한글로 적은 『비단내하발기』에 1건이 보인다. 제목은 『비단내하발기』인데 그 안에는 비단 · 주13 · 주14이 각각 별도로 적혀 있다.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휘보(朝鮮彙報)』에도 다양한 단직물 명칭이 있으나 비단은 없다. 따라서 비단이라는 명칭은 단직물을 비단이라 부르는 구어체의 관습에서 비롯되어 현대에는 ‘비단옷’, ‘비단 가게’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등 견직물을 총칭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수자직 단의 가장 이른 유물은 1346년에 조성된, 장곡사의 철조약사불에 복장된 것이며, 이보다 조금 늦은 시기의 유물은 고려시대인 983년(성종 2)에 주15, 안동의 태사묘(太師廟)에 보관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공민왕이 1361년(공민왕 10)에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주16 때 이 사당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주17 그 중에 수자직의 단 종류가 3점 남아 있다. 그 이후의 조선시대 유물은 많이 남아 있다.

변천 및 현황

의 기본 조직은 수자직으로 광택이 많고 주18. 조선 후기인 17세기까지는 대부분 5매 주19직으로 직조되었으나 1722년에 사망한 안동권씨의 당의와 저고리에 8매 경수자직의 유물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19세기 유물부터는 8매 수자직이 5매 수자직보다 더 많이 보인다. 이러한 조직법이 반영되어 『정조실록』에는 1783년(정조 7)에 5매 수자직의 공단을 뜻하는 오사단(五絲緞)과, 8매 수자직의 공단을 뜻하는 팔사단(八絲緞)이 기록되어 있다. 현대 한복용 전통 직물에서 비단은 수자직만의 직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주20주21주22주23를 포함한 모든 견직물을 총칭한다.

참고문헌

원전

『노걸대(老乞大)』
『훈몽자회(訓蒙字會)』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상방정례(尙方定例)』
『만기요람(萬機要覽)』
『고문서집성』 11, 12, 13(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기타 자료

「조선향직물명칭류휘」(『조선휘보(朝鮮彙報)』, 1915.03.01.)
이은주·조효숙, 『태사묘 소장 유물의 보존 및 복원을 위한 기초 연구』(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2001)

인터넷 자료

디지털장서각(https://jsg.aks.ac.kr/search/group?q=query|%EB%B9%84%EB%8B%A8%EB%82%B4%ED%95%98%EB%B0%9C%EA%B8%B0)
주석
주1

옷감을 짜는 방법의 하나. 날실과 씨실을 서로 얽혀 짜지 않고 일정하게 몇 올을 떼어서 짜는 방법으로 표면이 매끄럽고 윤이 나며 주로 양단, 공단 따위의 비단 옷감을 짤 때 쓴다. 우리말샘

주2

명주실로 짠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전부를 한데 모아 두루 일컫다. 우리말샘

주4

통역을 맡아보는 관리. 우리말샘

주5

생사(生絲) 또는 연사(練絲)로 짠, 광택과 무늬가 있고 두꺼운 수자직의 비단. 우리말샘

주6

중국에서 생산되는 사(紗)의 하나. 흔히 사모(紗帽)를 만드는 데 쓴다. 우리말샘

주7

황금을 가늘게 뽑아 만든 실. 우리말샘

주8

남빛 바탕에 은실이나 금실로 봉황과 꽃의 무늬를 섞어 짠 직물. 흔히 스란치마 자락의 끝에 두른다. 우리말샘

주9

무늬가 있는 비단. 우리말샘

주10

꽃무늬를 놓은 비단. 우리말샘

주11

무늬가 하나도 없는 비단. 우리말샘

주12

구름무늬를 놓은 비단. 우리말샘

주13

중국에서 나는 비단의 하나. 우리말샘

주14

두껍고, 무늬는 없지만 윤기가 도는 비단. 고급 비단에 속한다. 우리말샘

주15

건물이나 조직체 따위가 처음으로 세워지거나 만들어지다. 우리말샘

주16

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안전한 곳으로 떠나다.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말샘

주17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주다. [우리말샘](https://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312715&viewType=confirm

주18

천 따위가 단단한 올로 고르고 촘촘하게 짜여 조금 두껍다. 우리말샘

주19

날실이 직물 표면에서 많이 떠 보이게 짜는 수자직. 우리말샘

주20

씨와 날을 한 올씩 엇바꾸어 짜는 방법. 또는 그렇게 짠 천. 질기고 실용적이어서 많이 쓴다. 광목ㆍ모시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1

명주실로 무늬 없이 짠 천. 우리말샘

주22

씨실이 지나갈 때 날실의 자리를 바꿔 꼰 조직으로 짠 천. 우리말샘

주23

품질이 좋은 비단. 얇고 성겨서 여름 옷감으로 많이 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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