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압록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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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발해의 지방행정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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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발해의 지방행정기구.
내용

발해 5경 가운데 하나인 서경과 15부 가운데 하나인 압록부를 가리킨다. 서경과 압록부의 치소는 동일한 지역인 압록부의 수주(首州) 신주(神州)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아래에는 신(神)·환(桓)·풍(豊)·정(正) 4주를 속주(屬州)로 거느렸다.

『신당서(新唐書)』의 기록에 따르면 서경압록부는 발해국에서 당나라로 가는 교통로의 출발지로, 이 길은 조공도(朝貢道)라고 하였다. 서경압록부에서 당나라로 가는 길은 먼저 서쪽으로 압록강을 따라 가서 해구인 박작구(泊汋口)를 나간 뒤 뱃길로 해안을 따라 요동반도(遼東半島) 끝자락의 여순(旅順)에 이른다. 여순의 황금산에는 713년 처음 발해로 왔던 당나라 사신인 최흔(崔忻)이 돌아가면서 남긴 석각이 있었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발해만구를 횡단하여 중국 산동성(山東城)의 등주(登州)에 상륙한 뒤에 당나라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에 이른다.

서경압록부의 위치 비정설로는 정약용(丁若鏞)의 평안북도 자성북안설(慈城北岸說)을 비롯하여, 임강설(臨江說)·통구설(通溝說)‧집안설(集安說)‧평양설(平壤說)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임강설이 가장 유력시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임강시(臨江市)는 압록강 하구인 박작구에서 83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된 신주의 위치와 근접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 1970년대 이후 임강시 인근에서 지속적으로 발해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학계에서는 2005년 도로 공사로 인해 실시된 임강시 하남둔유지(河南屯遺址) 조사로 인해 임강설이 더욱 지지를 받고 있다. 이곳에서 나온 기와류는 발해 유적인 화룡 서고성(和龍 西古城)에서 나온 것과 유사하며, 토기류는 영길 양둔유지(永吉 楊屯遺址), 영길 사리파묘지(永吉 査里巴墓地)에서 나온 것과 유사하다. 발굴 보고서에는 유물을 근거로 하남둔유지를 발해시기의 비교적 상위 등급의 건축유적이며, 수륙교통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박작구의 위치 비정과 발해 수주가 신주인지 환주인지 논란이 있고, 서경압록부지라고 보기에는 발해 유적과 유물이 빈약하다는 점에서 임강설에 대한 반론도 크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발해의 서경 압록부 연구」(한규철, 『한국고대사연구』 14, 1998)
「渤海西京鴨綠府考」(韓亞男, 『中國邊疆史地研究』 25-1, 2015)
「吉林省臨江市河南屯遺址調查和試掘簡報」(徐坤, 『北方文物』 2016-1, 2016)
집필자
권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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