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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石器)

선사문화개념용어

 인류가 돌감을 이용하여 만든 모든 문명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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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전곡리 유적 주먹도끼
분야
선사문화
유형
개념용어
시대
선사-석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인류가 돌감을 이용하여 만든 모든 문명의 도구.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처음의 석기는 견과류나 뼈를 깨트리기 위해 자연돌을 그대로 망치돌로 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짐승을 공격하는데 사용되는 무기로도 사용되지만, 이러한 것들은 쉽게 식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자료도 확실치 아니하여 인류의 발달과정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석기는 자연 돌감에 떼기〔打製〕나 갈기〔磨製〕등의 방법으로 목적에 따라 사용되는 연모를 지칭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구석기시대는 전기(∼10만년 전), 중기(10만년∼4만년 전), 후기(4만년∼1만 2천년 전)로 분류되고, 중석기시대는 1만 2천년∼1만년 전, 신석기시대는 1만년∼4천년 전으로 편년될 수 있다.
인류의 기원이 점차 올라가 500만년 전까지로 되는 이 시점에도 첫 석기를 만든 집단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남쪽 원숭이) 단계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손쓴사람)이라는 주장이 일반적이고 그 연대는 250만년 전으로 보고 있다.
당시 인류는 자신들의 생활터전 옆에 있던 자연돌을 가지고 그대로 쓰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가 우연하게 돌과 돌끼리 부딪혀 떨어져나간 조그만한 돌조각〔격지: flake〕의 날카로운 날을 이용하여 자르는 것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리키(R. Leakwy) 교수는 바로 이러한 발견이 인류가 이룬 ‘첫 번째 혁명’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돌조각을 주어서 연모로 쓴 당시 사람들은 이제 실제로 돌조각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한 원래의 돌감을 손질하여 날을 만들어 찍개(chopper)를 쓰는 단계까지로 발전하였다. 이때도 역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계통의 아프리카의 올도완(Olduwan)문화로 밝혀지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구석기문화의 첫 단계에서부터 주먹도끼와 같은 연모를 만들었던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곧선사람) 단계에는 인류가 확산되어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적어도 150만년 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조지아의 드마니쉬, 인도의 아티라파캄, 말레이시아의 렌공, 중국의 니하만 유적 등)이 최근에 밝혀지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구석기시대
호모 에렉투스(곧선사람) 집단이 한반도에 처음 도착한 것은 지금까지 연구성과에 의하면, 전기 구석기단계에 도달하였음이 분명하다. 북한 학자들은 상원 검은모루동굴의 최하층 연대를 100만년 전으로 주장하고 있고, 남한에서는 단양 금굴유적의 1문화층이 70만년 전으로 발표되어, 한반도에서는 70만년 전부터 석기가 출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연모(뗀석기)를 만드는 데에는 5가지 수법(던져떼기·모루망치떼기·직접떼기·간접떼기·좀돌날떼기)이 쓰인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확인되고 있다.
검은모루동굴유적 석기의 대부분은 자연적으로 깨진 석회암 덩어리에서 쓰기에 알맞은 것을 골라 같은 층에서 사용 흔적이 확인된 석영제 망치돌로 직접떼기로 간단하게 석기날을 만든 주먹도끼형 석기, 주먹찌르개 등이 함께 출토되었다.
금굴유적에서는 부근에 있는 석영암·화강암·셰일 등의 자갈돌을 골라 모룻돌 부딪혀떼기나 망치돌로 하는 직접떼기로 만든 비전형적 주먹도끼나 찍개·주먹찌르개 등과 같은 연모가 보고되었다.
최근의 연구 결과, 35만년 전으로 주장되는 전곡리유적 11문화층(최하층)에서도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굴되어 주먹도끼 전통문화에 대한 큰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찍개·사냥돌·긁개 등 잘 다듬어진 석기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전곡리유적의 발굴 성과에 힘입어 그 주변의 연천 원당리유적, 파주 주월리·가월리유적 등에서도 주먹도끼를 비롯한 여러 점의 석기가 보고되었다. 최근에는 파주 교하 신도시 건설에 따른 유적 조사에서도 주요한 석기들이 대량으로 출토되어 보고되었다.
청원 만수리유적 1문화층에서는 직접떼기로 만든 몸돌과 긁개 등이 출토되었다. 이 층의 연대를 산소동위원소 측정법(O16/O18 method)과 같은 과학적 방법으로 청원 만수리유적 1문화층의 연대를 550Ka(Ka는 1,000년전을 의미), Be10분석으로 일본의 마츠후지 카즈토〔松藤和人〕교수 등은 3문화층을 326Ka로 주장하고 있어 앞으로 진전된 연구결과가 기대되고 있다.
중기 구석기시대(10만년∼4만년 전)를 구분하는 특징은 유럽 중심으로 살펴볼 때, 다듬은 타면〔調整打面: prepared platform〕으로 석기를 떼어내는 르발루아(Levallois)수법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르발루아수법이 현저하지 않고, 전기 구석기시대에서 보이는 석기가 정형화되어 있지 않거나 불규칙한 잔손질〔이차떼기: retouch〕이 많이 보이는 현상이 그대로 전승되면서 톱니날과 긁개와 같은 작은 석기들이 많아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첫 구석기 유적인 공주 석장리유적 9문화층과 최근 발굴된 청원 만수리유적 3문화층을 들 수 있다.
남한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금강 가에 있는 공주 석장리유적은 모두 12개의 문화층이 보고되었는데, 1∼6문화층은 구석기시대 전기로, 7∼9문화층은 중기로, 10∼12문화층은 후기로 분류하는 편년이 보고된 바 있다. 그 가운데 석장리유적 발굴의 계기를 만든 9문화층은 ‘자갈돌 찍개 문화층’으로 명명되었다. 유적 주변에 있는 자갈돌을 돌감으로 쓴 9문화층에서는 작은 돌망치로 떼기를 베푼 주먹도끼·찍개·긁개 등이 관찰되고 또한 잔손질이 잘 된 긁개와 밀개가 출토되었다.
오송과학산업단지 건설에 따라 최근에 발굴된 청원 만수리유적은 앞서 설명한 연천 전곡리유적보다도 훨씬 넓은 범위에 있는 14개 지점에서 9,000여 점의 석기가 발굴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특히 3문화층(1·4지점)은 OSL 연대측정방법으로 10만년 전으로 밝혀진 3,000점 이상의 석기들이 출토되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3문화층의 1지점에서는 톱니날 연모(denticulates)의 부류에 속하는 유물이 약 40%, 긁개가 약 20%의 구성을 보이고 있음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거의 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후기 구석기시대(4만∼1만 2천년 전)의 유적은 공주 석장리유적의 12문화층, 단양 수양개유적 1지구의 4지층과 순천 월평유적을 들 수 있다. 이 시대에는 돌날떼기 수법이 많이 쓰였지만, 직접떼기와 모루망치떼기도 병용되었음을 수양개유적 1지구에서 알 수 있다.
석장리유적 12문화층에서 발굴된 3개의 집터는 당시 사람들이 좋은 조망을 갖고 있는 환경에서 집단을 이뤄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화층에서는 돌감의 영향인지 돌날이 많이 출토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좀돌날문화의 특징을 처음으로 보고한 좀돌날 몸돌과 슴베찌르개가 출토되어 주목된다.
충주댐 수몰지역으로 조사된 남한강 변의 단양 수양개유적 1지구에서는 모룻돌을 중심으로 한 석기제작소가 50개나 발굴조사되었다. 이 유적 1지구에서 직접떼기로 만든 격지와 돌날떼기로 만든 돌날, 그리고 좀돌날떼기로 만든 좀돌날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이 시기(1만 8천년∼1만 6천년 전)에 복합적인 떼기 수법이 사용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수양개유적에서는 많은 유형의 주먹도끼가 출토되어 전기 구석기시대부터 있었던 주먹도끼 전통이 그대로 전승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층에서는 간돌도끼도 출토되어 신석기시대에 널리 쓰인 간〔磨製〕수법이 관찰되어 주목된다. 한편 수양개유적에서 출토된 곱돌〔滑石〕로 만든 치레걸이(1×1㎝)는 당시 사람들의 장신구로 해석되며 그들의 문화수준과 미의식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하다.
최근에 발굴된 순천 월평유적은 분지형태의 지형에 좁은 냇가를 중심으로 발달된 유적으로 상당히 많은 양의 석기들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도 수양개유적과 비슷한 문화특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백두산과 일본 큐슈〔九州〕가 원산지인 흑요석 석기가 출토되어 흑요석을 매체로 한 선사시대 교류 문제를 제기해주고 있다.
마지막 빙기〔뷔름기〕의 경계로 지목되는 1만 2천년 전부터 이른 신석기가 되는 1만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에 발굴된 몇 개의 유적들 가운데, 단양 금굴유적 5문화층(11,000 B.P.)이나, 홍천 하화계리유적 1지구의 문화층에서 출토된 좀돌날 몸돌은 규모가 훨씬 작아질 뿐만 아니라, 좀돌날 등면에 잔손질을 베풀어 후기 구석기와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 유적에서는 엄청난 양의 흑요석이 돌감으로 선정되어 사용되었다.
이 시기는 기간도 짧고 지층도 얇아 파괴되기도 쉬웠을 뿐만 아니라, 기후상 극상기(climatic optimum)의 영향으로 많은 유적이 훼손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석기문화의 존재는 바로 이어지는 초기(조기) 신석기문화와의 연계 문제가 대두되어 우리나라 선사문화 발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발굴된 제주도 고산리유적은 지금까지 알려진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제작과는 전혀 다른 풀 이파리를 섞어서 무늬를 베풀지 아니한 토기와 세모꼴 파인 및 돌화살촉 유물로 특징짓는 문화층이 발굴되어 이를 전기보다 앞서는 초기 신석기문화로 분류하고 있다. 이 토기는 아무르 강변의 여러 신석기유적에서 출토되었던 토기들과 비슷한 특징을 보여 조류·해류와 관계되는 문화전파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고산리유적에서는 중석기시대까지 널리 쓰인 좀돌날의 몸돌이 출토되어 그 전통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유적과 비슷한 연대의 신석기문화는 양양 오산리유적 6문화층의 연대가 12,000 B.P.로 제기된 바 있어, 중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연대가 중복되는 양상을 보여 앞으로의 연구 결과가 기대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신석기시대
신석기문화는 다시 전기(서기전 6,000∼3,500년), 중기(서기전 3,500∼2,000년), 후기(서기전 2,000∼1,000년)로 분류되고, 이들의 문화는 각기 서해안유적〔西韓土器〕·동해안유적〔東韓土器〕·남해안유적〔南韓土器〕등지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대표적인 서해안유적으로는 황해도 지탑리, 서울 암사동, 하남 미사리, 시흥 오이도 조개더미유적을, 동해안유적으로는 양양 오산리, 웅기 굴포리유적을, 남해안유적으로는 동삼동 조개더미, 수가리 조개더미, 신암유적을 들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석기는 만든 방법에 따라 간석기와 뗀석기로 구분된다. 간석기는 신석기시대 초기에도 만들어졌으나, 본격적인 사용은 중기 이후에야 나타난다. 이 석기들은 쓰임새에 따라 농경용과 공구용, 사냥·고기잡이용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농경용구는 다시 갈이용과 수확·조리용으로 구분된다. 갈이용에는 돌괭이·보습·곰배괭이·삽 등이 있고, 수확용으로는 반달돌칼·낫 등이 있으며, 조리용구로는 갈돌·갈판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미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것으로써 옥으로 만든 목걸이도 출토되고 있다.
신석기시대 전기에 처음으로 나타난 갈이용의 돌괭이는 서포항유적 1기층, 오산리유적 5-3층과 궁산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신석기시대에 농경이 이뤄지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자료임이 분명하다.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에는 돌괭이를 비롯하여 돌보습이 출현하고, 괭이의 발달된 형태인 곰배괭이와 반달돌칼·낫·갈돌·갈판 등이 나타난다. 그 밖에 공구용으로 돌칼·돌도끼·돌끌, 사냥·고기잡이용으로 돌화살촉·그물추·돌창 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석기들은 많이 출토되나 변화의 양상이 뚜렷하지 않고, 형태의 구분 등에 있어서 정형성이 확실치 않아 연구자들의 관심에서 소외되었지만, 이 문제는 농경기원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석기로는 얇은 자갈돌에 직접떼기로 양 옆에 넓은 격지를 떼어내는 타제 돌도끼와, 화강암이나 편마암을 돌감으로 골라 떼기를 베푼 뒤 갈아서 만든 간돌도끼〔磨製石斧〕나 돌대패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양양 오산리유적과 같은 해안가 유적에서는 조합식 낚시가 출토되어 물고기잡이가 당시의 식생활에 주된 생활 방편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돌로 둘레를 손질하여 만든 일부나 전체를 갈아 만든 가락바퀴〔紡錘車〕가 출토되어 옷을 만드는데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에도 석기가 사용되었는데 청동기 제작의 어려움, 재료의 희귀성 때문에 청동기가 일반에 널리 쓰이지 못하고 살림에는 간석기가 오히려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에 쓰인 석기는, 앞 시기인 신석기시대에 비하여 종류도 여러 가지이고 만든 기술도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간석기는 크게 쓰임새에 따라 농사를 짓는데 이용된 돌낫·반달돌칼·돌괭이와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데 쓴 돌도끼·돌자귀·돌대패날·돌끌이 있으며, 음식을 조리하는 데에는 갈돌·갈판이, 사냥이나 무기로는 간돌검·돌화살촉 등이 있다. 그 밖에 석기를 다듬는 데에는 숫돌이, 실을 꼬는 데에는 가락바퀴가 쓰였고, 특수한 목적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바퀴날도끼와 톱니날도끼가 있다.
반달돌칼은 곡식의 이삭을 따는데 사용된 것으로, 전국의 곳곳에서 가장 널리 오랜 기간 동안에 쓰여, 지역에 따라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간돌검은 청동기시대 간석기의 가장 대표적인 유물로 집터나 무덤 등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다. 주로 점판암 계통을 재질로 하여 만든 간돌검은 생김새나 크기로 보아 사람이 지니고 다녔던 무기로 여겨지며, 자루에 장식이 없는 것〔一段柄式: 통자루〕과 자루 한 가운데 홈이 돌려진 것〔二段柄式: 홈자루〕으로 나누어진다.
이른 시기의 돌검은 날에 실제로 쓴 흔적이 발견되며, 시기가 늦을수록 무덤에 묻기 위한 의기(儀器)적 성격이 강하여, 지나칠 정도로 크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간돌검은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연해주나 일본 큐슈에서만 출토되고 있어, 뚜렷한 하나의 지역적인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간화살촉은 신석기시대의 뗀화살촉보다 널리 쓰였다. 생김새에 따라 슴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며, 몸체의 단면에 따라서도 버들잎모양, 세모모양 등 여러 가지로 나뉘고 있다. 바퀴날도끼와 톱니날도끼는 부족 간의 빈번한 투쟁의 산물로 보거나 무덤의 부장품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석기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가장 많이 쓰인 도구로서 문화와 문명의 단계로 이어지면서까지도 인류의 애용품과 중요품으로 사용돼왔다. 지금까지 발굴된 시기별 다양한 석기 유물의 존재 양태와 특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문화의 발전 단계를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며 대표적인 석기 유물들은 인류 역사의 시기를 구분하는 중요한 문화지표로서 활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뗀석기는 전기 구석기시대부터 나타나지만 전국적인 규모로 다양한 형태의 뗀석기가 다량 발굴조사된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에 돌입해서이다. 한반도의 구석기문화는 찍개문화와 주먹도끼문화를 포괄하고 있음으로 해서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구석기문화의 보편적 양상을 보인다. 한편 신석기시대에 등장한 간석기는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매우 발달된 형태를 드러내는데, 신석기∼청동기시대에 쓰인 간석기는 농경·어로·수렵·의례·전쟁 등 다방면에 걸쳐 사용됨으로써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원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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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장리유적과 한국의 구석기문화  (손보기, 학연문화사, 2009)

  • 『국가 사적 제458호-순천 월평유적-』(이기길·김수아,조선대학교 박물관,2009)

  • 한국 신석기문화의 전개  (임효재, 학연문화사, 2005)

  • 『우리의 선사문화(Ⅰ)』(이융조 외,지식산업사,1994)

  • 『오산리 유적 Ⅱ』(임효재·권학수,서울대학교 박물관,1982)

  • 「구석기시대-구석기시대의 시기 구분-」(배기동,『한국사』2,국사편찬위원회,1997)

  • 「구석기시대:구석기시대의 유물」(정영화,『한국사』2,국사편찬위원회,1997)

  • 「홍천 하화계리 중석기시대유적 발굴조사보고」(최복규·김용백·김남돈,『중앙고속도로 건설구간내 문화유적발굴조사보고서』,강원도,1992)

  • 「단양 수양개 후기 구석기문화」(이융조,『제5회 국제학술회의-세계 한국학대회:한국학의 과제와 전망』,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9)

  • 「단양 도담리 금굴유적 발굴조사보고」(손보기,『충주댐 수몰지구 문화유적 연장발굴조사보고서』(손보기,충북대학교 박물관,1985)

  • 「석장리 자갈돌 찍개 문화층」(손보기,『한국사연구』1,1968)

  • 「韓國最古の遺跡-萬水里遺跡の調査」(松藤和人,『日本と東アジアの舊石器考古學』,雄山閣,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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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ouch
주04
통자루
주05
홈자루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한병삼
개정 (2011년)
이융조(한국선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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