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은 계금졸(罽衿卒)이었다. 660년(무열왕 7)에 왕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 의자왕의 항복을 받은 뒤, 11월 5일 계탄(雞灘)을 건너 왕흥사잠성(王興寺岑城 :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蔚城山城)을 공격하여 700여인을 참살하고 7일에 성을 함락하는 전과를 올렸는데,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같은달 22일에 태종무열왕이 백제에서 돌아와 전쟁의 공로를 논할 때 급찬(汲飡)을 제수받았다.
이 미디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비스에만 활용하도록 허가받은 자료로서, 미디어 자유이용(다운로드)은 불가합니다.
항목 내용 중 오류나 보충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 또는 미디어 설명에 수정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남겨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 시 아래와 같이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