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하대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고달산(高達山 : 지금의 경기도 여주로 추정됨.)지역에서 산적의 괴수로 활동하였다.
그 뒤 825년 정월에 김헌창(金憲昌)의 아들 범문(梵文) 등과 더불어 모반하여, 그 무리 100여 명과 함께 도읍을 평양(平壤 : 지금의 경기도 양주)에 정하려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공격하였으나 한산주도독 총명(聰明)에게 잡히어 죽음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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