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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오악(新羅五嶽)

고대사제도

 신라시대 국가의 제사(祭祀) 대상이 되었던 다섯 산악(山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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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명신라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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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함산
분야
고대사
유형
제도
성격
법제, 의례, 산악
시대
고대-남북국-통일신라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신라시대 국가의 제사(祭祀) 대상이 되었던 다섯 산악(山嶽).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신라오악은 삼국통일 이전에는 경주평야를 중심으로 한 경주 주변의 산악이었으며, 통일 이후에는 신라의 중앙과 사방의 산악으로 확대되었다. 신라 사람들은 이러한 산악에 신적인 존재가 거주하는 것으로 믿는 산악숭배사상을 가지고 산신에 대해서 제사를 지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삼국통일 이전 신라오악은 신라 중심부인 경주평야를 둘러싸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21, 경주부 산천조에는 토함산(吐含山)을 동악, 금강산(金剛山)을 북악, 함월산(含月山)을 남악, 선도산仙桃山)을 서악이라고 하였고 『삼국사기』41, 열전 1, 김유신(상)의 단석산(斷石山)이 중악이었다.
그 뒤 신라 영토가 확대되고 통일을 성취한 뒤인 문무왕 말년 혹은 신문왕대에 국토의 사방과 중앙에 있는 산악으로 변화하였다. 동악은 토함산, 서악은 계룡산(鷄龍山), 남악은 지리산(地理山)주 01), 북악은 태백산(太伯山), 중악은 부악[父嶽: 팔공산(八公山)]이다. 신라 오악은 서악인 계룡산 하나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가 소백산맥 일대와 그 동남쪽에 있는 산악들로,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구분되어 있는 신라통일기의 국가제사에서 중사에 편입되었다. 오악에 대한 제사는 각 산에 거주한다고 생각한 산신에 대한 제사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변천과 현황
중국에서 오악은 9주의 진(鎭)으로 된 대산(大山) 중에서 숭상하던 다섯 방위의 명산으로, 수(隋)·당(唐)나라 이후 국가의 제사를 대사·중사·소사로 나누면서 오악을 중사의 하나로 제사하였다. 그리고 당대에는 오악과 사해의 신을 모두 왕(王)으로 봉하기도 하였다.
신라오악 역시 사진, 사독, 사해와 함께 중사에 편제되었다. 반면 고려는 악·해·독에 대한 제사가 잡사에 편제되어 있다. 조선은 오악이 아닌 4악을 두고 사진을 두지 않았으며, 3해와 7독을 설치하였다. 이처럼 신라오악은 고려·조선과 달리 천자국의 산천규범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신라오악의 하나인 지리산과 공산은 고려시대에도 국가제사 대상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지리산이 4악의 하나인 남악으로 숭배되었다. 고려시대에는 토함산에 안치된 탈해의 소상을 동악신 내지는 ‘동악대왕’이라 불렀고, 신라의 남악 지리산과 중악 공산의 산신도 고려시대 대왕으로 호칭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신라는 삼국통일의 결과 영토가 확대됨에 따라 전국의 명산대천에 대한 국가의 제사제도를 확충 정비하였는데, 이 때 신라는 명산대천 제사를 대사·중사·소사로 등급화하였다. 이것은 신기(神祇)세계의 재편성과 전국의 명산대천에 대한 국가의 제사권 장악을 통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국가통치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오악은 통일신라의 상징적인 존재의 하나로서, 국방 수호의 의미 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각 방면의 일정한 정치적 세력을 진압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동악인 토함산은 석탈해가 산신으로 모셔진 점으로 미루어 석씨세력의 상징적 산이었으며 . 중악인 부악은 본래 압독국이 있었던 지역이었다. 북악인 태백산은 신라가 죽령을 넘어 고구려의 옛 영토를 점유한 뒤에 이 지역의 세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숭배된 곳이었다. 남악인 지리산은 구가야 세력을, 서악인 계룡산은 구백제세력을 염두에 두고 신성시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智異山
주02
八公山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기동
개정 (2017년)
채미하(경희대학교, 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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