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

자연지리
지명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군 · 함양군 · 하동군에 걸쳐 있는 산.
이칭
이칭
두류산(頭流山), 방장산, 지리산(地理山), 남악(南嶽)
지명/자연지명
면적
440.4㎢
높이
1,915m
소재지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하동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지리산은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하동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높이 1,915m, 둘레 800여 리, 면적 440.4㎢에 달한다.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지는 이 산은 삼신산(三神山), 조선의 12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히며, 오악(五嶽) 중 남악(南嶽)에 해당한다. 화엄사를 비롯한 사찰과 국보, 천연기념물 등 많은 문화재가 분포한다. 현대사에서는 여순사건, 6·25 전쟁 등 좌익 · 우익의 격전지로서 뼈아픈 상처를 남기게 된다.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군 · 함양군 · 하동군에 걸쳐 있는 산.
개설

지리산은 높이 1,915m, 둘레 800여 리에 달하는 남한에서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동경 127°27′∼127°49′, 북위 35°13′∼35°27′에 위치한 이 산은 면적이 440.4㎢이며, 전라북도에 107.7㎢, 전라남도에 87.9㎢, 경상남도에 244.7㎢ 분포한다.1967년 12월 29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명칭 유래

지리산은 이칭(異稱)과 별칭(別稱)이 많다.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이라 쓰지만 읽기는 지리산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리산을 그 음대로 지리산(地理山)이라 쓴 기록도 많다. 원래 ‘智異’는 지리라는 우리말의 발음을 글자로 적은 것일 뿐이며, 지리는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나온 이름이다. 두래는 ᄃᆞᆯ(달)의 분음(分音)으로서 ‘두리’ · ‘두류’ 등으로 바뀌어 ‘頭流’ · ‘豆流’ · ‘頭留’ · ‘斗星’ · ‘斗流’ 등으로 한자를 붙여 지명이 된 것이 많다. 이 중 두류(頭流)는 백두산의 맥세(脈勢)가 흘러내려서 이루어진 산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러한 지리산(地理山) · 두류산(頭流山) 등이 지리산의 이칭이다.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삼신산은 중국 전설의 주3 동쪽에 있다는 주4 · 방장산(方丈山) · 주5으로, 이곳에 주6주7과 황금(黃金) · 백은(白銀)으로 만든 궁궐이 있다는 『사기(史記)』의 기록이 있는데 지리산은 이 중 방장산에 대비가 된다. 그 밖에 봉래가 금강산, 영주가 한라산이다. 여기에 묘향산을 더하여 4대 신산(四大神山)이라 하고, 그에 구월산을 합하여 5대 신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나 지리산을 신산(神山)으로 꼽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다.

서산대사 휴정(休靜)지리산을 웅장하나 수려함은 떨어진다(壯而不秀)고 표현하였다. 또 『팔역지(八域志)』의 저자 이중환(李重煥)은 그의 산수론(山水論)에서 지리산을 조선의 12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오악(五嶽) 중 남악(南嶽)에 해당되며 12종산(宗山)의 하나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 『호남읍지』, 신경준(申景濬)의 『산수고(山水考)』,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도 모두 지이산(智異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두류산 · 방장산 · 지리산(地理山) · 남악 등의 이칭이 소개되어 있고, 두류의 류(流)자는 백두산의 맥이 잠시 정류(停留)하였다 하여 류(留)로 쓰는 것이 옳다는 제안도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두류산(頭留山)이라는 이칭이 하나 더 추가된다.

자연환경

주능선주8 방향은 서남서∼동북동으로,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 주9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칠선봉(七仙峰, 1,576m) · 덕평봉(德坪峰, 1,522m) · 명선봉(明善峰, 1,586m) · 토끼봉(1,534m) · 반야봉(般若峰, 1,732m) · 노고단(老姑壇, 1,507m) 등이, 동쪽으로는 중봉(1,875m) · 하봉(1,781m) · 싸리봉(1,640m) 등이 이어진다. 주능선과 거의 수직 방향으로 발달한 가지능선은 700∼1,300m의 고도를 나타내며, 종석대(鐘石臺, 1,356m)에서 북으로 고리봉(1,248m) · 만복대(萬福臺, 1,433m) 등의 연봉이 나타난다. 주능선의 남사면과 북사면을 따라 주10, 주11, 주12, 주13, 한수골, 도장골, 목동골, 대성골 등의 계곡들이 발달하였다.

수계는 크게 낙동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로 나누어진다. 산의 북부와 동부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주14 · 주천(朱川) · 남천(藍川) 등이 흐르고, 남부와 서부로는 섬진강의 지류인 화개천(花開川) · 서시천(西施川) 등이 흐른다. 지리산에서 발원한 낙동강과 섬진강 지류들의 강력한 주15으로 깊은 주16이 형성되었으며, 산지 정상부는 둥근 모양을 나타내는 험준한 산세를 나타낸다.

산지의 주변에는 동쪽에 산청, 남쪽에 하동 · 광양, 서쪽에 구례, 북쪽에 남원 · 함양 등의 도시와 계곡에 마을이 발달하고 있어 원상(圓狀)을 이룬다.

산 일대에서는 산악성 기후의 특성이 나타난다. 남동쪽 지역에는 빈번한 저기압의 통과와 여름철의 고온다습한 남동계절풍이 남동 사면에 부딪혀 상승함으로써 발생하는 지형성 주18로 인하여 많은 비가 내린다. 겨울에 산지의 북서쪽은 한랭건조한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기온이 낮은 데 반하여, 남동쪽은 산지에 의하여 계절풍이 저지되므로 추위에서 보호되고 남해를 흐르는 동한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비교적 온화하다.

지리산 인근의 5개 지역 기상대(남원, 함양, 산청, 순천, 진주)에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수집한 기후자료에 따르면, 연평균기온은 13℃이고, 연간 최고 · 최저기온은 각각 35.9℃, -12.5℃이다. 평균 강수량은 1,455.3mm이며, 하계 집중 현상이 높게 나타난다. 산지의 영향으로 연중 흐린 날씨가 많은 편이고, 주19주20이 탁월하며 안개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형이 복잡하고 산정에 걸치는 낮은 구름과 계곡에 자주 끼는 짙은 안개 때문에 주21이 짧은 편이다.

식생은 137과 536속 1,369종이며, 이 중 희귀 및 멸종 위기 식물은 32과 56종으로 섬말나리 · 주22 · 약난초 · 천마 · 사철란 · 주23 · 솜다리 · 삼백초 · 모데미풀 · 백부자 · 세뿔투구꽃 · 주24 · 주25 등이 있다. 또한, 한국 특산식물 407종류 중 46종류가 있으며, 지리산 특산식물은 19종류이다. 지리산 특산식물은 주26 · 왕개서나무 · 지리개별꽃 · 지리바꽃 · 얼룩함박꽃나무 · 지리말발도리 · 히어리 · 주27 · 주28 · 주29 · 주30 · 주31 · 긴잎물들메나무 · 긴잎쇠물푸레 · 주32 · 지리오리방풀 · 둥근오리방풀 · 주33 · 주34가 있다.

야생동물은 포유류 16과 46종, 조류 111종, 어류 30종, 양서류 2목 5과 11종, 파충류 2목 5과 16종, 곤충 23목 271과 2,697종으로 되어 있다. 희귀 및 멸종 위기 동물로는 포유류가 붉은박쥐 · 하늘다람쥐 · 여우 · · 대륙목도리담비 · 수달 · · 늑대 · 표범 · 호랑이 · 사향노루 등 11종, 조류가 고니 · 말똥가리 · 붉은배새매 · 새매 · 주35 · 황조롱이 · 재두루미 · 주36 · 소쩍새 · 올빼미 · 큰소쩍새 · 주37 · 아물쇠딱따구리 · 주38 · 주39 · 돼지빠귀 등 16종, 어류가 꼬치동자개 1종 등이다. 또한 파충류는 자라 · 구렁이 · 능구렁이 · 주40 · 무자치 · 주41 · 주42 · 살모사 8종, 양서류는 도롱뇽 · 꼬리치레도롱뇽 · 물두꺼비 · 북방산개구리 · 아무르산개구리 6종, 곤충류는 붉은점모시나무 · 주43 · 주44 · 대왕팔랑나비 · 주45 · 비단벌레 · 주46 · 알락수염산꽃하늘소 · 주47 · 알락수염하늘소 · 우산하늘소 · 큰풍뎅이 · 장수풍뎅이 · 주48 · 톱사습벌레 15종이 있다.

형성 및 변천

지리산 일대는 주49 중기에 넓은 바다였으며, 여기에 진흙 · 모래 · 주50 등이 퇴적 및 침전되어 주51 · 사암 · 석회암 등의 퇴적암류가 처음으로 형성되었다. 선캄브리아기 중기에서 말기에 이르기까지 세 번 이상의 주52주53이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퇴적 지층들이 주54 또는 편암으로 변성되었다. 선캄브리아기 말기에는 산청 · 운봉 · 하동 일대에 규모가 큰 주55이 일어나 염기성화성암류가 주56.

고생대[^57] 초기부터 중기에 이르기까지 이 일대는 다시 바다로 뒤덮여 투박한 퇴적 지층이 쌓였다. 고생대 말기에는 점점 넓은 호수로 변하기 시작하였고, 식물의 잔해인 석탄층이 셰일 · 사암 등의 퇴적 지층과 함께 두껍게 쌓이기도 하였다. 고생대 지층은 그 후 침식작용과 주58을 받아 대부분 소멸하였고, 호남탄전 지대인 화순탄광 일대에 소규모로 남아 있다. 주59 초기와 중기에 걸쳐 우리나라에서는 격렬한 지각운동 · 화성활동 · 변성작용이 일어났는데, 이를 주60이라 부르며 이 지역도 이 운동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 대보조산운동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대부분 지역이 솟아올라 육지화되었고 지리산 일대도 이때 높은 산지로 변하였다. 대보조산운동 이후 현재까지 약 1억 5,000만 년 동안 계속하여 침식 · 풍화 · 융기 작용을 받아 젊은 주61 지층들은 씻겨 없어졌고 나이 많은 선캄브리아기 암층들이 노출되어 있다.

지리산을 형성하는 암석은 대부분이 변성암류로서 편마암과 편암이 나타나며 이 중 편마암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편암은 소규모 렌즈상으로 편마암 중에 포위되어 나타나는데 주62 · 주63 · 클로리토이드편암 등으로 분류된다. 그 밖에 변성화성암류가 산청 · 하동 · 운봉 일대에 남북 방향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고, 화성암류도 형제봉(1,115m)과 산청 일부에 소규모로 분포되어 있다.

지리산은 주64주65 이후 간헐적인 융기 작용과 이에 따른 침식 및 삭박에 의하여 고도가 서로 다른 주66이 나타난다. 대체로 1,000∼1,100m 고도에서 주67으로 나타나는 고위침식면은 백악기 말에 지형면이 형성된 뒤 제3기 주68 이래의 신기구조운동(新期構造運動)으로 현재의 고도에 분포하며, 중신세 후기 이래의 신기삭박면은 주69주70을 이루고 있다. 특히, 세석평전(細石平田)은 고기삭박면으로 제4기 빙기의 한랭기후에서 주71 형성작용을 받아 비대칭 산릉을 이루며, 유상구조토(瘤狀構造土)가 발달하였다. 이 밖에도 600m 고도에는 중위평탄면이 각 사면을 따라 분포하며, 200m 내외의 저위평탄면은 선상지와 복합된 형태를 띤다.

역사와 문화유적

구석기주72 · 주73주74의 유물 · 유적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의하면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던 것은 주75 시대의 인간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산악지대가 아닌 대체로 주변의 낮은 주76에서 원시적인 농경을 행하면서 수렵과 주77 활동도 병행하였을 것이다.

남원시 이백면 초촌리 등지에서는 앞에 짧은 돌출부가 달린 진주식(晉州式) 장방형 석곽고분이 분포하고 있어, 주78 지방으로부터의 영향을 말해준다. 산청에는 원삼국 주79의 유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고대국가가 형성되면서부터 지리산은 산신신앙의 대상으로 부각이 된다. 신라 때에는 삼산오악신(三山五嶽神)을 제사하였다. 삼산은 봉래 · 방장 · 영주로 이 중 방장이 지리산에 비견된다. 오악은 동의 토함산, 남의 지리산, 서의 계룡산, 북의 태백산, 중의 부악(父嶽)으로, 나라에서 제사하며 국가와 백성의 행복을 빌었다. 고려시대에도 계속 지리산을 남악으로 삼아 주80에 올렸다고 하는데 이때 많은 사찰과 산신당이 세워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지리산은 주81 · 송악산(松嶽山) · 비백산(鼻白山)과 함께 사악신(四嶽神)으로 정해져 나라의 제사를 받았다고 한다. 김종직(金宗直)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는 대표적인 산신 신앙의 예가 수록되어 있다. 그가 마흔 살 되던 해 가을 종도(宗道)와 선공(鮮空)이라는 두 승려의 안내를 받아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에 올라 제일 먼저 성모묘(聖母廟)에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그가 당시 목격한 이 성모묘의 모습은 당집의 너비가 3칸이고 양쪽 벽에 중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으며, 지리산 성모상은 주82으로 분대(粉黛)로 얼굴과 머리, 눈, 눈썹이 칠해져 있었다. 머리 부분에 칼로 벤 듯한 금이 가 있어 그 연고를 물으니 태조가 등극 전에 이 근처 주83에서 왜구를 칠 때 크게 패한 왜병이 이 성모의 신조(神助)로 태조가 승첩을 거두었다 하여 보복의 뜻으로 두쪽을 내었던 것을 뒤에 모아 맞춘 것이라 하였다. 성모묘의 동쪽, 바위가 오목하게 꺼진 부분에 돌을 쌓고 그곳에 조그만 불상을 하나 세워 놓았는데 그것을 국사(國師)라 부른다.

이와 같은 민족의 성산(聖山)으로서의 지리산의 위치는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다. 영남과 호남의 양 지방에 걸쳐서 그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위치적 특성과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험하지는 않다는 지형적 특징 때문에 역사상 특이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우선 백제의 망국민 일부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섬진강 유로를 따라 연안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가 그 도피처로서 지리산을 취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 이후 특히, 임진왜란을 겪은 뒤에는 병화(兵火)와 흉년이 없는 피란 · 보신의 땅을 찾는 정감록신앙(鄭鑑錄信仰)이 지리산을 찾게 된다.

『정감록』 감결(鑑訣)과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祕記)』 · 『도선비결(道詵祕訣)』 · 『남사고비결(南師古祕訣)』 ·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南格庵山水十勝保吉之地)』 · 『이토정가장결(李土亭家藏訣)』 · 『서계이선생가장결(西溪李先生家藏訣)』 등 도참서류(圖讖書類)에는 대부분 피란 · 보신의 장소로 열 군데(이름하여 十勝地라고 함)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운봉두류산(雲峰頭流山), 즉 지리산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정감록 관념은 한말에 이르러 농민운동에 실패한 동학교인들이 유민이 되어 흘러 들어오고, 이들 일부가 신흥종교를 개창하였다. 오늘날 계곡 도처에 흩어져 있는 사찰과 산신당 이외에 이러한 민족종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산간 마을이 일부 흩어져 있는데,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갱정유도(更正儒道) 신자들로 구성된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도인촌일 것이다. 그들은 주84를 전설상의 청학동(靑鶴洞)이라 일컬으며 댕기머리와 상투와 바지 저고리로 우리의 전통 문화 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청학동은 선조 때의 문인 조여적(趙汝籍)『청학집(靑鶴集)』에 신선에 대한 기록에서 나온 말로, 우리 민족의 이상적인 길지로 구전되어 오던 곳이다.

이런 명산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사에서는 좌익 · 우익의 격전으로 뼈아픈 상처를 남기게 된다. 1948년 10월의 여순사건에서 패퇴한 좌익 세력의 일부가 지리산으로 입산하였으며, 1950년 주85 때에도 북한군의 주86 일부가 노고단과 반야봉 일대를 거점으로 하여 양민 학살, 촌락 방화, 산림 주87 등의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우리나라 31본산(本山)의 하나이며 10대 사찰 가운데 첫째인 화엄사(華嚴寺)를 비롯한 10여 개의 사찰과 국보 · 보물 · 천연기념물 등의 많은 문화유산이 있어 곳곳마다 유적지이다.

주능선을 기준으로 남쪽 사면을 겉지리(表智異 또는 外智異)라 하고 북쪽 사면을 속지리(裏智異 또는 內智異)라 하는데, 민간신앙과 관계된 유적은 주로 속지리 쪽에, 그리고 불교 신앙 유적은 겉지리 쪽에 분포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있는 화엄사신라 때인 544년(진흥왕 5) 연기(緣起)가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하여 전소된 것을 인조 때 벽암(碧巖)이 재건하였다. 일설에는 화엄종(華嚴宗)을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의상(義湘)주88 곳이라고도 한다. 경내에는 우리나라 3대 목조건물 중의 으뜸인 화엄사 각황전(국보, 1962년 지정)을 비롯하여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962년 지정) ·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 · 화엄사 동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1963년 지정) · 화엄사 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 등이 있다. 또 입구에는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300여 년의 올벚나무[彼岸櫻]가 있는데 인조가 병자호란 이후 무기 재료로 쓰기 위하여 심게 한 것이라 한다.

연곡사(鷰谷寺) 역시 연기에 의하여 화엄사와 같은 해에 창건된 사찰로,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피아골 남쪽에 위치하여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완전히 소실되었고, 지금은 일부만이 중건되어 남아 있다. 경내에는 고려 초의 석조 예술을 대표하는 연곡사 동 승탑(국보, 1962년 지정) · 연곡사 북 승탑(국보, 1962년 지정) ·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1963년 지정) · 연곡사 동 승탑비(보물, 1963년 지정) ·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보물, 1963년 지정) · 연곡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등이 있다.

천은사(泉隱寺)는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차일봉(遮日峰) 남쪽에 있는 사찰로, 829년(흥덕왕 4) 덕운(德雲)이 창건하였다. 천은사는 본래 감로사(甘露寺) 또는 천언사(天彦寺)라 불리던 것을 임진왜란 때 불탄 이후 1678년(숙종 4)에 다시 세우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지방문화유산 두 점이 있으며 주89의 산지로 이름이 높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쌍계사(雙磎寺)는 723년(성덕왕 22)에 삼법이 창건하였다. 처음에는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다가 정강왕 때 쌍계사라고 이름을 지어 하사하였다고 한다. 경내에는 최치원(崔致遠)의 친필 비문으로 된 쌍계사 진감선사탑비(국보, 1962년 지정) · 쌍계사 승탑(보물, 1963년 지정) 등이 있다. 쌍계사 북쪽 8㎞, 화개면 범왕리에는 103년(파사왕 24) 가야국의 주90이 일곱 왕자를 위하여 지었다는 칠불암(七佛庵)이 있다. 이 절에는 신라 효공왕 때 운공(雲空)이 만든 주91이 유명하다. 아(亞)자형의 온돌방으로 한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방 전체가 데워지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천왕봉 동쪽 기슭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는 548년 연기가 창건한 대원사(大源寺)가 있다. 현재의 것은 1948년에 소실된 것을 1963년에 재건한 것이다.

법계사(法界寺)도 544년 연기가 창건한 주92으로 천왕봉 남쪽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있다. 경내에는 자연석을 기단으로 이용하여 만든 법계사 삼층석탑(보물, 1968년 지정)이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지리산 서북쪽 기슭 만수천(萬壽川) 강변에는 828년(흥덕왕 3) 증각(證覺)이 창건하였다는 실상사(實相寺)가 있다. 경내에는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보물, 1963년 지정) · 실상사 수철화상탑비(보물, 1963년 지정) · 실상사 석등(보물, 1963년 지정) · 실상사 승탑(보물, 1963년 지정) ·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등의 문화유산이 있고, 인근 산내면 대정리 백장암(百丈庵) 삼층석탑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특히, 실상사에는 풍수사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의 내원사(內院寺), 산청군 신동면 율현리에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이 있는 율곡사(栗谷寺),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의상이 창건하였다는 정취암(淨趣庵), 함양군 마천면에 1968년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는 벽송사(碧松寺) 등이 있다. 율곡사 대웅전은 가구수법(架構手法)이 특이하여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조립한 것으로 일명 몽침절이라고도 불린다. 몽침이란 베고 자는 목침의 다른 이름인데, 목공(木工)이 목침을 쌓아 절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문화 행사로 지리산약수제(智異山藥水祭)가 있는데 주93을 전후하여 열린다. 이것은 신라 때부터 행하여지던 제천행사의 하나로 지리산신사(智異山神祠)라 하였으며,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남악사(南嶽祠)라 하였다. 현재의 약수제라는 명칭은 곡우 무렵에 거자목(距杍木)에 상처를 내서 나오는 물이 만병통치에 유효하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이 약수제는 일제 침략과 한국전쟁을 전후로 중단되었다가 1962년부터 노고단을 중심으로 다시 열리면서 지역 주민의 공동체의식의 함양에 기여하고 있다.

문학 · 예술 속에 나타난 모습

우리나라의 기본 골격이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계가 중추가 된다는 인식은 예로부터 이어져 왔다. 신경준은 「산수고」에서 산의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산맥세의 흐름을 상세하게 파악하였으며, 뒤에 이것을 기초로 『산경표(山經表)』가 만들어졌다.

백두산을 시작으로 하여 지리산에서 끝나는 맥세를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지리산은 민족의 진원지며 영산으로 추앙받는 백두산의 한반도 남부를 대변하는 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이것이 풍수사상에서는 민족적인 주체의식을 상징하는 의미를 띠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실상사의 풍수 전설이다. 백두산의 기맥(氣脈)이 이곳을 지나 일본으로 연결되는데 그 지기(地氣)를 끊어 놓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이 바로 실상사라는 것이다. 실상사 약사전에 봉안된 4,000근짜리 무쇠로 제작된 철조 여래 좌상은 높이 2.6m로 좌대 없이 땅바닥에 그대로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과 일본 주95을 일직선상으로 바라보게 되어 있는데, 맨바닥에 철불을 모신 이유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지기를 막자는 데 있다는 것이다. 보광전 범종에 그려진 일본 지도 역시 매일 종을 때릴 때 얻어맞는 위치에 일본이 그려져 있어 위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리산 도처에서 들을 수 있는 설화들인데, 남원시 주천면 노치산 갈재의 「숯막이야기」는 고종이 그곳에 숯 수천 가마를 쌓고 불을 놓아 일본으로 가는 지맥을 막았다는 이야기이다. 임진왜란, 동학운동 혹은 의병항쟁 때 왜군을 피하여 들어간 사람들의 한 맺힌 이야기들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리산에는 지리천왕(智異天王)과 여신(女神) 숭배의 설화들이 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을 보면 그는 천왕봉에 발을 딛고 맨 먼저 그 천왕봉에 있는 성모묘에 제를 올리는데, 당집에 들어가 주과(酒果)를 차려놓고 성모상 앞에서 비는 일이 그것이었다. 이 성모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로 주96의 어머니인 주97이라는 설이 그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불교에서 마야부인상을 숭배하는 전통이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설은 후세의 윤색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고려왕계를 성스러운 혈통으로 인식시키기 위하여 고려 왕실에서 도선선사(道詵禪師)로 하여금 이 성모상을 만들게 하였다는 설이다. 성모에 대하여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지금 지리천왕은 곧 고려 태조의 비 위숙왕후(威肅王后)라 하고 고려 사람들이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이야기(三國遺事 感通 第七, ‘仙桃聖母隨喜佛事’에 수록)를 듣고 이를 그들 임금의 핏줄로 삼고자 이를 만들어 받든다고 하였다. 셋째로 도선이 지리산에 선암(仙巖) · 운암(雲巖) 등 삼암사(三巖寺)를 세우면서 이 절을 세우면 삼한을 통일할 수 있다는 성모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 뒤 고려를 세워 후삼국을 통일한 뒤 계시를 내린 성모상을 세워 받들었다는 설이다. 넷째로 중국의 여신인 마고(麻姑)가 동쪽으로 와 정착한 것으로 믿고, 그 여신 숭배가 이 성모상을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전설에 지리산의 산정에 사는 여신의 이름이 마고 또는 마야고(麻耶姑)로 불린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그래서 마고성모라는 복합어를 쓰기도 한다. 「마고전설」은 지리산의 능선을 형상화하고 있는 면도 있다. 전설 속 마고는 반야(般若)를 사랑하였다. 어느 날 반야는 돌아오겠다고 기약하고 떠났으나 돌아오지 않았고, 마고는 기다림의 초조함에 나무를 할퀸다. 이것이 지리산 주 능선 부근의 주98이다. 그 올로 베를 짜던 자리가 세석평전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천왕봉의 돌무덤 위에 앉아서 서쪽 하늘을 보면 낭군봉인 반야봉이 마치 달려올 듯한 산세로 눈에 담긴다.

산 주변에서 익히 들을 수 있는 설화 · 전설들 외에도 음악에 있어서 민요가 주변 산촌에서 불리고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지리산을 주 대상으로 삼은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아리랑의 경우, 「남원아리랑」 · 「하동아리랑」 등이 있으나 지리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지리산을 소재로 혹은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들을 보면 『고려사』 악지나 『증보문헌비고』에 작자나 연대는 알려지지 않은 「지리산가(智異山歌)」라는 백제 때의 가요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이것이 지리산에 대한 최초의 문학 · 예술 작품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구례의 한 여인이 지리산 밑에 살았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주99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임금이 그 여자를 데려가고자 하나 죽기를 한하고 듣지 않으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본격적인 지리산 기록은 역시 기행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조선 시대의 기행문으로는 김종직의 「유두류록」(佔畢齋集 권2), 이륙(李陸)의 「유지리산록(遊智異山錄)」(東文選 권21), 남효온(南孝溫)의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秋江文集 권6), 김일손(金馹孫)의 「속두류록(續頭流錄)」(濯纓集 권5), 조식(曺植)의 「유두류록」(南冥文集 권4), 양대박(梁大樸)의 「두류산기행(頭流山紀行)」(淸溪集 坤), 박장원(朴長遠)의 「유두류산기(遊頭流山記)」(久堂集 권15), 정협(鄭悏)의 「유두류록(遊頭流錄)」(東文選 권21), 송병선(宋秉璿)의 「두류산기(頭流山記)」(淵齋文集 권21) 등이 있다. 이 중 김일손의 지리산 기행문 내용에서 몇 가지 표현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일행은 종자(從者)를 제외하고 정여창(鄭汝昌) · 임정숙(林貞淑) 등 세 사람이며, 날짜는 4월 14일이다. “단성(丹城) 서쪽으로 15리를 지나 또 비탈을 타고 서너마장을 가니 골짜기 입구 바위에 ‘광제암문(廣濟巖門)’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획이 고고(高古)하여 세상에서 최치원(崔致遠)의 수적이라고 전한다. …… 나무를 휘어 농기구를 만들고 쇠를 달구어 연장을 만드는 것으로 생업을 삼는 마을이 있어 감탄하니, 따라온 중이 일러주기를, 이런 외진 땅에 사는 것은 이정(里正)의 박해가 없고 과중한 부역의 고통을 받지 않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 길은 없고 다만 천길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마치 은하수를 거꾸로 쏟는 듯하고, 오가는 나무꾼이 작은 돌멩이를 올려놓아 길을 표시하여 두었는데 나무그늘이 하늘을 가리어 햇볕이 들지 않았다. 시내가 그치고 대숲을 헤쳐 나오니 이윽고 땅은 모두 돌인데, 칡덩굴을 더위잡고 굴면서 숨가쁘게 10여 리를 걸어서 한 높은 고개에 오르니, 철쭉꽃이 활짝 피어 별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우람한 봉우리 세존암(世尊巖)을 만나 마침 사다리가 있어 올라가 바라보니 천왕봉이 10리 정도 되어 보였다. 여기서 5리쯤 가서 법계사(法界寺)에 닿으니 중은 한 사람밖에 없고, 산꽃이 곱게 펴 저문 봄철을 수놓았다. …… 저물녘에 봉우리의 절정에 오르니 바위 위에 한 칸의 판옥(板屋) 한 채가 겨우 서 있었다. 그 안에 여자의 석상이 있는데 이른바 천왕(天王)이란다. 지전(紙錢)이 어지러이 들보 위에 걸리었고, ‘김종직 · 유호인(兪好仁) · 조위가 성화 임진(成化壬辰, 1472년)에 함께 오르다’고 쓰여 있었다. 예전에 구경 온 사람들의 성명을 훑어보니 당세의 호걸들이 많았다.”

위의 일부 인용한 글로써 당시 지리산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묘사가 섬세하다. 또 알려진 한시로는 김부의(金富儀)의 「등지리산(登智異山)」, 김돈중(金敦中)의 「지리산차계부운(智異山次季父韻)」, 이색(李穡)의 「두류산」, 이첨(李詹)의 「두류산」, 양성지(梁誠之)의 「지리산」, 최익현(崔益鉉)의 「등두류산(登頭流山)」 · 「천왕봉(天王峯)」, 유방선(柳方善)의 「청학동(靑鶴洞)」 등이 있다.

현대작품으로는 이병주(李炳注)『지리산』, 문순태(文淳太)의 『달궁』과 『피아골』, 서정인(徐廷仁)의 『철쭉제』, 조정래(趙廷來)의 『태백산맥』, 박경리(朴景利)『토지』 등의 소설이 있는데, 대부분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좌우 대립에 따른 민족의 뼈아픈 과거를 묘사하고 있다. 이는 현대사에서 지리산이 첨예한 이념 대립의 공간이었던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산을 둘러싸고 있는 전라북도 · 전라남도 · 경상남도의 작가들로부터 시 · 소설 · 수필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발표되었으나, 대부분이 서정성을 짙게 풍기는 것들이다. 이것은 아마도 직접 몸으로 그 뼈저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쓰라린 상처를 덮어두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지 여겨진다. 혹은 묵중하고 푸근한 지리산이 그 섬세한 정기로 모든 인간의 아픔을 감싸 안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원과 이용

이 지역에는 고령토 · 주100 · 금 · 은 · 니켈 · 수연 등의 광물이 산출된다. 고령토는 산청 · 하동 일대에 넓게 분포하며 세계적으로 희귀한 암석인 변성아노르소사이트가 오랜 세월을 두고 풍화작용을 받아 생성되어 매우 품위가 높다. 요업의 원료 광물로 귀하게 쓰일 수 있는 양질의 고령토는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출 위주로 없애기보다는 주요 전략 지원 광물로 비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원시 산내면 뱀사골과 그 밖의 여러 지역에서는 반도체 원료로 쓰이는 질 좋은 규석광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편마암류를 관입한 석영맥에서 산출되고 있다. 이 밖에도 니켈과 수연광이 운봉읍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경제성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리산은 남한의 총 삼림 축적량의 19%를 차지하는 방대한 주101을 보유하고 있다. 전나무 · 잣나무 · 가문비나무 · 주목 등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수종은 기존 임목을 보호함과 아울러 파괴된 식생을 완전 식생으로 복구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사방조림용 임목도 지리산에서 자생하고 있는 잔디 · · 오리나무 종류를 사용함으로써 생태계를 자연 상태에 가깝도록 유지하는 것이 임산자원을 확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지리산은 산형이 다기다양(多奇多樣)하고 고준광대(高峻廣大)하면서 중후인자(重厚仁慈)하여 아버지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한 주102 주103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196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리산은 천왕봉 · 반야봉 · 노고단 등의 3대 주봉과 함께 해발 1,500m 이상의 큰 봉만도 십지(十指)를 보유하고 있고, 피아골 · 뱀사골 · 화엄사계곡 등 10㎞ 이상의 계곡이 10여 개나 된다. 또한 불일폭포(佛日瀑布) · 구룡폭포(九龍瀑布) · 칠선폭포 · 가내소폭포 등이 명소를 이룬다. 북동쪽으로는 남강(南江)이, 남서쪽으로는 섬진강이 흘러 강과 산의 조화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은 세석평전을 덮고 있는 철쭉나무 군락, 피아골의 원시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노고목(老古木)과 전설처럼 신비한 고사목(枯死木), 그리고 사향노루 · 산양 등 동물의 안락한 서식지로서의 가치와 함께 의미 깊은 관광자원들이 많은 곳이다. 거기에 웅대한 사찰들과 유서 깊은 암자들, 국보보물 · 사적 · 천연기념물들이 지리산의 정취를 한결 돋보이게 한다. 세석평전에는 매년 5월에 철쭉제가 열리고, 매년 4월에는 자작나무에서 받은 수액으로 지리산약수제를 지낸다.

현황

지리산10경으로 노고운해(老姑雲海) · 피아골단풍 · 반야낙조(般若落照) · 섬진청류(蟾津淸流) · 벽소명월(碧沼明月) · 불일폭포 · 세석철쭉 · 연하선경(烟霞仙景) · 천왕일출(天王日出) · 칠선계곡을 꼽는다. 수려한 산세로 매년 탐방객들이 많이 찾으며 16개 코스의 탐방로와 21개 구간의 지리산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탐방로는 구룡계곡 코스, 삼신봉 코스, 주104 코스, 정령치∼바래봉 코스, 만복대 코스, 화엄계곡 코스, 피아골 코스, 반야봉 코스, 불일폭포 코스, 중산리(장터목) 코스, 중산리(칼바위) 코스, 백무동∼중산리 코스, 백무동 코스, 거림 코스, 유평(대원사) 코스, 노고단 코스가 있다. 천왕봉 정상은 이중 중산리(장터목) 코스, 중산리(칼바위) 코스, 백무동~중산리 코스, 백무동 코스, 거림 코스, 유평(대원사) 코스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의 개방 이후 많은 탐방객의 방문과 함께 일부 탐방객들의 취사, 야영, 쓰레기 투기 등 불법행위로 훼손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에 국립공원공단은 자연 생태계의 보존을 위해 훼손이 우려되는 지역을 선정하여 일정 기간 출입을 제한하는 주105를 시행하였다. 1991년 1월부터 1993년 12월까지 3년간 실시한 제1기 자연휴식년제에는 총 13개의 공원이 선정되었으며, 지리산의 훼손된 탐방로가 여기에 포함되었다. 제1차 자연휴식년제를 통해 탐방객들이 밟고 지나가며 딱딱해졌던 토양이 부드러워지고 식생이 회복되는 등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시행된 제2기 자연휴식년제는 대상 범위를 넓혀 지리산의 희귀 식물군락지가 추가되었다. 1997년부터 시행된 제3기 자연휴식년제의 대상에는 산 정상부 훼손지역 및 희귀동물 서식지가 추가되어,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서식지로 예상되는 구산리왕시루봉노고단 등산로(16km)의 출입을 금지하였다. 추가로 지리산 세석평전 철쭉 군락지, 제석봉 구상나무 군락지가 보호 필요성이 있는 주106 군락지로 선정되어 출입 금지구역에 추가되었다. 1998년 7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는 지리산과 북한산 국립공원을 대상으로 최초의 계곡휴식년제가 시행되었다.

교통은 경부선, 호남선, 전라선통영대전고속도로, 순천완주고속도로, 광주대구고속도로의 연결을 통해 접근성이 향상되었다. 지리산으로 향하는 교통로는 주로 성삼재로 향하는 861번 지방도와 정령치를 통과하는 737번 지방도, 노고단로 등이 이용된다. 노고단로는 본래 ‘지리산 일주도로’ 혹은 ‘지리산 관통도로’라고 불리던 861번 지방도에 포함된 구간이었으나, 2020년 11월에 861번 지방도에서 해제되고 구례군이 관리하는 주107 12호선으로 변경되었다. 성삼재휴게소와 시암재휴게소가 포함된 천은사에서 달궁삼거리까지의 구간은 동절기에 출입이 통제된다.

인근 도시에서 버스를 통해 당일에 가볼 수 있는 관광지도 있다. 남원에서 16㎞ 떨어진 호경리에서는 구룡폭포를 볼 수 있고, 32㎞ 떨어진 산내면에서는 실상사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4㎞를 더 들어간 함양군 마천면에서는 백무동계곡과 칠선계곡을 구경할 수 있으며, 다시 산내면에서 8㎞를 더 들어간 반선에는 유명한 뱀사골계곡이 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대동지지(大東地志)』
『동문선(東文選)』
『산경표(山經表)』
『삼국유사(三國遺事)』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점필재집(佔畢齋集)』
『족암문집(族庵文集)』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택리지(擇里志)』
『호남읍지(湖南邑誌)』

단행본

김정길, 『전북의 백대명산을 가다』(신아출판사, 2001)
정치영, 『지리산지 농업과 촌락 연구』(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6)
『지리산지역개발에 관한 조사보고서』(지리산지역개발조사연구위원회, 1963)
『지리산국립공원식물자원조사』(건설부, 1979)
『한국지지』총론(건설부국립지리원, 1980)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전라북도종합개발계획』1982∼1991(전라북도, 1982)
『한국지지』지방편 Ⅲ(건설부국립지리원, 1985)
『지리산국립공웜 자연생태계보전 계획』(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관리사무소, 1997)
『지리산국립공원 야생동물생태계 정밀조사』(국립공원관리공단, 1998)
『구례군지』(구례군지편찬위원회, 2005)
『지리산국립공원 자원 모니터링』(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 2006)
『한국지명유래집: 전라·제주편』(국토지리정보원, 2010)

인터넷 자료

국립공원공단 자료실:2019 지리산국립공원 공원자원조사(https://www.knps.or.kr/research/main.do)
국립공원 역사 아카이브:자연휴식년제 시행(http://www.knps.or.kr/history/exhibition/view?eidx=123)
주석
주1

달리 부르는 명칭. 우리말샘

주2

달리 부르는 이름. 우리말샘

주3

중국의 요동반도(遼東半島)와 산둥반도에 둘러싸인, 황해(黃海)의 한 만. 면적은 4만 2900㎢. 우리말샘

주4

중국 전설에서 나타나는 가상적 영산(靈山)인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 동쪽 바다의 가운데에 있으며,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고 한다. 우리말샘

주5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산. 이 이름을 본떠 우리나라의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이르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6

도(道)를 닦아서 현실의 인간 세계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산다는 상상의 사람. 세속적인 상식에 구애되지 않고, 고통이나 질병도 없으며 죽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말샘

주7

먹으면 죽지 아니하고 오래 살 수 있다는 약. 우리말샘

주8

산등성이를 따라 죽 이어진 선들 가운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선. 우리말샘

주9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에 걸쳐 있는 봉우리.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높이는 1915미터. 우리말샘

주10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계곡. 심원 계곡, 문수 계곡과 함께 지리산 3대 계곡으로 불린다. 폭포와 원시림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우리말샘

주11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계곡. 여러 산봉우리와 폭포가 계곡을 둘러싸고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명승 정식 명칭은 ‘지리산 한신 계곡 일원’이다. 우리말샘

주12

전라남도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계곡. 지리산 국립 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량이 풍부하고 곳곳에 크고 작은 소(沼)와 폭포가 형성되어 있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우리말샘

주13

지리산의 반야봉에서 연곡사 사이의 계곡. 폭포, 담소, 심연이 계속되는 풍경이 뛰어나고 특히 이곳 단풍은 지리산 10경의 하나로 손꼽힌다. 우리말샘

주14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에서 발원해 사천시 곤명면 남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방 하천. 우리말샘

주15

비, 바람, 빙하, 강물 따위의 움직임에 의하여 지표면이 점점 깎이는 작용. 우리말샘

주16

험하고 좁은 골짜기. 우리말샘

주17

전라북도 남동부에 있는 시. 동쪽은 경상남도 함양군ㆍ하동군, 서쪽은 임실군ㆍ순창군, 북쪽은 장수군, 남쪽은 전라남도 구례군ㆍ곡성군과 접한다. 북동부ㆍ동부ㆍ남동부가 소백산맥에 속하는 산지이다. 중서부에 춘향 테마파크와 광한루가 있으며, 동쪽에는 뱀사골 계곡이 있다.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남서에서 북동으로, 순천 완주 고속 도로와 전라선이 남북으로 시를 관통하며 지난다. 1995년 1월 행정 구역 개편 때에 남원군을 통합하여 도농 복합 형태의 시를 이루었다. 면적은 753.04㎢. 우리말샘

주18

산맥의 경사진 면을 따라 상승하는 습한 기류가 단열 팽창으로 기온이 낮아지면서 냉각되어 구름을 이루어 내리는 비. 우리말샘

주19

산의 사면(四面)의 모양과 온도 변화에 따라 부는 바람. 낮 동안에 골짜기에서 산등성이로 부는 바람을 골바람이라고 하고, 밤사이에 산등성이에서 골짜기로 부는 바람을 산바람이라고 한다. 우리말샘

주20

지형ㆍ수륙 분포ㆍ기압 배치 따위의 영향으로, 한정된 특정 지역에서 일반풍과는 다른 풍향ㆍ풍속ㆍ빈도로 부는 바람. 산곡풍, 해륙풍, 높새바람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1

구름이나 안개 따위에 가려지지 아니하고 햇볕이 실제로 내리쬐는 시간. 우리말샘

주22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20~50cm이며, 땅속줄기는 마디가 많고 거의 새우 등과 비슷하다. 잎은 뭉쳐나고 긴 타원형이며, 뒷면에 잔털이 있다. 5월에 흰색 또는 연붉은색 꽃이 총상(總狀) 화서로 줄기 끝에 핀다. 산림, 대나무밭 등의 음지에 나는데 한국, 일본, 동부 아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23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5~15cm이며, 화서와 원줄기에 부드러운 털이 있다. 7~8월에 붉은 자주색 꽃이 줄기 끝에 총상(總狀) 화서로 피고 열매는 길쭉한 달걀 모양의 삭과(蒴果)를 맺는다. 높은 산에 나는데 강원, 제주, 함경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24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미터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고 3~5개로 깊고 가늘게 갈라진다. 7~9월에 보라색 꽃이 줄기 끝에 총상(總狀) 화서로 피고 열매는 골돌과(蓇葖果)를 맺는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지리산과 설악산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25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원줄기가 없으며,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는다. 잎은 뿌리에서 뭉쳐나고 잎자루가 길다. 6~7월에 흰색 꽃이 짧고 가는 꽃줄기 끝에 하나씩 피고 삭과(蒴果)를 맺는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지리산 이북 깊은 산의 나무 밑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26

볏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2미터이며, 잎은 피침 모양이고 겉면은 윤이 난다. 4월에 자주색 꽃이 원추(圓錐) 화서로 3~6송이 달린다. 죽세공(竹細工)에 쓴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전남과 지리산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27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뿌리줄기는 굵고 짧으며, 검은 갈색이다. 7~8월에 자주색 꽃이 핀다. 우리나라의 지리산에서 자란다. 우리말샘

주28

콩과의 낙엽 활엽 관목. 높이는 1~2미터이며, 잎은 타원형으로 끝이 뾰족하다. 9월에 붉은 자주색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피고 열매는 끝이 실 모양인 협과(莢果)로 11월에 익는다. 잎은 동물의 먹이, 나무껍질은 섬유용으로 쓴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산골짜기의 개울가에서 나는데 경기 이남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29

콩과의 낙엽 관목. 가지가 많고 가늘며, 잎은 삼출엽이다. 조록싸리와 싸리의 잡종으로 자주색 꽃이 핀다. 우리나라의 지리산에서 자란다. 우리말샘

주30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미터 이상이며, 뿌리는 통통하고 유즙이 있으며 악취가 난다. 잎은 여러 번 갈라지고 잔잎은 달걀 모양 또는 넓은 타원형이다. 7월에 흰색 꽃이 복산형 화서로 줄기 끝에 피고 타원형의 열매를 맺는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산지에서 자라는데 지리산과 덕유산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31

물푸레나뭇과의 물푸레나무와 들메나무의 잡종. 들메나무와 비슷하나 작은 잎이 일곱 개이고 꽃받침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구재로 쓴다. 지리산, 백운산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32

물푸레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 높이는 10미터 정도이며, 잎은 마주나고 타원형이다. 5월에 흰색 또는 자주색 꽃이 원추(圓錐) 화서로 피고 열매는 삭과(蒴果)로 9월에 익는다. 관상용이고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우리말샘

주33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60~100cm이며, 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깊게 갈라지는 원형이다. 7~8월에 엷은 황색 꽃이 원추(圓錐) 화서로 피고 열매는 털이 없는 수과(瘦果)이다. 애순은 식용하며 한국 특산종으로 지리산, 덕유산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34

국화과의 두해살이풀. 까치고들빼기에 비하여 잎이 깃 모양으로 갈라지며, 까치고들빼기와 고들빼기의 잡종으로 보이는 중간형(中間形)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 지리산에서만 자라는 특산종이다. 우리말샘

주35

수릿과의 새. 몸의 길이는 암컷은 30cm, 수컷은 26cm 정도이며, 수컷은 등 쪽이 짙은 회색이고 머리 뒤에는 흰색 무늬가 있다. 암컷은 잿빛을 띤 검은 갈색이다. 흔히 단독 생활을 하고 새, 곤충 따위를 잡아먹는데 암컷은 사냥매로 기른다. 한국, 중국, 인도, 대만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36

두견과의 하나. 날개의 길이는 21cm이다. 수컷의 머리와 목은 어두운 잿빛이고, 배 부분은 흰 바탕에 검은색의 가로줄 무늬가 있다. 암컷은 가슴 위쪽에 붉은 갈색빛이 많이 돈다. 동남아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37

호반샛과의 새. 몸의 길이는 25cm 정도이며, 턱 밑부분은 흰색, 그 아랫부분은 밤색이고, 부리ㆍ다리는 선명한 적색이다. 여름 철새로 한국, 중국, 인도 등지에서 번식한다. 우리말샘

주38

딱따구릿과의 새. 오색딱따구리와 비슷하나 몸이 더 크며 등이 검고 허리는 희다. 한국, 일본,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39

종다릿과의 새. 종다리와 비슷한데 몸빛은 잿빛을 띤 갈색이고 가슴에 진한 얼룩점이 있다. 부리가 크고 정수리에 갓털이 있다. 다른 종다리는 울 때에 갓털을 세우지만 이 새는 흰 털을 뿔처럼 뻗친다. 한국, 중국 동북부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40

뱀과의 파충류. 몸의 길이는 50cm 정도이며, 등은 어두운 갈색이고 배는 흰색이며 목에는 띠 모양의 무늬가 있다. 개구리나 작은 물고기, 지렁이 따위를 먹는다. 독이 없으며 난생으로 한국, 일본, 만주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41

뱀과의 하나. 몸의 길이는 8~10cm이고 실같이 가늘며, 등 쪽은 녹색을 띤 연한 갈색, 배 쪽은 누런빛을 띤 흰색이다. 등에는 누런빛을 띤 흰색의 세로줄이 꼬리까지 있고 머리에는 검은 얼룩점이 있다. 한국, 일본, 타이, 몽골, 중국 북부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42

살무삿과의 뱀. 우리나라에 사는 독사 가운데 가장 독성이 강하고 몸집이 크다. 머리는 삼각형이며 정수리에 화살 모양의 흰 무늬가 있고, 눈과 콧구멍 사이에 홈이 패어 있다. 우리말샘

주43

흰나빗과의 곤충. 편 날개의 길이는 8~10mm이며, 몸빛은 검은데 잿빛을 띤 흰색 털이 나 있다. 애벌레로 겨울을 보내고 성충은 6~7월에 꽃에 모이는데, 애벌레는 사과나무, 벚나무 따위의 잎을 갉아 먹는다. 한국, 일본, 중국, 아무르, 러시아의 사할린ㆍ시베리아,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44

부전나빗과의 곤충. 편 날개의 길이는 2.5cm 정도이며, 날개의 앞면은 검은 갈색, 뒷면은 흰 바탕에 바둑 모양의 검은 무늬가 흩어져 있다.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45

네발나빗과의 곤충. 편 날개의 길이는 6~6.5cm이며, 앞날개 끝부분에 타원형의 투명한 막으로 된 무늬가 있다. 한국, 만주,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46

하늘솟과의 하나. 몸의 길이는 1.3~3cm이며, 수컷은 검은색이나 암컷은 갈색이고 딱지날개가 짧다. 딱지날개와 더듬이의 제삼 마디 이하가 누런 갈색이다. 애벌레는 너도밤나무의 마른 재목에 구멍을 뚫는다. 한국, 일본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47

하늘솟과의 곤충. 몸의 길이는 1.4~2.4cm이며, 누런 갈색에 앞가슴 중앙에 검은 띠가 두 줄, 붉은 갈색 띠가 한 줄 있고 딱지날개에는 검은 띠가 있다. 애벌레는 뽕나무의 해충이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48

풍뎅잇과의 곤충. 몸의 길이는 2.2cm 정도이며, 검은색이다. 수컷의 정수리에는 굽은 뿔이 하나 있다. 쇠똥에 모여드는데 한국,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49

캄브리아기 이전의 지질 시대. 약 46억 년 전부터 약 5억 7000만 년 전까지의 시대를 말하며, 시생대와 원생대로 나눈다. 우리말샘

주50

석회의 성분. 우리말샘

주51

점토(粘土)가 굳어져 이루어진 수성암(水成巖). 회색이나 검은 갈색을 띠며, 흔히 얇은 층(層)으로 되어 잘 벗겨지는 성질이 있다. 우리말샘

주52

지구 내부의 원인 때문에 생기는 지각의 동요와 변형. 융기, 침강, 단층, 습곡, 조산 운동, 화산 활동, 지진 현상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53

지각 내부에서 암석 조직과 광물 조성이 그 장소에서의 물리적ㆍ화학적 조건에 적합하도록 재구성되는 작용. 접촉 변성 작용, 광역 변성 작용, 매몰 변성 작용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54

반드시 장석을 포함하고, 석영ㆍ운모ㆍ각섬석 따위로 이루어진 변성암. 수성암과 화성암의 두 종이 있는데, 운모가 조각 모양으로 섞이고 다른 광물도 줄무늬를 이룬 것이 화강암과 다르다. 우리말샘

주55

마그마에 의하여 일어나는 모든 작용. 화산 분화, 화산암의 생성, 심성암의 관입(貫入)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56

꿰뚫어 들어가다. 우리말샘

주57

지질 시대의 구분에서 원생대와 중생대 사이의 시기. 지금부터 약 5억 7000만 년 전부터 2억 4000만 년 전까지를 이른다. 시간적 순서에 따라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페름기로 세분한다. 우리말샘

주58

물, 얼음, 빙하, 바람 따위가 땅이나 바위를 깎아 닳게 하는 작용. 우리말샘

주59

지질 시대의 구분에서 고생대와 신생대 사이의 시기. 지금부터 약 2억 45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이다. 겉씨식물이 번성하였고, 공룡과 같은 거대한 파충류를 비롯하여 양서류ㆍ암모나이트 따위가 번성하였다.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다시 나뉜다. 우리말샘

주60

중생대 쥐라기 때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가장 큰 지각 변동. 화산 활동과 습곡 작용을 동반한 대규모 조산 운동이었다. 우리말샘

주61

지질 시대의 구분에서 원생대와 중생대 사이의 시기. 지금부터 약 5억 7000만 년 전부터 2억 4000만 년 전까지를 이른다. 시간적 순서에 따라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페름기로 세분한다. 우리말샘

주62

흑운모 및 석영을 주요 구성 광물로 하는 결정 편암. 우리말샘

주63

석영을 주성분으로 하는 결정 편암. 우리말샘

주64

중생대를 다시 셋으로 나누었을 때 가운데에 해당하는 지질 시대. 약 1억 8000만 년 전부터 약 1억 3500만 년 전까지의 약 4,500만 년간의 시기이다. 양치식물, 은행나무, 소철류, 파충류, 암모나이트, 공룡 따위가 번식하였으며, 조류의 선조인 시조새도 나타났다. 우리말샘

주65

지층에 파도 같은 주름이 생기는 운동. 우리말샘

주66

침식 및 삭박 작용에 의하여 기복이 거의 없이 평탄화된 지표면. 우리말샘

주67

기복이 작은 평탄한 면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 우리말샘

주68

신생대 제3기를 다섯으로 나누었을 때 네 번째로 오래된 시대. 지금으로부터 2,400만 년 전부터 520만 년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우리말샘

주69

지반이 아래쪽으로 휘어들어 가 곡강(曲降)에 의하여 이루어진 낮고 편평한 지역. 우리말샘

주70

보통 해발 고도 600미터 이상에 있는 넓은 벌판. 우리말샘

주71

빙하 지역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지형. 땅이 얼었다 녹았다 하는 것을 반복하여 암석의 붕괴가 일어나고 그 붕괴된 조각들이 운반ㆍ퇴적되어 생기는 지형이다. 우리말샘

주72

신석기 시대에 앞선 석기 시대. 대개 70만 년에서 1만 년 전에 해당하는 시기로, 구석기 및 골각기를 사용하고 동물을 사냥하거나 나무 열매를 채집하여 식생활을 했다. 우리말샘

주73

문화 발전 단계에서 구석기 시대의 다음, 금속기 사용 이전의 시대. 약 1만 년 전에 시작하여서 기원전 3000년 무렵까지로, 간석기와 골각기를 사용하였으며, 토기와 직물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생산 단계가 수렵에서 농경과 목축으로 이행하였다. 우리말샘

주74

무기, 생산 도구와 같은 주요 기구를 청동으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의 중간 시대로, 중국에서는 은(殷)나라ㆍ주(周)나라가 이 시기에 해당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천년경에 시작되었는데, 이때에 청동기의 사용으로 생산력이 향상되고 강력한 군대가 조직되어 강대한 왕국이 출현하게 되었다. 우리말샘

주75

청동기 시대에 사용한 무늬 없는 토기. 지역에 따라 팽이형 토기, 미송리식 토기, 화분형 토기 따위가 있으며 빛깔은 붉은 갈색이다. 우리말샘

주76

땅이 비탈지고 조금 높은 곳. 우리말샘

주77

고기나 수산물 따위를 잡거나 거두어들이는 일. 우리말샘

주78

신라 유리왕 19년(42)에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 12부족의 연맹체를 통합하여 김수로왕의 형제들이 세운 여섯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 금관가야를 맹주로 하여 여섯 개가 있었는데, 562년에 대가야를 마지막으로 신라에 병합되었다. 우리말샘

주79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 철기 시대 이후에 등장하는 시기.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로 선사 시대에서 역사 시대로 전환하는 과도기적 시기이다. 우리말샘

주80

통일 신라ㆍ고려ㆍ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지내던, 대사(大祀) 다음가는 제사. 대사보다 의식을 간단히 하여 지냈다. 우리말샘

주81

‘북한산’의 다른 이름.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있어 이렇게 부른다. 우리말샘

주82

돌을 조각하여 만든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 우리말샘

주83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면. 남원시의 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대부분 산지와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연비산과 서룡산, 남쪽으로 덕두산 등에 걸쳐 있고, 면의 일부가 지리산 국립 공원에 속한다. 람천과 풍천이 면의 곳곳을 지나며, 하천을 따라 농경지가 발달하였고 축산업도 활발하다. 명소로 흥부골 자연 휴양림이 위치해 있다. 24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며 지난다. 2018년 전라북도 남원시 통계 연보를 기준으로 면적은 37.46㎢. 우리말샘

주84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에 있는 이. 청암면의 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사방이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북서쪽에 삼신봉이 걸쳐 있고, 청학동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에 묵계 저수지가 있으며, 횡천강이 남북으로 흐른다. 하천을 따라 1014번 지방도, 1047번 지방도가 두 갈래로 지난다. 우리말샘

주85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이 북위 38도선 이남으로 기습적으로 침공함으로써 일어난 전쟁.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이루어져 휴전선을 확정하였으며, 휴전 상태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우리말샘

주86

싸움에 진 군대의 병사 가운데 살아남은 병사. 우리말샘

주87

나무를 함부로 베어 냄. 우리말샘

주88

제자에게 교리를 전하다. 우리말샘

주89

차나무의 어린 새싹을 따서 만든 차. 찻잎이 참새의 혓바닥 크기만 할 때 따서 만든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우리말샘

주90

가야의 시조(始祖)(?~199). 일명 수릉(首陵). 하늘로부터 김해의 구지봉에 내려와 육 가야를 세웠다는 여섯 형제의 맏이로,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재위 기간은 42~199년이다. 우리말샘

주91

‘亞’ 자 모양으로 방고래를 만들고 구들을 놓은 방. 우리말샘

주92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 우리말샘

주93

곡우를 명절로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94

한 가지 처방으로 온갖 병을 다 고침. 우리말샘

주95

일본 시즈오카현(靜岡縣) 동북부와 야마나시현(山梨縣) 남부에 걸쳐 있는 산. 휴화산으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기저의 둘레가 125km에 이른다. 높이는 3,776미터. 우리말샘

주96

불교의 개조. 과거칠불의 일곱째 부처로,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이다. 기원전 624년에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바스투성에서 슈도다나와 마야 부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29세 때에 출가하여 35세에 득도하였다. 그 후 녹야원에서 다섯 수행자를 교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성립하였다. 45년 동안 인도 각지를 다니며 포교하다가 80세에 입적하였다. 우리말샘

주97

석가모니의 어머니. 인도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의 슈도다나의 왕비로, 석가모니를 낳고 7일 후에 죽었다. 우리말샘

주98

말라서 죽어 버린 나무. 우리말샘

주99

부녀자의 아름다운 덕행. 우리말샘

주100

규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광물. 흰색, 회색, 붉은색 따위를 띠며 유리, 도자기, 내화 벽돌 따위를 만드는 데 쓴다. 우리말샘

주101

산림에서 생산되는 목재, 땔감, 수지 따위의 자원. 우리말샘

주102

웅장하고 크다. 우리말샘

주103

산악의 아름다움. 우리말샘

주104

전라남도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계곡. 지리산 국립 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량이 풍부하고 곳곳에 크고 작은 소(沼)와 폭포가 형성되어 있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우리말샘

주105

자연 생태계 보전을 위해, 오염이 심하거나 훼손될 우려가 있는 지역을 정하여 일정 기간 동안 사람들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 우리말샘

주106

높은 산에서 저절로 나는 식물. 대개 여러해살이풀로 떨기나무가 많으며 돌옷류, 담자리, 월귤나무, 진달래, 동백나무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07

도로법상 6등급의 도로. 군(郡)의 도로로서 관할 군수가 그 노선을 지정하고 관리하면서 원칙적으로 비용도 군에서 부담하는 도로이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6)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