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12교구 본사(本寺)인 합천 해인사(陜川 海印寺)의 주1이다.
548년(진흥왕 9)에 연기(緣起)가 창건하여 ‘평원사(平原寺)’라 하였다고 전하지만 역사적 신빙성은 없다. 대원사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부터 나온다.
1685년(숙종 11)에 운권(雲捲)이 옛터에 절을 짓고 ‘대원암(大源庵)’이라 하였다.
16901700년 사이에 낙안 징광사를 중심으로 여러 사찰에서 분담하여 『화엄경소초』(90권 80책)를 간행하였는데, 당시 대원암에서 제70책제78책을 간행하였다. 이후 1727년(영조 3)에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 1728년(영조 4)에 『칠구지불모준제다라니경』, 1748년(영조 24)에 『불조삼경』을 간행하였다. 그런데 『칠구지불모준제다라니경』의 간기(刊記)에 “삼장사 대원암(三藏寺大源庵)”이라고 표기된 것으로 볼 때, 당시 대원암은 지리산 삼장사의 산내 주2였음을 알 수 있다. 1890년(고종 27)에 구봉(九峰)이 낡은 건물을 주3 서쪽에 조사영당(祖師影堂), 동쪽에 방장실(方丈室)과 강당을 짓고 대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무렵 대원사가 독립적인 사찰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1913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자 주4 영태(永泰) 등 50여 명이 16,000원의 시주(施主)를 얻어, 1917년에 전(殿) · 누(樓) · 당(堂) · 각(閣)과 주5 등 12동 184칸의 건물을 중건하였다.
1948년에 발생한 여수·순천 주6 때부터 한국전쟁 시기까지 전쟁터가 되어 소실된 뒤 8년 동안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에 승려 법일(法一)이 다시 주7 뒤 비구니 선원(比丘尼 禪院)을 개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의 선원은 석남사(石南寺) · 견성암(見性庵)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 도량으로 손꼽힌다.
현존하는 주8로는 대웅전(大雄殿) · 원통보전(圓通寶殿) · 응향각(凝香閣) · 산왕각(山王閣) · 봉상루(鳳翔樓) · 천왕문(天王門) · 범종각 · 주지실 · 대방 · 객실 · 창고 등이 있으며, 절 뒤쪽에는 사리전(舍利殿)이라는 암자가 있다. 사찰 부근에는 옛날 선비들이 수학하였다는 거연정(居然亭) · 군자정(君子亭) 등이 있다.
대원사에는 보물 1점과 경상남도 유형 문화유산 3점이 지정되어 있다. 보물에는 「다층석탑」이 지정되어 있고, 경상남도 유형 문화유산에는 「목조 보살 좌상 및 복장유물」, 「반자(飯子)」, 「신중도(神衆圖)」가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대원사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다층석탑」은 1784년(정조 8)에 조성하였다. 돌이 철분을 많이 함유한 탓으로 붉은 물이 스며 나와 강렬한 인상을 풍기고 있으나 조각은 소박한 편이다. 200년 전에 이 탑을 주9 때 72과의 사리(舍利)가 나왔다고 하는데, 큰 것은 녹두알 만하였고 작은 것은 기장 알 정도의 크기였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목조 보살 좌상 및 복장유물」은 1700년에 지리산 무위암에 주10 위해 조각승 초변이 제작한 보살 좌상과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주11, 주12 등의 주13이다. 불교 의식에 사용하는 「반자」는 새겨진 명문을 통해 1701년(숙종 27)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깥지름 62㎝, 안지름 37㎝, 너비 15㎝의 크기이며, 둘레 가장자리 일부분이 결실되었다. 「신중도」는 1794년(정조 18)에 그렸으며 가로 124㎝, 세로 145㎝ 크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