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대원사 ( )

불교
유적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조선 후기에 중창한 사찰.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조선 후기에 중창한 사찰.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조선 후기에 중창(重創)한 사찰.
이칭
이칭
평원사(平原寺), 대원암(大源庵)
유적/건물
소재지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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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대원사는 조선 후기부터 기록에 나오는 사찰이다. 처음에는 수행을 위한 작은 암자였으나 규모가 점차 커져 19세기 후반에 사찰로 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어 폐허로 있던 것을 1955년에 비구니 선원을 개설한 이후 중창되었다.

정의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조선 후기에 중창한 사찰.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조선 후기에 중창한 사찰.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조선 후기에 중창(重創)한 사찰.
개설
역사적 변천

548년(진흥왕 9)에 연기(緣起)가 창건하여 ‘평원사(平原寺)’라 하였다고 전하지만 역사적 신빙성은 없다. 대원사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부터 나온다.

1685년(숙종 11)에 운권(雲捲)이 옛터에 절을 짓고 ‘대원암(大源庵)’이라 하였다.

16901700년 사이에 낙안 징광사를 중심으로 여러 사찰에서 분담하여 『화엄경소초』(90권 80책)를 간행하였는데, 당시 대원암에서 제70책제78책을 간행하였다. 이후 1727년(영조 3)에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 1728년(영조 4)에 『칠구지불모준제다라니경』, 1748년(영조 24)에 『불조삼경』을 간행하였다. 그런데 『칠구지불모준제다라니경』의 간기(刊記)에 “삼장사 대원암(三藏寺大源庵)”이라고 표기된 것으로 볼 때, 당시 대원암은 지리산 삼장사의 산내 주2였음을 알 수 있다. 1890년(고종 27)에 구봉(九峰)이 낡은 건물을 주3 서쪽에 조사영당(祖師影堂), 동쪽에 방장실(方丈室)과 강당을 짓고 대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무렵 대원사가 독립적인 사찰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1913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자 주4 영태(永泰) 등 50여 명이 16,000원의 시주(施主)를 얻어, 1917년에 전(殿) · 누(樓) · 당(堂) · 각(閣)과 주5 등 12동 184칸의 건물을 중건하였다.

1948년에 발생한 여수·순천 주6 때부터 한국전쟁 시기까지 전쟁터가 되어 소실된 뒤 8년 동안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에 승려 법일(法一)이 다시 주7 뒤 비구니 선원(比丘尼 禪院)을 개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의 선원은 석남사(石南寺) · 견성암(見性庵)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 도량으로 손꼽힌다.

현존하는 주8로는 대웅전(大雄殿) · 원통보전(圓通寶殿) · 응향각(凝香閣) · 산왕각(山王閣) · 봉상루(鳳翔樓) · 천왕문(天王門) · 범종각 · 주지실 · 대방 · 객실 · 창고 등이 있으며, 절 뒤쪽에는 사리전(舍利殿)이라는 암자가 있다. 사찰 부근에는 옛날 선비들이 수학하였다는 거연정(居然亭) · 군자정(君子亭) 등이 있다.

중요문화유산

대원사에는 보물 1점과 경상남도 유형 문화유산 3점이 지정되어 있다. 보물에는 「다층석탑」이 지정되어 있고, 경상남도 유형 문화유산에는 「목조 보살 좌상 및 복장유물」, 「반자(飯子)」, 「신중도(神衆圖)」가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대원사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다층석탑」은 1784년(정조 8)에 조성하였다. 돌이 철분을 많이 함유한 탓으로 붉은 물이 스며 나와 강렬한 인상을 풍기고 있으나 조각은 소박한 편이다. 200년 전에 이 탑을 주9 때 72과의 사리(舍利)가 나왔다고 하는데, 큰 것은 녹두알 만하였고 작은 것은 기장 알 정도의 크기였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목조 보살 좌상 및 복장유물」은 1700년에 지리산 무위암에 주10 위해 조각승 초변이 제작한 보살 좌상과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주11, 주12 등의 주13이다. 불교 의식에 사용하는 「반자」는 새겨진 명문을 통해 1701년(숙종 27)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깥지름 62㎝, 안지름 37㎝, 너비 15㎝의 크기이며, 둘레 가장자리 일부분이 결실되었다. 「신중도」는 1794년(정조 18)에 그렸으며 가로 124㎝, 세로 145㎝ 크기이다.

참고문헌

원전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단행본

박설산, 이고운, 『명산고찰(名山古刹)을 따라』 (우진관광문화사, 1982)
한국관광문화연구소, 『한국(韓國)의 명산대찰(名山大刹)』 (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https://kabc.dongguk.edu)
주석
주1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주2

큰 절에 딸린 작은 절. 우리말샘

주3

절이나 왕궁 따위를 보수하거나 고쳐 짓다. 우리말샘

주4

절을 주관하는 승려. 우리말샘

주5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주6

1948년 10월 19일에 여수와 순천에서 국군 제14연대 일부가 일으킨 반란 사건. 지창수, 김지회(金智會), 이기종(李起鍾), 박기암(朴基巖) 등이 주동이 되어 일으켰으나 국군이 진압하였다. 우리말샘

주7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짓다. 우리말샘

주8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9

집이나 축조물 따위가 허물어지거나 낡아서 새로 짓거나 고쳐 쌓다. 우리말샘

주10

신주(神主)나 화상(畫像)을 받들어 모시다. 우리말샘

주11

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내용을 적은 글. 우리말샘

주12

범문으로 된 비밀스러운 주문. 여러 부처와 보살의 선정(禪定)으로 생겨난 진언(眞言)이다. 우리말샘

주13

불상을 만들 때, 가슴 안쪽에 넣는 유물. 금ㆍ은ㆍ칠보(七寶)와 같은 보화(寶貨)나 서책(書冊)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집필자
이종수(순천대학교 사학과 교수, 조선불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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