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는 해방 이후 「불신시대」·「김약국의 딸들」·「토지」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다. 19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는 단편소설을 창작했다. 1960년대에는 「김약국의 딸들」, 「파시」 등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1969년부터 대하소설 「토지」 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 8월 전체를 탈고했다. 대표작인 「토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변천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고난을 그려내면서, 민족과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조망을 시도한 작품이다.
1926년 12월 2일(음력 10월 28일) 경상남도 충무시(지금의 통영)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박금이.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행도 씨와 결혼해서 이듬해 딸 김영주를 낳았다.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한 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6.25 전쟁통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다가 죽고, 연이어 세 살 난 아들을 잃게 된다. 이후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부터 한국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대하소설 「토지」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 8월 집필 26년 만에 「토지」전체를 탈고하였다.
1980년 지금의 박경리문학공원 자리인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에 정착하여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1992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소설창작론을 강의하였고, 1995년 같은 대학교 객원교수로 임용되었다.
1996년 토지문화재단을 창립하고, 이어서 1999년 토지문화관을 개관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토지문화관은 문학인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다양한 학술 문화 행사를 기획, 개최해 왔다. 2008년 5월 5일 폐암으로 타계하여 고향인 통영시에 안장되었다.
1955년 8월 『현대문학』에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을 발표하였고, 다음 해 단편 「흑흑백백」으로 추천이 완료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57년 단편 「불신시대」로 제3회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는 단편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암흑시대」, 「전도(剪刀)」, 「벽지(僻地)」, 「영주와 고양이」, 「도표없는 길」, 「어느 정오의 결정」, 「비는 내린다」 등의 단편소설이 『현대문학』, 『신태양』, 『사상계』, 『여원』, 『주부생활』 등의 매체를 통해 발표되었다.
1958년 첫 장편 「애가」를 『민주신보』에 연재한 후, 1959년 2월부터 11월까지 『현대문학』에 장편 「표류도」를 연재하였다. 전후 전쟁미망인이 속물적 세계와 대면하면서 겪는 고통과 내적 성숙, 낭만적 사랑과 환멸을 그린 이 작품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60년대 들어서 장편소설을 집중 발표한다. 「성녀와 마녀」(『여원』연재. 1960년 4월∼1961년 3월), 전작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유문화사, 1962), 「파시」(『동아일보』 연재, 1964년 7월∼1965년 5월), 전작 장편 「시장과 전장」(현암사, 1964) 등이 이 시기 발표된 대표적인 장편소설들이다.
「표류도」와 「파시」, 「시장과 전장」이 전쟁미망인 혹은 전쟁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그렸다면, 「김약국의 딸들」은 통영이라는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회적 변동에 따른 한 가족의 몰락과 네 딸의 비극적 운명을 개성적으로 그림으로써 작품세계의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1970년대 이후 작품활동이 「토지」에 집중되었다면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말까지 작품의 주제들은 전후, 전쟁미망인, 인간의 소외와 존엄, 낭만적 사랑의 추구와 좌절로 요약된다.
「토지」 1부는 『현대문학』에 1969년 9월부터 1972년 9월까지 연재되었으며, 「토지」 2부는 『문학사상』에 연재(1972년 10월∼1975년 10월)되었다. 1973년 「토지」 1부가, 이듬해인 1974년 「토지」 2부가 삼성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1977년 1월부터 「토지」 3부를 『주부생활』, 『독서생활』, 『한국문학』 등에 연재하였다. 1980년 「토지」 3부가 삼성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토지」 4부는 1983년 연재를 시작하여 여러 매체를 거치면서 1988년까지 연재되었다.(『마당』 1981년 9월∼1982년 7월-12월, 『정경문화』 1983년 7월∼12월, 『월간경향』 1987년 8월∼1988년 5월)
1992년 9월「토지」 5부를 『문화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해서, 1994년 8월 집필 26년 만에 「토지」전체를 탈고하게 된다.
「토지」는 구한말부터 일제 식민지 시대, 해방에 이르기까지 거의 1세기에 이르는 한국 근 · 현대사의 변천 속에서 다양한 계층, 다양한 이념, 다양한 욕망을 소유한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고난을 그려내면서, 이들의 현실 극복 의지와 민족과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조망을 시도하였다.
때문에 “가족이라는 혈연 단위와 그 확대를 역사적인 시대의 교체와 맞물리도록 고안함으로써, 조선 말기 이후 한국 사회의 근대화라는 격변기를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들의 창조에 성공”(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1945∼1990』)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4년 『한국일보』 창간 30주년 기념 ‘한국 전후 문학 30년 최대 문제작’ 에 선우휘의 「불꽃」, 황석영의 「장길산」과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환경과 생명사상에 관심이 많아 2003년 4월 문화와 환경전문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2004년 말 폐간)하기도 했다.
산문집으로 「Q씨에게」(현암사, 1966), 「원주통신」(지식산업사, 1985),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현대문학사, 1995), 「박경리 신원주통신-가설을 위한 망상」(나남출판, 2007) 등이 있다. 산문집에서 작가는 소설의 오락성을 경계하며, 문학의 본질이 인간과 삶의 탐구에 있다는 고유의 문학관을 피력하였다.
2008년 3월 『현대문학』 4월호에 「까치설」 등 신작시 3편을 8년 만에 발표했다. 같은 해 5월 5일 폐암으로 타계하였으며, 6월 22일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가 간행되었다.
「표류도」로 제3회 내성문학상을 수상했다. 1965년 「시장과 전장」으로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을 수상했다. 「토지」1부로 1972년 제7회 월탄문학상을 수상했다.
1990년 제4회 인촌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 「토지」 완간을 계기로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올해의 여성상 수상, 유네스코 서울협의회에서 올해의 인물 선정 등의 기록을 남겼다.
1996년 제6회 호암예술상을 수상했고, 칠레 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 기념 메달(Gabriela Mistral Commemorative Medal)을 받았다.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