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대웅전은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중건된 사찰 건물이다. 대웅전은 8세기 중후반에 창건 또는 중창된 화엄사의 주불전으로 1636년에 중건되었다. 내부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좌우에는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불상 뒤에는 화엄사대웅전삼신불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으로 일반적인 불전과 다른 평면 구성이다. 정면과 측면은 기둥 간격이 동일한데 내부 기둥들은 생략되거나 위치가 조정되었다. 화엄사 대웅전은 외관이 장중하고 내부의 장엄도 우수한 건물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화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화엄10찰(華嚴十刹) 중 하나로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대가람이다.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의 본사로서 국보와 보물 등 많은 국가유산들을 보유하고 있다.
대웅전은 각황전과 함께 화엄사의 주불전으로 1636년에 중건되었다. 내부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협시불로 모셨다. 불상 뒤에는 화엄사대웅전삼신불탱(보물, 2003년 지정)이 있다.
화엄사는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의 기록을 볼 때 8세기 중후반에 창건 또는 중창된 것으로 판단된다. 『호남도구례현지리산대화엄사사적(湖南道求禮縣華嚴寺事蹟)』에 따르면 875년(헌강왕 원년)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1,300여 동에 이르는 건물을 크게 중창하였다고 한다. 943년(태조 26)에는 고려왕실이 주도하여 중창불사를 하였고 인종연간(1122년~1146년)과 충선왕 때 각각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1426년(세종 6)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승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5,000여 칸에 이르는 대부분의 전각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1630년(인조 8)부터 벽암대사가 중건을 시작하여 1636년(인조 14)에 대웅전이 완공되었다. 대웅전은 1757년(영조 33)과 1915년에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이다. 동 · 서 5층석탑이 있는 넓은 마당에서 4칸으로 이루어진 높은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전의 서쪽에는 영전과 원통전이 대웅전과 일렬로 배치되어 남향하고 있고 동쪽에는 명부전이 서향하고 있다.
대웅전은 각황전처럼 통일신라시대의 가구식(架構式)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초석은 각황전과 달리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그 위에 민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내외 3출목 형식이다. 첨차는 모서리 하부를 둥글게 깎은 교두형(翹頭形)이다. 1·2·3제공은 바깥쪽 끝이 하늘로 향하는 앙서형(仰舌形)이고, 4·5제공은 운공형(雲工形)이다. 제공은 건물 내부에서 일체형으로 초각하여 장식성을 높였다.
창호는 정면의 경우 모든 칸에 세 짝 분합문을 달고 분합문 상부에는 교창을 두었다. 양 측면의 퇴칸에는 외짝 교살문을 설치하였으며, 배면은 가운데 3칸에만 두 짝 띠살문을 달았다.
가구 구조(架構構造)는 1고주 7량(梁) 형식이다. 대들보는 앞 뒤 평기둥〔平柱〕 위의 5제공에 걸고 대들보 하부에는 높은 기둥을 세워 받쳤다. 중보와 종보는 각각 동자주를 세워 결구하였고, 종보 위에는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쳤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추녀 하부에는 활주를 세워 받쳤다. 천장은 우물반자를 설치하였는데 가운데 부분을 바깥 부분보다 한 단 높게 한 층급천장으로 꾸몄다. 내부에는 삼신불(三神佛)인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모셨다.
비로자나불은 불멸의 원리를 상징하기 때문에 법신불(法身佛)이라 하며, 노사나불은 보살로 있으면서 서원을 세우고 수행을 거듭한 결과 그 공덕으로 깨달음을 얻은 부처이기 때문에 보신불(報身佛)이라고 한다. 그리고 석가모니불은 현실 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교화한 부처이기 때문에 화신불(化身佛)이라고 한다. 불상 위에는 화려한 닫집〔唐家〕을 설치하여 장중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다.
화엄사 대웅전은 일반적인 불전과 다른 평면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면과 측면은 기둥 간격이 모두 동일하게 설정되었으나 내부 기둥들은 생략되거나 위치가 조정되었다. 불단 뒤쪽에는 내부 기둥 4개를 모두 세우고 후불벽을 설치하였다. 이 기둥들은 측면 기둥열에서 뒤쪽으로 약간 물리면서 하중도리 하부에 위치하고 있다. 예불을 위해 불단 앞의 공간을 넓게 쓰면서 구조를 고려한 계획 수법이다.
그러나 불단 앞에는 측면 기둥열에 맞춰 어칸의 기둥 2개를 생략하고 기둥 2개만 세웠다. 이 기둥들은 불단의 영역을 구분함과 동시에 어칸의 대들보보다 단면 크기가 작은 대들보를 구조적으로 보강하는 기능을 한다.
화엄사 대웅전은 화엄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외관이 장중하고 내부의 장엄(莊嚴)도 우수하다. 불전의 장식적인 요소가 증가되는 것, 공포의 내외 출목수가 같은 것, 불단 앞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한 평면형식과 구조 수법 등은 조선 중기 이후의 다포계 불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