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주향교는 계림(鷄林)의 서편, 문천(蚊川)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때 요석궁이 있던 곳이라 전해오는 이 터는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다. 향교는 전체적으로 동남향하여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 대성전과 동서무로 이루어진 문묘가 있고, 뒤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하는 강학영역이 있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형식을 하고 있다. 대성전은 임진란 때 소실된 것을 1600년에 중건하였으며 그 후 동·서무, 명륜당, 동·서재, 제독청, 존경각 등을 차례로 중건하여 17세기에 지금과 같은 배치를 갖추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선현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신위를 대설위(大設位)로 모신다.
경주향교는 처음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492년(성종 23)에 경주부윤 최응현(崔應賢)이 중수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0년에 관찰사 이시발(李時發)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중건하고, 1604년에 부윤 윤성(尹腥)이 동․서무를, 1614년에 부윤 이안눌(李安訥)이 명륜당과 동․서재, 제독청을 중건하였다. 이때 제독청 전면에 연못과 작은 누대(樓臺)를 꾸몄다. 1655년에는 명륜당 북쪽에 송단(松壇)을 쌓고, 1669년에 존경각을 신축하고 동․서무를 중수하였다. 이 때 부사 민주면(閔周冕)이 유생과 상의하여 임해전 터에 있던 석물들을 가져다가 과거에 없었던 계단과 정로(正路)를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경주향교의 배치는 17세기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대성전은 중건된 후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수리가 있었으며, 2000년에는 도리 이상을 해체 수리하였다. 이 때 종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은 임란이후 경주향교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경주향교는 외삼문(外三門), 신삼문(神三門), 대성전, 명륜당이 남북 축선상에 자리하고 있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문묘영역이 강학영역 앞쪽에 위치하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형식은 주로 평지에 입지한 향교에서 나타나는 형식으로 서울의 성균관을 비롯하여 전주향교, 나주향교 등에서 볼 수 있다. 문묘영역은 대성전을 중심으로 전면에 신삼문, 좌우에 동·서무가 별도의 담장으로 구획되어 엄숙한 제향공간을 형성한다.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설위(大設位) 향교의 대성전은 대개 정면 규모가 5칸이나 경주향교 대성전은 3칸이지만 간살을 크게 잡아 칸수에 비해 넓은 내부공간을 확보했다. 내부 바닥은 편의상 장마루를 깔았지만 그 하부에는 본래의 전돌 바닥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기단은 장대석을 2단으로 정연하게 쌓고 상단에는 갑석을 올렸다. 갑석은 단부를 외부로 돌출하여 떨어지는 우수 등이 기단면을 상하지 않게 다듬었고 우석(隅石)은 통돌로 치석한 오래된 기법을 보존하고 있다. 기단 전면 중앙에는 통돌로 만든 석계(石階)가 설치되어 있고, 동서 양측면에도 석계가 있다. 특히 중앙부의 석계는 계단이 좌우로 구성된 이중계(二重階)로, 기록에 의하면 임해전지에서 가져온 계단이라 전한다. 기단 윗면에는 갑석 높이에 맞추어 방전(方塼)을 깔고 그 위에 다듬은 초석을 놓고 흘림이 약한 원주를 세웠다. 맞배지붕 건물임에도 건물 네 모서리에 활주를 세워 길게 내민 처마도리의 뺄목이 아래로 처지지 않게 보강하였다. 전면 벽체의 구성은 각 칸마다 둔테가 달린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아 안으로 열게 했다. 판장문 하부에는 신방목을 결구하고 그 밑에 신방석을 놓아 문을 지지하게 했다. 또한 벽 전체를 돌아가며 초석 높이에 맞추어 벽체 하단에 장대석 형태의 고맥이돌을 설치한 것은 다른 향교에 찾아보기 힘든 수법이다. 공포는 외1출목의 헛첨차를 사용한 주심포 형식이다. 내부 가구는 향교건축에서는 드물게 어칸에서 1고주 7량가, 측면에서는 2고주 7량가로 후열에 내고주(內高柱)를 세웠다. 내고주열 어칸 상부에는 우물반자를 구성하여 공자의 위패를 모셔놓아 다른 위패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권위를 높이고 있다.
경주향교 대성전은 기단의 구성 및 신방석, 벽체 하부의 고맥이석의 설치 등 고식의 수법을 유지하고 있다. 기둥은 모두 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우주를 평주보다 5~17cm 가량 크게 하여 뚜렷하게 귀솟음을 두었다. 공포는 외1출목의 헛첨차를 사용한 주심포 형식으로 조선 중기의 형식을 보존하고 있다. 건물 내부 후면에 내고주를 세우고 내고주열 어칸 상부에 우물반자를 구성하여 공간에 위계를 둔 것도 다른 향교에서 보기 힘든 특징이다.
경주향교는 대설위 향교로서 경상북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향교이다. 대성전은 연혁이 분명하며, 전체적으로 임란 이후 중건 때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기단의 축조방식과 고맥이석의 조영기법, 공포와 창호, 가구에 고식의 기법이 잘 남아있으며, 2000년 수리 때 종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은 대성전의 역사와 경주향교의 변화를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