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전등사 약사전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에 있는 조선 후기 다포계 팔작지붕의 사찰 건물이다. 전등사는 강화도 정족산성 안에 있는 사찰이다. 약사전은 전등사에서 대웅전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다포계 단층 불전이다. 1621년에 중건된 대웅전과 건축 양식이 유사하여 비슷한 시기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 석불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이 건물은 가구 구조, 공포의 구성과 배열 방식 등 건축 수법이 특색 있다.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전등사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고려 후기에는 충렬왕의 원비인 정화궁주의 원찰(願刹)이었고 조선 후기에는 산성과 사고(史庫)의 수호임무를 지닌 중요한 사찰이었다. 1605년(선조 38년)과 1614년(광해군 6) 두 번의 화재가 발생하면서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으나 6년 동안 중건공사를 진행하여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였다.
약사전은 언제 건립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1621년에 중건된 대웅전과 건축 양식이 유사하여 비슷한 시기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웅전약사전개와중수기(大雄殿藥師殿改瓦重修記)』에 따르면 1876년(고종 13)에 중수하고 기와를 바꾸었다고 한다. 이후 1932년, 1958년, 1968년, 1985년, 1993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다.
약사전은 명부전과 함께 전등사에서 별도의 영역을 이루고 있다. 기단은 막돌을 사용하여 허튼층으로 쌓아 올리고 갑석(덮개 돌)을 올렸는데 일제강점기 사진에는 갑석이 보이지 않아 후대에 변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그 위에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원형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외1출목(外一出目) 내2출목(內二出目) 형식이다. 초제공은 앙서형(仰舌形)이고, 2제공은 익공형(翼工形)이며, 3제공은 운공형(雲工形)이다. 주상포(柱上包)와 주간포(柱間包)는 건물 내부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주상포는 제공을 일체형으로 초각하였으나 주간포는 제공을 조각하지 않고 교두형(翹頭形)으로 처리하였다.
가구 구조는 5량 형식이다. 대들보는 앞뒤 기둥 상부의 2제공 위에 걸었으며 동자주를 세워 종보와 중도리를 결구하였다. 종보 위에는 덧보를 놓고 중앙에 동자주를 세워 종도리를 받쳤다. 충량(衝樑)은 자연스럽게 휜 부재를 사용하였는데 대들보 밖으로 빠져나오는 부분에 용머리를 조각하여 끼워 넣었다.
지붕은 팔작지붕 겹처마이다. 천장은 중도리를 경계로 하여 안쪽은 우물반자를 설치하고 바깥쪽은 빗반자로 처리하였다.
이 건물은 공포의 짜임과 배열 방법, 가구 수법이 특색 있다. 다포계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창방(昌枋) 위에 평방(平枋)을 생략하고 공포를 올렸다. 주간포는 정면에만 배열하였으며, 양 측면과 배면은 주간포 대신에 화반을 끼워 넣었다. 이러한 방식은 다른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며 유사한 사례로는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이 있다. 구조적인 특징으로는 반원형의 중도리를 사용한 것과 종보 위에 덧보를 사용한 것, 종도리 하부에 장여를 설치하지 않은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 건물은 가구 구조, 공포의 구성과 배열 방식 등 건축수법이 특색 있다. 또한 조각과 단청이 화려하여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