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가구식 석축은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돌벽이다. 201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불국사는 토함산 기슭에 위치하는데 북동측이 높고 남서측이 낮다. 이런 지형적 조건에 맞추어 석축을 가구식으로 쌓아 평탄한 대지를 조성하였다. 특히 범영루 앞 석축은 상단과 하단의 축석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하단은 큰 자연석을 지형에 맞추고 상단은 하단에서 뒤로 물려 쌓았다. 이에 자연석 석축과 인공을 가한 가구식 석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불국사 석축은 다양한 석조 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불국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김대성이 751년에 창건하기 시작하여 774년 (혜공왕 10) 12월 2일 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공사를 마쳤다는 기록이 있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528년(법흥황 15)에 불국사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때가 527년(법흥왕 14)임을 생각할 때 대대적인 불사가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되며, 현존하는 유구들이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것으로 볼 때 『삼국유사』의 기록을 불국사의 창건으로 볼 수 있다.
창건 이후 불국사는 임진왜란 전까지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가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2,000여 칸의 건물들은 모두 전소되고 석조물만 남았다. 창건기의 석조물로는 석축, 연화 · 칠보교](E0024946), 청운 · 백운교, 다보탑, 석가탑, 석등, 사리석탑, 당간지주, 석조, 각 건물의 기단과 초석 등이 있다.
불국사 석축은 [조선 후기에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크게 퇴락된 것을 일제강점기인 1918∼1925년에 보수하였다. 그 뒤 1969∼1973년에 발굴조사와 복원공사가 이루어졌다.
불국사는 지형에 맞추어 높게 석축을 쌓아 평탄한 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을 배치하였다. 사역은 동쪽의 대웅전 영역과 서쪽의 극락전 영역, 대웅전 뒤쪽 높은 곳에 관음전과 비로전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웅전 영역은 통일신라의 이탑식 가람의 전형적인 배치형태를 취하였다. 자하문과 대웅전, 무설전(강당)이 남북 축선상에 위치하고 대웅전 앞마당 좌우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대칭으로 자리하였으며, 주위는 모두 회랑을 둘렀다. 극락전은 대웅전 서편에 한단 낮게 위치한다. 극락전은 전면에 안양문이 있고 안양문과 연결하여 주위에 회랑을 둘렀다.
불국사의 석축은 안양문과 자하문의 남쪽과 좌우에 잘 남아있으며, 각각의 문 앞에는 연화 · 칠보교와 청운 · 백운교가 부설되어 석축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안양문 앞의 석축은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상하 2단의 석주를 세우고 거기에 주두석, 동자주, 인방석 등으로 장방형에 가까운 격자형 틀을 형성하고 그 안에 자연석을 밀실하게 채워 넣은 형태이다.
자하문이나 범영루 앞의 석축은 백운교 계단 위에서 단을 달리하여 상단과 하단의 축석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하단은 큰 자연석을 지형에 맞추어 여러 단을 쌓고 그 위에 가공 석재를 가구식으로 낮게 짜 올렸으며, 석축 위에는 석난간이 시설되어 있다. 상단은 하단 석축에서 뒤로 물려 쌓았다. 안양루 석축과 같이 석주와 인방돌로 격자형 틀을 만들고 자연석을 채워 넣은 형태이다. 석축에서 돌출된 범영루 기둥 밑에는 첨차형의 석재를 차곡차곡 쌓아 돌기둥을 만들었고, 석교 밑에는 정교한 홍예를 이루고 있다.
불국사 석축은 지형에 맞추어 평탄한 대지를 조성하기 위하여 높은 석축을 쌓았지만 재료와 구법 등을 달리하여 거대한 메스(Mass)를 분절함으로써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자연석 석축과 인공을 가한 가구식 석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불국사 석축은 다양한 석조 기법을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석난간의 형태와 구조는 목조 건축이 남아있지 않은 신라 건축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축으로 그 기법이 독특하며 구조적으로 합리적이고 조형적으로도 매우 뛰어나다. 특히 석축 전면에 부설된 청운 · 백운교 및 연화 · 칠보교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신라 석조건축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