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우지(友之). 조부는 고려 공민왕 때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지낸 신군평(申君平)이다.
조선 개국 당시 음관으로서 사헌시사(司憲侍史)에 올랐으며, 상장군에 천거되었다. 1394년(태조 3)에 호조전서(戶曹典書)의 직책을 맡았고, 1396년(태조 5)에는 대사헌이 되고 태조가 북행(北幸)할 때에 동행하였다. 1403년(태종 3)에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1404년(태종 4) 충청도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충청도에서 1년간 있으면서 사욕을 버리고, 선정을 행하여 칭송이 자자하였다.
1405년(태종 5) 동지총제(同知摠制)의 직을 받아 서울로 돌아왔고, 1418년(태종 18) 봄에는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 해 겨울에 탄핵을 받아 삭직되어 무주로 귀양갔다. 7년간의 귀양생활을 마치고 1425년(세종 7)에 서울로 돌아왔다. 손녀가 왕자와 결혼하게 되자 고신(告身)을 환수받았다. 시호는 제정(齊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