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아버지는 찬성사 원충(元忠)이다.
1352년(공민 1) 감찰대부(監察大夫)로서 폐신(嬖臣) 인승단(印承旦)보다 왕후궁에 하례를 먼저 드리려다 인승단의 미움을 샀다. 또 감찰대부로서 감찰집의 김속명(金續命)과 함께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여 허물이 있는 자의 고신(告身)에 서명하지 않음으로써 나인(內人)과 환관들의 미움을 받아 파면되었으나 곧 복직되었다.
1353년(공민 2) 1월 전리판서(典理判書)가 되었는데 공민왕으로부터 개와 매 기르기를 좋아한다고 질책을 받기도 하였다. 1358년(공민 7) 2월 판추밀원사(判樞密院事)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