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도 ()

해동진신도상 중 윤동도 초상
해동진신도상 중 윤동도 초상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우의정, 영의정,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중(敬仲)
남애(南厓), 유당(柳塘)
시호
정문(靖文)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07년(숙종 33)
사망 연도
1768년(영조 44)
본관
파평(坡平, 지금의 경기도 파주)
주요 관직
대사헌|이조참판|부제학|영의정|영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에, 우의정, 영의정,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중(敬仲), 호는 남애(南厓)·유당(柳塘). 장령 윤순거(尹舜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진(尹搢)이다. 아버지는 판서 윤혜교(尹惠敎)이며, 어머니는 이익수(李益壽)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33년(영조 9) 진사가 되고 이듬해 해주판관으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5년 사서·부수찬·헌납·교리를 거쳐 1748년 부교리·수찬, 1750년 장령, 1751년 부응교·도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다음해 경상도관찰사가 되었으나 그 이듬해 병으로 인하여 체개(遞改)되고, 1754년 대사성·대사간·부제학·승지를 거쳐 1758년 이후 대사헌·이조참판·부제학·청풍부사·호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761년에 우의정에 올라 이듬해 함경남도병마절도사 윤구연(尹九淵)의 처벌에 반대, 용서를 청하였다가 파직되고 다시 3일만에 복직되었다. 1764년에 좌의정, 1766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그 뒤 한달 사이에 해직과 복직을 거듭하였고, 1768년 영중추부사로서 죽었다. 시호는 정문(靖文)이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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