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민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동화학교 교사, 정의부 법무위원장, 여족공의회 대표 등을 역임한 교육자 ·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문형(文衡), 광민(光珉), 영형(永衡), 광민(光敏), 영(暎), 영(英)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0년(고종 37)
사망 연도
1945년
본관
고성(固城)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
정의
일제강점기 때, 동화학교 교사, 정의부 법무위원장, 여족공의회 대표 등을 역임한 교육자 ·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고성(固城). 이명은 문형(文衡)·광민(光珉)·영형(永衡)·광민(光敏)·영(暎, 英). 경상북도 안동 출신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5년 큰아버지 이상룡(李相龍)을 따라 중국 봉천성(奉天省)으로 가 유하현(柳河縣)에 있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수료하였다. 1916년 봉천성 통화현(通化縣) 삼도구(三道溝)에 있는 동화학교(東華學校)에서 교편을 잡았다.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한편, 1926년 정의부(正義府)에 소속되어 중국 동삼성(東三省)과 국내에 파견되어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담당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정의부의 중앙위원과 법무위원장에 취임하여 활동하였다.

1927년 4월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 조직을 위한 정의부·참의부(參議府)·신민부(新民府)의 3부통합에 대한 논의가 있자 김동삼(金東三)·오동진(吳東振) 등과 함께 정의부 대표로 선임되어 그들과 함께 길림성(吉林省) 신안둔(新安屯)에서 열린 제1회각단체대표회의에 참가하였고, 1928년 5월 전민족유일당촉성회파(全民族唯一黨促成會派)인 여족공의회(麗族公議會)의 대표로 활동하였다.

1927년 5월 길림성 반석현(盤石縣)에 기반을 둔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에서 이 지역 한인보호를 위하여 보호회(保護會)를 조직할 때 김응섭(金應燮)·김상덕(金尙德)과 함께 중앙위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독립운동사』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국외용의조선인명부(國外容疑朝鮮人名簿)』(조선총독부경무국, 1934)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북경찰부, 1934)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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