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이름은 이위(李瑋) 또는 이후(李珝). 자는 계헌(季獻), 호는 옥산(玉山)·죽와(竹窩)·기와(寄窩). 이원수(李元秀)의 아들이며, 이이(李珥)의 동생으로,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이다.
1567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비안현감과 괴산·고부군수를 거쳐 군자감정에 이르렀다. 시(詩)·서(書)·화(畫)·금(琴)을 다 잘하여 4절(四絶)이라 불렸다. 그림은 초충(草蟲)·사군자·포도 등을 다 잘 그렸는데, 어머니의 화풍을 따랐다. 아들 경절(景節)도 가법(家法)을 이어 서·화·금에 능하여 3절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가 초충을 그려 길에 던지면 닭이 와서 쪼았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화훼초충(花卉草蟲)을 잘 그렸다고 한다. 묵매화(墨梅畫)는 주로 횡관식구도(橫貫式構圖)로 힘차게 묘사하였다. 유작으로는 「설중매죽도(雪中梅竹圖)」(개인 소장)·「노매도(老梅圖)」·「수과초충도(水瓜草蟲圖)」(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포도도(葡萄圖)」 등이 전하고 있다. 개인 문집으로 『옥산시고(玉山詩稿)』가 있으며, 초서 필적으로는 「옥산서병(玉山書屛)」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