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강세황이 40세 때인 1751년(영조 27) 10월에 도산서원의 실경을 그린 것으로, 평원산수화(平遠山水畵) 형식으로 그린 그림 부분과 그림의 왼쪽에 자필로 쓴 18행의 제발(題跋) 부분으로 되어 있다. 또 묵서(墨書)의 끝에는 1927년 가을에 최남선(崔南善)이 쓴 수장기(收藏記) 2행이 있다.
제발의 내용은 이익(李瀷)이 병으로 누워 있으면서 자신에게 도산도를 그리도록 특별히 당부하였음과 이황(李滉)의 업적, 세상에 있는 도산도에 관한 간략한 논의, 자신의 소감과 현지답사 내용 등이 비교적 자세히 쓰여 있다.
그림은 도산서원을 중심에 두고, 앞쪽에 흐르는 강물과 함께 탁영담(濯纓潭), 반타석(盤陀石) 등이 묘사되었고, 왼쪽의 곡류 위에는 분천서원(汾川書院), 애일당(愛日堂), 분강촌(汾江村) 등이 묘사되었다. 서원의 건물들은 크기와 방향을 실제와 부합되게 그리고, 당명(堂名)을 그 옆에 썼다.
산석(山石)과 초수(草樹) 등은 원나라 때 황공망(黃公望)의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에서 볼 수 있는 피마준법(披麻皴法), 반두준법(礬頭皴法), 소미점(小米點) 등과 수지법(樹枝法)으로 그렸다.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간명한 남종산수화적인 분위기를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