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귀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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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중국고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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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무이귀도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가 그린 중국 고사도이다. 8첩 병풍 중 한 폭으로, 비단 바탕에 그린 수묵 담채화이다. 이 작품은 주자가 무이산 계곡에서 배를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중국의 무이산은 기암절벽과 강이 어우러진 곳으로, 주자가 「무이도가」라는 시를 남겼다. 무이산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시와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김홍도는 이 작품 외에도 무이산을 소재로 한 폭의 「무이제사곡도」를 그리기도 하였다. 동세와 함축미를 갖춘 「무이귀도도」는 당시 무이산 모습에 대한 통념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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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중국고사도.
내용

8첩 병풍 중 한 폭. 비단 바탕에 수묵 담채. 세로 112.5㎝, 가로 52.6cm. 간송미술관 소장.

무이산(武夷山)은 중국 푸젠성(福建省)에 있는 기암절벽과 강이 어우러진 경치 좋은 명산이다. 그래서 일찍이 『한서(漢書)』나 『사기(史記)』에는 무이군(武夷君:神仙)이 사는 곳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한대(漢代)부터는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남송 때 주자(朱子)는 1183년 54세 때 무이산에 정사(精舍)를 짓고 자연을 벗삼아 공부하며 지낸 적이 있었다. 이때 그는 무이산의 절경을 읊은 「무이도가(武夷棹歌)」라는 명시(名詩)를 지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일찍이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본받아 자연 속에 집을 짓거나 주자의 「무이도가」에 차운(次韻)한 시를 짓는 것이 유행하였다. 유명한 이황(李滉)의 도산서원(陶山書院)이나 이이(李珥)의 석담정사(石潭精舍)와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가 이런 대표적 예이다.

산수간(山水間)의 정사경영(精舍經營)과 「무이도가」 차운시(次韻詩)의 유행은 당연히 회화상(繪畫上)의 표현으로 이어졌다. 이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는 조선시대에 유행하였는데, 이것은 성리학 자체가 중국보다도 조선에서 더 심화, 발전된 것과도 비교된다.

현전하는 이성길(李成吉, 1562∼?)이나 필자미상의 작품들을 보면, 조선시대의 무이구곡도는 무이산 실제경의 과장 혹은 변화된 수용을 거치면서 조선식 무이구곡경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특성은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姜世晃) 작품으로 이어진다.

김홍도의 「무이귀도도(武夷歸棹圖)」는 주자가 무이산 건계(建溪)를 배를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그렸다. 무이구곡의 산수에 「무이도가」의 시적 의미를 합친 것이다.

침식된 기암 절벽 사이로 흐르는 계류는 오른쪽 중앙에서 왼쪽 아래로 크게 꺾여 내려오며 화면에 깊이와 동세를 준다. 또 계류의 꺾인 부분은 여백으로 두어 공간감과 함축미를 주었다.

이런 구도와 여백의 활용은 김홍도의 후기 작품에 자주 보이는 것이다. 절벽에 보이는 거친 갈필(渴筆)의 하엽준(荷葉皴)과 용수철을 풀어놓은 듯한 수파묘(水波描)는 만년의 특징들이다. 오른쪽 위에 “武夷歸棹 丹邱(무이귀도 단구)”라는 관서(款署)가 있다.

그리고 ‘心醉好山水(심취호산수)’ 백문타원인(白文楕圓印)과 ‘弘道(홍도)’ 주문방인(朱文方印), ‘士能(사능)’ 백문방인(白文方印)이 나란히 찍혀 있다. 이처럼 세 개의 도인(圖印)을 조합하여 쓴 것은 50대 이후 작품에 많이 보인다.

이 「무이귀도도」는 김홍도가 그린 「중국고사도」 8첩 병풍 중 한 폭이다. 이 병풍은 이 작품 이외에도 「오류귀장(五柳歸庄)」, 「황정환아(黃庭換鵝)」, 「동강조어(東江釣魚)」, 「동산휴기(東山携妓)」, 「서호방학(西湖放鶴)」, 「화외소거(花外小車)」, 「융봉취하(融峰醉下)」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위에 제목과 관서를 명기한 전형적 중국고사도 병풍이다.

김홍도는 이 밖에도 무이산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정조에게 진상한 「주부자시의도(朱夫子詩意圖)」 병풍 중 한 폭인 「무이제사곡도(武夷第四曲圖)」를 그리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주자의 「무이도가」 중 제 4곡 원운(原韻)을 주제로 하였다. 그리고 구도상으로 「무이귀도도」처럼 기암절벽 사이로 계류가 흐르는 모습으로 그려져 당시 무이산의 모습에 대한 통념을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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