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 ()

이인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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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3·1운동에 참여한 죄로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에 동삼성에서 군자금 모집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칭
춘고(春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1년(고종 38)
사망 연도
1963년
출생지
전라북도 옥구
정의
일제강점기 때, 3·1운동에 참여한 죄로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에 동삼성에서 군자금 모집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호는 춘고(春皐). 전라북도 옥구 출생. 서울 보성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2월 28일 정동 예배당 구내의 이필주(李弼柱)목사 집에서 중학생 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의 실행을 계획하였는데, 보성중학교 대표로 참석하여 최후의 목적을 달성할 때 백절불굴의 투지로 최선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으로 학생들을 참석하게 하고 선언서를 배포하여 시위운동을 주도하며 미국영사관과의 연락 책임을 지고 활동하였다.

3월 5일 오전 9시 서울역광장에서 군중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다가 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월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하였다. 출옥하자마자 전재산을 방매하여 동삼성으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에게 8,000원의 군자금을 주고 군자금모집원이 되어 계속 투쟁하였다.

그뒤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철학과를 졸업하고 8·15광복 이후 고향에 임피중학교를 설립, 교장이 되고 전라북도교육위원에 선임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대한제국의 최후와 임시정부의 활동』(이현희, KBS사업단, 1983)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한국민족운동연구소, 1971)
「경성지방법원판결문(京城地方法院判決文)」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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