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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離婚)

가족제도

 혼인한 남녀가 생존 중에 성립된 결합관계를 해소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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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혼인한 남녀가 생존 중에 성립된 결합관계를 해소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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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이혼은 혼인의 본래적 목적인 부부의 영속적 공동생활을 파기하고 사회 기초단위인 가족의 해체를 초래하는 현상이다. 이는 혼인제도와 함께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각 사회의 습속, 도덕, 종교, 정치 등의 존재양식에 따라 변천해 왔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동양에서는 혼인을 천합(天合)이라고 하여, 모든 인간관계의 뿌리로 여겼다. 이는 가부장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기독교의 신합(神合) 사상에 입각한 이혼금지주의와 달리 남자의 전권이혼(專權離婚)을 제약하지 않았다.
1. 전통시대의 이혼
고대사회의 이혼은『삼국유사(三國遺事)』와『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단편적으로 확인되는데, 통일신라시대 왕비의 이혼기사는 처가의 모반 및 아들이 없는 것을 이유로 혼인 관계가 해소될 수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이혼도 남자측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고려왕실은 적통(嫡統)을 강조하여 아들이 없을 경우 왕비를 폐했던 신라 중대(中代)와 달리 다처제(多妻制)였기 때문에 이혼은 대개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졌다. 고려말이 되면 공식적으로 처를 버리는 자를 탄핵하는 사례가 나타나며, 아울러 고위관료 부인의 재혼 금지도 논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혼에 대한 규제는 한층 강화되어, 공식적인 혼인해소에는 국가의 승인이 필요했다. 이혼은 중국의『대명률(大明律)』에 규정에 준거하면서 조선 고유의 사정을 참작하여 운용하였다. 혼인의 경우 청산을 뜻하는 용어로는 이이(離異), 이혼(離婚)도 사용되었지만, 기별(棄別), 기처(棄妻), 출처(出妻) 등 남편이 아내를 버리거나 내쫓는다는 뜻을 가진 용어가 많았는데, 이는 이혼이 남편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었음을 뜻한다.
조선시대의 합법적인 이혼은,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국가에서 이혼을 강제하거나, 남편이 처에 대해 이혼을 요구하는 두 가지 형태였다.『대명률』에는 강제이혼의 요건으로 부부 가운데 1인이 존속에 대해 구타·살상 등을 하거나 하려는 ‘의절(義絶)’을 범한 경우와 남편이 처의 정조가 유린되는 것을 방조하거나 강제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었다. 또 이혼사유와 그 제한으로 칠출삼불거(七出三不去)가 있었다. ‘칠출’ 또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은 불순부모(不順父母), 무자(無子), 음란〔淫〕, 질투〔妬〕, 악질〔有惡疾〕, 다언(多言), 절도(竊盜)를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 부계혈통을 존숭하는 가부장적 질서와 직결되는 것이었다. 삼불거는 처가 부모 상(喪)을 치른 경우〔經持舅姑之喪〕, 가난한 때 결혼하여 부귀하게 된 경우〔娶時賤後貴〕, 돌아갈 곳이 없는 경우〔有所娶無所歸〕로 이혼을 금지하였다. 이는 이유 없이 처를 내쫓는 것을 방지하여 이혼을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간통이나 불순부모의 경우를 제외하면 칠거지악은 실질적인 이혼 조건으로는 거의 기능하지 못했고 명분론적 성격이 강했다. 또 남편은 처의 간통과 도망, 남편에 대한 위해(危害) 등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처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다.
처는 남편의 동의 없이 이혼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없었으며,『대명률』에는 구체적인 이혼 사유가 없더라도 부부가 함께 원할 경우에는 이혼을 허락한다고 규정하였으나, 형식상 합의이혼이라도 그 내용은 남편에 의한 일방적인 경우가 많았고 처가 임의로 개가(改嫁)했을 때에는 배부(背夫)로 관념되어 극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이처럼 국가가 이혼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배경에는 유교이념에 입각하여 사회안정〔治國〕의 기초인 가정의 보호〔齊家〕라는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조선후기가 되면 이혼의 가부를 논의할 때 국전(國典)에는 이를 인정하는 조문이 없다는 논리가 강조되는데, 이는 이혼으로 인한 사회적 폐단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 이혼을 억제하려는 의지가 강했음을 뜻한다. 양반층과는 달리 서민층에서는 부부의 협의로 이혼하는 사정파의(事情罷議)가 있었으며 저고리 깃을 잘라 그 한 조각을 상대방에게 주어 이혼의 징표로 삼았는데, 이를 할급휴서(割給休書)라고 하였다. 이러한 관행은 명목상의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축첩할 수 있었던 지배계층과는 다른 혼인제도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2. 근대 이후의 이혼제도
개화기에 이혼제도는 법적 변화가 있었다. 1905년『형법대전(刑法大全)』에서는 기존의 칠출삼불거에서 무자와 질투를 삭제하고, 유자(有子)를 이혼금지 항목에 추가하여 오출사불거(五出四不去)로 하였다가, 1908년『형법대전』의 개정으로 폐지하였다.
일제강점기기에는 1912년 제령(制令)으로「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을 공포하여 일본 민법 중 일부를 의용(依用)하였으나, 친족과 상속편은 조선의 관습에 의거하도록 하였다. 1915년 10월 17일에 협의이혼을 관습법으로 인정함으로써 법적으로 이혼의 자유를 인정하였고, 재판상 이혼은 1915년 4월 2일 처의 이혼청구사건을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승인한 후 판례법으로 확립되었다. 이렇게 관습법상 인정된 이혼은 1922년「조선민사령」제2차 개정으로, 협의이혼에는 신고주의가 채택되고 재판상 이혼에는 일본 민법 제813조∼제817조 및 제819조가 의용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재판상 이혼 원인은 유책주의(有責主義)를 채택하여 제한적으로 열거되었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불리한 지위인 처가 이혼을 당하더라도 좀 더 합리적인 기준에 의하게 되었다. 하지만 1943년 고등법원판결에서는 축첩의 사실만으로는 배우자에 대한 모욕이 아니고 따라서 이혼사유가 아니라는 등 남성중심적 사고가 남아 있었고, 축첩은 해방 이후에야 이혼 원인으로 인정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현황
1960년 제정 민법은 협의이혼제도를 인정하였으나 1977년 개정 민법에서는 협의이혼에 대한 가정법원의 확인제도가 마련되었다. 또한 재판상 이혼 원인에서는 이전의 열거주의를 지양하고 예시주의를 채용하는 동시에 부부가 평등하게 부정행위(不貞行爲)를 이혼 원인으로 하였다. 1990년 개정 민법에서는 이혼 후 자녀양육문제에 대해 부부의 협의가 되지 않거나 협의할 수 없을 때에는 가정법원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제837조),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부나 모에게는 면접교섭권을 보장하고(제837조의 2),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였다(제839조의 2). 이후 2005년 민법 개정으로 이혼 후 자녀의 양육문제와 면접교섭권에 관하여 가정법원이 직권으로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협의이혼제도를 갖고 있는 소수의 국가로, 당사자 합의로 원만하게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혼의 80% 이상이 협의이혼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유로운 해소를 중시하여 너무 쉽게 이혼을 인정했다는 반성과 이혼 후 자녀 등의 복리를 고려하여, 협의이혼제도의 개선을 위한 민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2007년 개정 민법에서는 이혼 숙려(熟廬)기간제와 상담권고제도를 도입하여 협의이혼 당사자는, 양육해야 할 자녀가 있는 경우는 3개월, 그렇지 않은 경우는 1개월이 경과한 후 가정법원으로부터 이혼의사를 확인받아야 이혼이 가능하도록 하였고,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양육사항에 대해 협의를 의무화하였다. 그리고 2009년 개정 민법에서는 협의이혼 시 가정법원이 당사자의 협의에 따라 작성한 양육비부담조서에 강제 집행력을 부여하여 양육비 집행의 효율성을 기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문화 가정의 이혼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2010년 서울가정법원의 이혼 소송 가운데 다문화 가정의 소송이 40% 이상을 차지하였다. 다문화 가정의 해체와 그에 따른 법적·경제적 지원 문제도 앞으로의 과제라고 하겠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인간생활에서 혼인관계의 파탄은 피할 수 없고, 그래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이혼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혼인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이혼의 자유 또한 인간의 기본권에 속하는 것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혼인과 달리 이혼은 이미 형성된 혼인공동체를 해소하는 것으로, 사회 및 자녀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합리적 규제와 재산분할, 자녀양육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여 이혼에 의한 파장을 최소로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박병호
개정 (2012년)
정긍식(서울대학교 법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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