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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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무아(無我) 사상을 바탕으로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제거해주는 지극한 사랑을 의미하는 불교교리.
내용 요약

자비는 무아(無我) 사상을 바탕으로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제거해주는 지극한 사랑을 의미하는 불교교리이다. 자비는 사랑과 연민의 뜻을 함께 포함한 것으로, 이기적인 탐욕에서 벗어나 넓은 마음으로 질투심과 분노의 마음을 극복할 때에만 발휘된다.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수행자는 먼저 남을 구제할 서원을 세워 선정과 지혜를 닦고, 도의 힘이 모이면 자비를 구름처럼 펴서 영원토록 고뇌하는 일체의 중생을 구제해야 함을 강조한다. 원효를 비롯한 많은 고승들은 중생과 한 몸이 되어 생활함으로써 모든 중생을 부처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자비행 실천자들이었다.

목차
정의
무아(無我) 사상을 바탕으로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제거해주는 지극한 사랑을 의미하는 불교교리.
내용

자(慈)와 비(悲) 두 낱말의 합성어이다. 자는 애념(愛念: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에게 낙(樂)을 주는 것이요, 비는 민념(愍念: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의 고(苦)를 없애주는 사랑이다. 이 자비는 사랑과 연민의 뜻을 함께 포함한 것으로, 이기적인 탐욕을 벗어나고 넓은 마음으로 질투심과 분노의 마음을 극복할 때에만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자비는 철저한 무아사상(無我思想)을 바탕으로 하여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고 중생의 고통을 제거하여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내어 주는 지극한 사랑이다.

이 자비에는 중생연(衆生緣) · 법연(法緣) · 무연(無緣)의 삼연자비(三緣慈悲)가 있다. 중생연자비는 친한 사람이나 친분이 없는 사람 모두를 친한 사람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베푸는 자비이다. 이것은 범부 또는 도(道)에 뜻을 두면서도 아직 번뇌를 끊어버리지 못한 이가 일으키는 자비이다.

법연자비는 일체의 법(法)이 5온(蘊)의 거짓된 화합임을 알고, 대상과 마음의 본체가 공(空)한 줄을 깨달은 성자(聖者)들이 일으키는 자비이다.

무연자비는 온갖 차별된 견해를 여의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아는 부처에게만 있는 자비이다. 이미 대상과 마음 등 모든 현상의 헛된 모습을 알 뿐만 아니라, 인연에 따라 동요됨이 없는 부처가 저절로 일체 중생에 대하여 고통을 없애고 낙을 주려는 힘이 있음을 말한다.

또한, 한없는 중생을 한없는 사랑으로 제도하겠다는 자(慈) · 비(悲) · 희(喜) · 사(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도 자비의 극치로서 표현된다. 자무량심은 모든 중생에게 즐거움을 베풀어주는 마음가짐으로, 처음은 자기가 받는 낙을 남도 받게 하기로 뜻을 두고 먼저 친한 이부터 시작하여 일체 중생에게까지 미치게 한다.

비무량심은 무진(無瞋)을 바탕으로 하여 남의 고통을 벗겨주려는 마음으로, 처음은 친한 이의 고통을 벗겨주고 점차로 확대하여 다른 이에게도 미치게 하는 사랑이다. 희무량심은 희수(喜受)를 근본으로 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을 여의고 낙을 얻어 희열을 안겨주려는 마음으로, 처음은 친한 이로부터 시작하여 점점 다른 이에게로 미치게 한다.

사무량심은 무탐(無貪)을 바탕으로 하여 중생을 평등하게 보아 원(怨) · 친(親)의 구별을 두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처음은 자기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에 대하여 일으키고, 점차로 친한 이와 미운 사람에게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수행의 근본을 자비에 두고 있다. 고려의 고승 지눌(知訥)은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수행자는 먼저 남을 구제할 서원(誓願)을 세워 선정과 지혜를 닦고, 도의 힘이 모이면 자비를 구름처럼 펴서 영원토록 고뇌하는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조선 중기의 고승 휴정(休靜)은 “닦아 가는 길이 한량없지만 자비와 인욕이 근본이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자비는 수행의 완성을 위하여 닦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중요시되었고, 그것은 고뇌하는 중생을 구제하고 성불의 길로 인도하는 섭행(攝行)의 실천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고 섭수(攝受)하기 위하여 행하는 기본행위로는 사섭법(四攝法)이 있다. 이 네 가지 기본적인 자비행은 보시(布施) · 애어(愛語) · 이행(利行) · 동사(同事)이다.

‘보시’는 중생이 재물을 구하거나 진리를 구할 때 힘 닿는 데까지 베풀어주어서 친애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시를 할 때 그 상대방에 대하여 어떤 조건을 붙이게 된다면 그것은 참다운 자비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대상에 대한 차별이나 조건 없이 행하는 보시가 될 때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자비정신에 입각한 보시가 된다는 것이다.

‘애어’는 중생을 불교의 진리 속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여 친애하는 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는 자비를 실천하는 보살이라면 마땅히 온화한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 중생을 대하여야 함을 밝힌 것이다.

‘이행’은 몸과 말과 생각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되고 보람된 선행을 베풀어서 그들로 하여금 도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동사’는 보살이 중생과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을 함께 하고 화복을 같이하면서 그들을 깨우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적극적인 실천행이다.

이 동사섭(同事攝)은 보살의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에 근거를 둔 것으로,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이다. 이 동사섭은 불교의 자비행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고 가치 있는 실천방법이다. 보시 · 애어 · 이행은 처해진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만 동사섭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 동사의 자비행을 실천한 대표적인 고승으로는, 혜숙(惠宿) · 혜공(惠空) · 대안(大安) · 원효(元曉) · 언기(彦機) 등을 꼽을 수 있다. 혜숙은 국선(國仙) 구참(瞿旵)의 그릇된 사냥을 막기 위하여 허벅지의 살을 베기도 하였고, 여자의 침상에 누워 자기도 하였다. 혜공은 천진공(天眞空)의 병을 고치는 한편, 언제나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에게 불교를 전파하였다.

대안은 거리를 다니면서 모든 사람에게 크게 편안하라고 축원하였으므로 ‘대안’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모든 중생이 편안한 것이 대안이요, 한 중생이라도 편안하지 않으면 자신도 편안할 수 없다는 대자비의 정신에 입각하여 ‘대안’을 외쳤던 것이다.

특히, 원효는 거지 · 땅꾼 등 소외받는 계층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교화함은 물론, 무애가(無㝵歌)를 부르고 무애무(無㝵舞)를 추면서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참된 가르침을 심어주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또, 조선 중기의 고승 언기는 도를 깨달은 뒤 양치기 생활을 하면서 동물들과 하나가 되는 수행을 닦았고, 대동강가에서 거지와 고아들을 모아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교화하여, 당시 평양에서는 거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자비는 중생과 하나가 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나와 중생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자타불이의 진리를 체득하고 중생과 한 몸이 되어 생활함으로써 모든 중생을 부처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선가귀감(禪家龜鑑)』
『편양당집(鞭羊堂集)』
집필자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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