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목사로 재임 중 홍건적이 침입하자 이에 맞서 항전하다가 관사에서 죽었다.
고을사람들이 마을 북쪽에 장사지낸 뒤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수묘인(守墓人)을 두고, 나무 베고 소·말 먹이는 것을 금하였다고 한다. 또한, 죽은 날짜를 목판에 써서 관청 벽 위에 걸어두고, 최영유가 죽은 날이나 명절에 제사드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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