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군 ()

대동여지도 중 황해도 평산 부분
대동여지도 중 황해도 평산 부분
인문지리
지명
황해도 중동부에 위치한 군.
정의
황해도 중동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금천군과 신계군, 서쪽은 벽성군과 재령군, 남쪽은 연백군, 북쪽은 봉산군과 서흥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5°54′∼126°33′, 북위 38°04′∼38°27′에 위치하며, 면적 1,334.9㎢, 인구 11만 5934명(1944년 현재)이다. 1읍 13개 면 161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남천읍 신남천리이다.

자연환경

이 군의 경계는 대체로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각 면의 경계, 특히 북쪽은 멸악산맥이 서남에서 동북방향으로 뻗어 있어 500∼700m의 산지가 군의 북부에 치우쳐 있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서남부의 재령군·벽성군계에 있는 운달산(雲達山, 600m)이 군내로 뻗어내린 것을 비롯해 관봉(冠峰, 527m)·주지봉(主之峰, 712m)·멸악산(滅惡山, 816m)·천괘산(天掛山, 470m)·청룡산(靑龍山, 525m)·금동산(金銅山, 524m)·영덕산(永德山, 398m)·불수산(佛首山, 390m) 등이 있다.

남부에는 황의산(黃衣山, 473m)과 300m 내외의 저산성 산지가 분포한다. 하천으로는 예성강의 상류가 군의 동쪽 경계를 이루며 남류하고 화양천(花陽川)·누천(漏川)·남천(南川) 등이 북부의 산지에서 발원해 군내를 흐르고 있다. 연평균기온 10.5℃, 1월 평균기온 -6℃, 8월 평균기온 25.9℃, 연강수량 1,389㎜이다.

역사

[고 대]

해상리 회골에 있는 고회암용식 동굴이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밝혀짐으로써, 구석기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으로서 처음 다지홀(多知忽)이라고 불리다가 뒤에 대곡군(大谷郡)으로 편성되면서 개정되었다.

395년(광개토왕 5) 고구려군이 이 곳에서 백제군을 크게 격파했고, 523년(안장왕 5)에는 백제의 무령왕이 죽고 성왕이 즉위하는 틈을 타서 고구려군이 이 곳으로부터 백제에 침입한 일이 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방 요충지로 부각되어 748년(경덕왕 7)대곡성을 수축하였다. 782년(선덕왕 3)에는 대곡성이 패강진(浿江鎭)으로 승격되었고, 이듬해부터 군주(軍主)가 두어져 예성강 이북, 대동강 이남지역을 관할하는 지방행정 및 군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826년(흥덕왕 1)에는 300리에 달하는 패강장성이 축조된 바 있다. 패강진 관하의 10여 주현이 궁예(弓裔)에게 항복한 904년부터 평주(平州)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유금필(庾黔弼)·박수경(朴守卿) 등 4명의 호족이 이 곳 출신이다.

[고 려]

995년(성종 14) 방어사진(防禦使鎭)으로 되었다가 1018년(현종 9) 이후 지주사(知州事)가 부임하였다. 1272년(원종 13)부터 잠시 복흥군(復興郡), 즉 배천에 예속되기도 하였다. 1231년(고종 18) 몽고군이 평주성에 돌입해 살육을 자행하자 성이 텅 비게 되었는데, 1253년 몽고 장수 야굴(也屈)이 전주까지 침입했다가 환궁할 때 교동의 별초(別抄)가 밖에 매복해 있다가 기습해 복수하였다.

[조 선]

1413년(태종 13)에 평산도호부(平山都護府)로 승격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15세기 중엽의 인구는 총 2,130호 6,323명으로 해주에 버금가는 큰 고을이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 일행이 의주로 피난을 가다가 남천 동쪽 2㎞ 지점에 유숙한 일이 있는데, 그 터에 주필대(駐蹕臺)가 세워져 있으며, 병자호란 후 8년간 청나라에 억류되어 있던 소현세자(昭顯世子) 일행이 돌아오다 유숙했던 인산면 기린리에는 영소대(靈昭臺)가 세워져 있다.

태백산성은 1733년(영조 9)에 개축되었는데, 4개의 몽성과 8개의 성문을 갖춘 요새로서 도호부사가 수성장을 겸하는 외에 별장과 승장을 따로 두었다. 자모산성(慈母山城)은 임꺽정(林巨正)이 웅거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후기의 인구는 1759년에 총 8,424호 3만 6678명이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이 곳은 인구증가율이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근 대]

1895년(고종 32)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산군으로 고쳐졌다. 이 곳은 전통적으로 유림의 조직이 강력한 곳이었으며, 1896년에는 유인석(柳麟錫)의 의병부대와 연계되어 일부는 제천에서, 일부는 황해도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에는 박기섭(朴箕燮)을 대장으로 하는 평산의병이 조직되어 평산·배천·연안 등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3·1운동 때에는 천도교인 외에도 유림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특색을 보여주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주비단(籌備團)을 조직해 활동한 바 있는 서의배(徐義培)·유상렬(柳相烈)·조창선(趙昌善) 등과 이완용(李完用)의 암살을 시도했던 정의도(丁義道) 등이 있다. 1906년 서남부의 6개 면이 연안군으로 이속되어 1930년 당시에는 14개 읍·면과 161개 이로 편성되었으며, 인구는 1942년에 총 2만 852호 11만 813명이었다.

유물·유적

해상리의 동굴유적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각종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되었던 관계로 이 지역에는 평산면 산성리에 태백산성(太白山城), 마산면다보산에 자모산성(慈母山城), 서봉면 철봉리에 철봉산성(鐵峰山城) 등의 성지가 있으며, 성내에는 당시의 시설물인 장대(將臺)·문루·군기고·창고지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태백산성은 대곡성·평산산성·성황산성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영조 때 개축된 것인데, 성내에는 태사사(太師祠)라는 사당이 있는 등 매우 큰 규모에 속하는 산성으로 주목된다. 태사사는 신숭겸(申崇謙)·유금필·복지겸(卜智謙)·배현경(裵玄慶) 등의 신상(神像)을 모신 곳으로, 고려 때 창건되었다가 1796년(정조 20)에 사액되었다.

왕실의 유적으로는 남천읍 보산리에 있는 주필대와 인산면 기린리의 영소대를 들 수 있다. 주필대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실과 정부 일행이 서울을 버리고 서북방면으로 피난갈 때 하룻밤을 유숙했던 곳이다.

또 영소대는 병자호란 다음 해 이른바 남한산성조약에 따라 소현세자·봉림대군(鳳林大君)·인평대군(麟坪大君) 등 왕자 일행이 중국 청나라로 끌려가 8년 동안 치욕적인 억류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 서울로 향하던 도중 하루를 묵은 곳이다.

불교유적으로는 원효가 창건했다는 인산면 기린리성적산에 관북사와, 평산면 은담리방원산에 있는 북수사(北岫寺)가 있다. 또한 서봉면 월봉리에서는 고려 후기에 속하는 종(鐘)이 출토된 바 있다. 금암면 제궁리에는 10∼11세기에 해당하는 청자도요지가 있다.

유교유적으로는 동양서원(東陽書院)과 구봉서원(九峰書院)이 있다. 평산온천 부근에는 고려 말의 신안이 종신하도록 이 곳에서 머물며 조선에서 보내는 녹봉을 받지 않았다는 내용의 배록동유허비(排祿洞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서울에서 서북쪽으로 향하는 큰 길이 이 지역을 동서로 횡단하고 있으며, 따라서 교통의 주요 시설인 역참(驛站)과 원점(院店)이 많았는데 그 유지가 아직도 다수 남아 있다.

『고려사』 병지(兵志)에서는 개경에서 서북으로 나가는 금교도(金郊道) 관하의 16개 우역(郵驛) 가운데 금암·보산·안성·반석·기린·온천 등의 6개 역이 이 곳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금암·보산·안성의 3개 역은 역정(驛丁) 75명씩을 배치한 일과역(一科驛), 즉 1등역에 속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평산면 빙고리에 평산향교(平山鄕校)가 있다. 서원으로는 마산면 당후리에 동양서원과 적암면 면곡리에 구봉서원이 있다. 동양서원은 1650년(효종 1)에 창건되어 1697년(숙종 23)에 사액되었는데 신숭겸과 이색(李穡)을 봉사한다.

구봉서원은 박세채(朴世采)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역시 1697년에 사액되었다. 특히 이 서원에는 오늘날 중요 문헌으로 인정받고 있는 『의례』·『남계연보』·『중봉집(中峰集)』·『수심경(授心經)』·『사서당기(四書堂記)』 등을 소장하고 있다.

이 군은 본래 유교사상이 강해 갑오개혁 후에도 개화의 물결이 천천히 들어왔고 배일사상이 강한 고장이었다. 따라서 새 〈교육령〉에 의한 1면1교정책으로 각 면에 보통학교가 세워졌으나 사숙(私塾)이 널리 보급되었다.

군내의 유지들에 의해 육영학교(育英學校)·음월학교(陰月學校)·명신학교(明新學校)·양정의숙(養正義塾)·광명학교(光明學校) 등 약 60여 개의 사숙이 있었다. 중등교육기관은 광복 전까지는 없었고, 서울·평양·개성 등지로 유학하였다.

1930년에 2년제 남천공립농잠학교(南川公立農蠶學校)가 설립되었다. 194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4개교, 농잠학교 1개교, 심상고등소학교 2개교가 있다. 종교현황은 불교사찰 2개, 천주교성당 5개, 개신교교회 9개가 있다.

산업·교통

이 군은 면적이 도내에서 곡산군 다음으로 크며, 경지면적도 벽성군·연백군과 더불어 넓은 편으로, 그 중 밭이 80%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밀의 생산 이외에도 감자·배추·무·파·가지·호박 등 소채류의 생산이 많다. 또한 완초·대마·박하의 산출이 많고 신암면 월봉리 월웅산 일대에서 생산된 밤과 문무면 일대의 잎담배와 고산리의 벌꿀도 특산물로 유명하다.

임야가 많아 다량의 목재를 생산하며, 해주·사리원·개성 등지로 반출된다. 광공업으로는 금·은·텅스텐·형석·천연슬레이트 등 광물의 매장이 많다. 용산면과 인산면에서 질이 좋은 고령토가 생산되므로 항아리·옹기 등을 제작하는 요업이 발달해 인접한 군에 많이 출하된다.

상업활동은 10개의 시장이 있는데, 그 중 남천장이 제일 크다. 남천읍에 신남천장·남천장, 금암면에 한포장, 세곡면에 누천장, 적암면에 온정장, 마산면에 한천장, 신암면에 배천장, 인산면에 기린장, 문무면〉에 문무장, 안성면에 물개장이 있다. 그 중 한포장은 농산물, 문무장은 축산물, 누천장은 해산물, 신남천장은 공산품을 각각 주요 거래품으로 한다.

교통은 평부선 철도가 평산-남천-서흥군 신막을 지나며, 이와 병행해 1등국도가 지나고 있다. 남천과 신계, 금천군 시변리와 해주 등지를 각각 잇는 2등도로와 3등도로가 있다.

읍·면

[남천읍南川邑]

군의 동북단에 위치한 읍. 면적 151.84㎢, 인구 1만 9447명(1944년 현재). 읍 소재지는 신남천리이다. 본래 옛 평산군의 보상면(寶上面)과 보하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 면을 합해 보산면(寶山面)으로 했고, 1937년 읍으로 승격되어 남천읍으로 개칭하였다.

서부에 영덕산, 동북부에 국수봉(國水峰, 387m) 등이 솟아 북부는 대체로 산지가 많다. 그러나 남부는 200m 이하의 평지로서 군데군데 작은 구릉이 기복되었을 뿐이다. 예성강이 동쪽 군계를 남쪽으로 흐르며 도중에 남천을 합치는데, 이들 강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수리시설도 잘 되어 각종 농작물의 재배에 적당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밀·조·박하·과실·팥 등이다. 그 중에서도 사과는 품질이 좋아 ‘황주사과’라는 이름으로 외국에도 수출한다. 삼가리·산막리·싸리재 등지에서는 천연슬레이트가 많이 채취된다. 삼가리에는 슬레이트가공공장이 설치되었으며, 삼가리 동막마을에서는 품질이 좋은 화강암이 산출된다.

면의 서남부를 경의선철도가 남북으로 통과하고 남천역이 있으며 경의가도가 경의선에 병행하고, 북쪽의 신계, 동쪽의 시변리, 서남쪽의 평산온천 등 각 방면에 2등도로·3등도로가 통하는 등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어 편리하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신남천(新南川)·남천(南川)·보산(寶山)·노동(盧洞)·양암(陽巖)·월하(月下)·운천(雲川)·두무(斗武)·삼가(三佳)·수구(水口)·갈탄(葛灘)·산막(山幕) 등 12개 이가 있다.

[고지면古之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08㎢, 인구 5,132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서오리이다. 남부에 천지산(天地山, 372m)·불지산 등이 솟았고, 그 여맥이 북부 전역에 미치어 100m 내외의 구릉을 곳곳에 기복시킨다.

예성강의 지류인 고지천이 면의 북부를 흘러 연안에 소규모의 기름진 평지를 전개시켜 이 면의 주요 생산지와 거주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팥·조·과실 등이다. 특히 이 면의 풍토가 밤과 배의 생육에 적당해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광업으로는 금릉리의 천저산(千猪山)과 달성리·서오리에서 금·은을 채굴하는데, 그 중에서도 서오리의 사금광은 1940년대에 성황을 이루었다. 송정리에 주물공장이 있으며, 면 일대에서 제조되는 풍석(돗자리)과 자리(지적)는 다른 지방에까지 판매된다.

서오리를 중심으로 각 주요 마을에 연결되는 등외도로가 있을 뿐 교통은 불편하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서오(書梧)·대룡(大龍)·송정(松亭)·금릉(金陵)·완정(浣亭)·달성(達城)·봉암(鳳巖)·세관(洗冠) 등 8개 이가 있다.

[금암면金巖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6.23㎢, 인구 7,004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한포리이다. 서남부에 학현(鶴峴, 182m), 북부에 봉화산(峰火山, 214m) 등이 솟아 있지만 대체로 평지가 많다. 특히 동남단을 남북으로 흐르는 예성강 연안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주요 생산지대가 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콩을 비롯해 쌀·보리·대마 등이다. 그 중에서도 콩은 무와 함께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저탄리는 옛날부터 교통의 요지로 도진이 있었고, 강변에도 저탄원(猪灘院)이 있었다. 경의선 철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지나며, 한포역이 있다.

철도와 병행해 경의가도가 통하고, 각 주요 마을을 연결하는 등외도로도 나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한포(汗浦)·대촌(垈村)·강정(江亭)·필대(筆垈)·부정(斧亭)·재궁(齋宮)·용촌(龍村)·화암(花巖)·저탄(猪灘) 등 9개 이가 있다.

[마산면馬山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3.19㎢, 인구 7,331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한촌리이다. 서북부에 관모산·각호산(角虎山, 503m) 등이 솟아 일반적으로 산지대이지만 남부는 100m 내외의 구릉이 기복되었고 평탄한 면도 많아 경작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 등이며, 특산물로 인삼이 있다. 면의 전지역에서 품질이 좋은 밤이 산출된다. 곳곳에서 고령토를 생산할 수 있어 요업이 발달했는데, 그 제품은 ‘평산옹기’로 불린다. 금천∼해주간의 2등도로가 면의 남부를 동서로 통과하고, 도중에 주요 마을에 연결되는 등외도로가 나 있어 교통은 불편하지 않다.

유적으로는 당후리에 동양서원이 있고, 면의 동부에 임꺽정의 활동 근거지였으며 병자호란 때에 백성들의 피난처였던 자모산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한촌(漢村)·천초(泉草)·성기(聖ㄱ基)·대경(大慶)·은촌(隱村)·서촌(西村)·가동(稼洞)·도평(桃坪)·간평(間坪)·석수(石手)·당후(堂后)·주답(注畓)·입암(立巖) 등 13개 이가 있다.

[문무면文武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31.27㎢, 인구 1만 873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문구리이다. 멸악산을 주봉으로 하는 멸악산맥이 면의 중앙부 남쪽을 동서로 뻗어내려 서단에 단강산(丹江山, 480m)·옥녀봉(玉女峰, 408m), 동북단에 천괘산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 사이를 재령강의 지류인 은파천(銀波川)이 흘러 여러 곳에 작은 분지형 평지가 형성되었고, 이와는 달리 면의 동남부에는 누천의 지류인 노천이 흘러 유역에 규모는 작지만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콩·보리·조 등이다. 고산리에서는 양봉이 활발하며, 면의 전지역에서 특산물로 잎담배가 재배된다. 은파천을 따라 동서로 통하는 등외도로가 있고 도중에 주요 마을을 연결하는 등외도로가 있어 교통은 불편하지 않다.

명승지로는 고대웅장한 멸악산이 있고 산에는 ‘천자(天子)의 분묘’가 있다고 한다. 산의 남쪽 절벽에 폭포가 있어 장관을 이룬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문구(文區)·화원(花院)·창평(昌坪)·고산(孤山)·양어(養魚)·구손(舊孫)·물안(物安)·자창(自昌)·미로(未老)·재명(才明)·금은(金銀)·지당(池塘)·대택(大澤)·화랑(花浪)·청수(淸水)·한정(寒井) 등 16개 이가 있다.

[상월면上月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4.31㎢, 인구 5,128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촌리이다. 동남부에 멸악산맥에 속하는 단강산 등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은 북쪽으로 뻗어내려 곳곳에 100m 내외의 구릉을 기복시킨다. 그 구릉 사이를 기린천(麒麟川) 및 작은 내들이 북쪽으로 흘러 은파천으로 들어가는데, 그 유역에 소규모의 저지가 형성되어 이 면의 주요 생산지대 및 거주지역이 된다.

주민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는데 밭농사가 주가 되며 주요 농산물은 보리·밀·콩·조·면화 등이다. 면의 동부에 남북으로 통하는 3등도로와 주요 마을에 연결되는 등외도로가 개설되어 있지만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녹탄리에 교동인씨(喬洞印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신촌(新村)·동막(東幕)·녹탄(綠灘)·계동(桂洞)·하월(下月)·석교(石橋)·용수(龍水)·대촌(大村) 등 8개 이가 있다.

[서봉면西峰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1.19㎢, 인구 9,304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당우리이다. 서부에 천괘산·설라산(雪羅山, 408m), 남부 중앙에 철봉산(鐵峰山, 503m), 북부에 금동산·청룡산 등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은 전역에 미쳐 곳곳에 100∼200m의 구릉을 기복시킨다.

서남쪽 고지면과의 경계에 누천이 흘러 예성강으로 들어가고 북서부 산지에서 발원하는 여러 작은 하천들도 모두 예성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이들 하천 연안에는 작은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보리·조 등이다.

광업으로는 철봉산에서 금·은이 채굴되고, 해수리와 범안리에서는 품질이 좋은 백색 대리석과 화강암이 산출된다. 경의선철도가 면의 동단을 지나지만 주민들은 남천역을 많이 이용한다. 남천읍에서 해주 방면으로 2등도로가 지난다.

명승지로는 당우리의 용두천 상류에 천상정(川上亭), 어사천리에 삼모정, 만탄리에 맹동과 종유동(鍾乳洞)인 금주굴(金柱窟)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당우(塘隅)·장륙당(藏六堂)·범안(泛雁)·봉동(鳳洞)·어사천(御史川)·삼산(三山)·용두(龍頭)·월봉(月峰)·해수(海水)·주촌(舟村)·진포(進浦)·상령(商嶺)·철봉(鐵峰)·만탄(晩灘) 등 14개 이가 있다.

[세곡면細谷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100.95㎢, 인구 9,540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누천리이다. 서부에 장성산(長城山, 245m), 중앙부에 응봉산(鷹峰山, 287m), 남부에 독정산(獨亭山, 212m) 들이 연달아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면 전역에 미치어 100m 내외의 구릉을 곳곳에 기복시킨다.

북쪽 신안면과의 경계를 예성강의 지류인 누천이 동서로 흐르고, 면내의 작은 하천들도 모두 이에 합치며 연안에 비교적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그 중 누천리에 있는 장수평(長水坪)은 경지면적이 약 200여㏊이고 수리시설도 잘 되어 있어 이 면의 주요 생산지대가 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보리·조·팥 등이다. 광업으로는 생금리에 중석광과 형석광이 있다. 남천∼해주간의 2등도로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통과하고, 누천리에서 신원(新院) 방면으로 등외도로가 나뉘며, 광평리에서 각 주요 마을을 연결하는 등외도로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유적으로는 생금리에 효자교(孝子橋)가 있다. 군동리에 남양양씨(南陽梁氏), 진보리에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누천(漏川)·적성(赤城)·군동(群洞)·석교(石橋)·오포(梧浦)·진보(眞寶)·운봉(雲峰)·생금(生金)·죽동(竹洞)·응촌(鷹村)·덕촌(德村)·광평(廣坪)·수동(修洞)·은동(隱洞)·도천(道川) 등 15개 이가 있다.

[신암면新巖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143.10㎢, 인구 1만 96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배천리이다. 서부와 남부에 옥녀봉·각호산 등이 솟아 산지대를 이룬다. 북쪽 중앙부에는 멸악산맥의 주봉이 되는 멸악산이 솟아 그 산줄기가 동서로 뻗어 문무면과의 경계가 된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하는 여러 작은 내들은 누천에 합쳐 동남쪽의 면계로 흐르고 동부에는 주암천(舟巖川)이 흘러 누천으로 들어간다. 이들 하천 연안에는 비교적 넓은 평지가 전개되어 주요 농경지 및 거주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보리·조·면화·밤 등이다. 특히 월봉리의 월웅산밤은 어느 지방보다도 수확량이 많다. 광산자원으로는 적은 양이지만 곳곳에서 형석광이 발견된다. 누천∼청석두리간의 3등도로가 면의 남부 누천을 따라 동서로 횡단하고, 이 도로에서 북쪽의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나뉘지만 대체로 교통은 불편하다.

명승지로는 원전리에 문회암(文會巖)과 그 북쪽 성북리에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하는 상암정(象巖亭)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배천(白川)·수회(水回)·장동(長洞)·원전(院田)·재동(齋洞)·대촌(大村)·당평(堂坪)·주상(舟上)·성북(城北)·청룡(靑龍)·태봉(台峰)·반월(半月)·가정(柯亭)·월봉(月峰)·남산(南山)·검현(劒峴)·문림(文林) 등 17개 이가 있다.

[안성면安城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4.04㎢, 인구 8,115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물개리이다. 남부에 멸악산맥에 속하는 천괘산·청룡산·금동산 등이 연달아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북부로 뻗어내려 곳곳에 100∼300m의 구릉을 기복시킨다.

예성강의 지류인 남천이 면내의 작은 하천들을 합하면서 동남류하는데, 그 연변에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로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조 등이다. 칠보산에서 당귀·백출·만삼 등 각종 한약재를 많이 재배한다.

총수리에서 청석슬레이트가 산출되어 인근 군면에 출하된다. 경의선철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통과하며, 면의 중앙에는 물개역이 있다. 경의가도가 경의선과 병행해 지나며, 면내를 동서로 횡단하는 1등도로와 등외도로가 나 있다.

명승지로는 총수산 동쪽 기슭에 옥류천이 있다. 양촌리에는 가평이씨(加平李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물개(物開)·설현(雪峴)·총수(葱秀)·발참(撥站)·속실(粟實)·양촌(陽村)·제암(祭巖)·덕암(德巖)·당인(唐仁)·마유(馬踰)·유천(楡川) 등 11개 이가 있다.

[용산면龍山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0.56㎢, 인구 5,188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석탄리이다. 면의 동부에 멸악산맥에 속하는 관모봉(冠帽峰, 446m)·국사봉(國士峰, 273m) 등이 있고, 남부에 목단산(牧丹山, 304m), 북부에 주지봉 등이 솟아 있으며, 그 여맥은 면의 전역에 뻗어내려 다시 미수봉(眉秀峰, 271m)·관봉 등의 구릉을 기복시킨다.

따라서 면의 북동부는 산지가 연달아 있고 서남부는 구릉성 산지의 지형을 형성하는데, 그 사이에 화양강이 흘러 하천 유역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콩·밤·인삼 등이다. 그 중에서도 밤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면 전역에 걸쳐 고령토가 많아 곳곳에 도요(陶窯)가 설치되었으며, 그 제품은 ‘용산옹기’라 해 인접군면에 판매된다. 해주∼평산간의 2등도로가 면의 남부를 동서로 횡단하고, 이 도로에서 북쪽으로 여러 등외도로가 나뉘지만 대체로 교통은 불편하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석탄(石灘)·평촌(坪村)·두동(杜洞)·화촌(花村)·석사(石沙)·미수(眉秀)·광암(廣巖)·노동(老洞)·삼봉(三峰) 등 9개 이가 있다.

[인산면鱗山面]

군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136.41㎢, 인구 6,913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기린리이다. 남부 벽성군과의 경계에 운달산이 솟았고 그 주맥 동단에 주지봉, 중앙부에 부아산(負兒山, 455m), 북부에 불수산·옥녀봉·주봉(周峰, 253m) 등이 연달아 솟았다.

이러한 남북 산지 사이에 동서로 긴 평야가 전개된다. 이 평야 동쪽에는 기린천이 흘러 은파천으로 들어가고, 서쪽에는 곡천(曲川)이 흘러 재령강에 합친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보리·밀·조 등이며, 농가의 부업으로 누에치기와 축우를 한다.

광업으로는 수마리에 금광이 있고, 곳곳에서 고령토가 생산된다. 남부산지에 도로가 미비해 불편하지만, 북부는 누천∼청석두리간의 3등도로가 통과하고 이 도로에서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나뉘어 교통은 불편하지 않다.

유적으로는 기린리에 관북사와 영소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기린(麒麟)·낙촌(洛村)·허사(許沙)·건천(乾川)·평촌(坪村)·강도(綱桃)·주련(住輦)·진천(眞川)·대미(大美)·토옥(土沃)·진석(眞石)·수마(水麻) 등 12개 이가 있다.

[적암면積巖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36.41㎢, 인구 7,979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온정리이다. 남쪽에 국수봉, 동북단에 불지산(佛芝山, 341m) 등이 솟아 그 여맥이 면내에 미치어 곳곳에 100m 내외의 구릉을 기복시킨다.

그러나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지대가 낮아 경작지로 이용되는데 그 중에서도 예성강의 지류인 고지천(古之川) 유역은 토지가 기름지고 관개시설도 잘 되어 각종 농산물이 풍부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보리·조 등이다. 농가의 부업으로 누에치기를 한다.

남천∼해주간의 2등도로가 북부를 통과하고, 이 도로에서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통하지만 대체로 교통은 불편하다. 유적으로는 위동리 등 4개 마을에 걸친 황의산 아래에 황희가 은거 휴양하던 유지가 있고, 면곡리에 구봉서원, 녹동리에 신안의 유허비, 신답리에 서보(徐輔)의 옛터가 있으며, 명승지로는 국수봉에 조개우물, 온정리에 알칼리성 단순천인 평산온천이 있다.

녹동리에 영산신씨(靈山申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온정(溫井)·송암(松巖)·신답(新畓)·갈산(葛山)·면곡(綿谷)·위동(位洞)·한정(寒井)·녹동(祿洞)·세동(細洞)·행정(杏亭) 등 10개 이가 있다.

[평산면平山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75㎢, 인구 3,864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은담리이다. 본래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읍면(外邑面)이었는데 그 뒤 평산면으로 개칭하였다. 대체로 전역이 평야로 되어 있는데 면의 중앙부를 예성강이 남북으로 곡류해 지류인 구연천(九淵川)·남천과 함께 유역에 기름진 평야를 전개시킨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조·밀·과실·대마 등이다. 특히 과실 중 배의 생산이 많아 옛날부터 명산지로 손꼽혔다. 경의선 철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가며 평산역이 있다. 철도와 병행해 경의가도가 통과하며 은담리를 중심으로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개설되어 교통은 편리하다.

유적으로는 산성리에 태사사와 태백산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은담(隱潭)·빙고(氷庫)·산성(山城)·단구(丹邱)·직하(稷下)·전도(傳道)·화산(花山) 등 7개 이가 있다.

광복 후 변천

황해북도 남부에 있는 군. 동쪽은 금천군, 서쪽은 인산군, 남쪽은 황해남도 봉천군, 북쪽은 서흥군·신계군에 접해 있다. 동경 126°13′∼126°35′, 북위 38°10′∼38°28′ 사이에 있으며, 면적 약 520㎢, 인구 13만 4500여명(1996년 추정)이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시 안성면의 대부분과 문무면·신암면·평산면의 일부지역, 남천읍·서봉면·금암면으로 개편되었다.

행정구역은 평산읍과 청학(靑鶴)노동자구, 월천(月川)·탄교(灘橋)·임산(林山)·산수(山水)·기탄(岐灘)·예성(禮成)·평화(平和)·복수(福水)·삼룡(三龍)·산성(山城)·한포(汗浦)·옥촌(玉村)·주포(舟浦)·봉탄(峰灘)·해월(海月)·청수(淸水)·봉천(鳳川)·삼천(三千)·용궁(龍宮)·와현(臥現)·상암(上巖) 등 21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평산읍이다.

[자연환경]

이 군은 북쪽과 서쪽이 높고, 동쪽과 남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북서쪽을 멸악산맥(滅惡山脈)이 달리고 있으며, 여기에 영덕산(永德山, 398m)·청학산(靑鶴山, 525m)·천괘산(天掛山, 470m)·멸악산(816m) 등이 솟아 있다. 이 사이의 안부(鞍部)를 평부선 철도와 1호국도(목포-서울-신의주)가 지난다.

북동쪽은 국수봉(國水峰, 387m)·학봉(鶴峰, 401m)이 솟아 있고, 이 사이를 예성강(禮成江)이 넓은 횡곡을 이루면서 남류한다. 서쪽은 멸악산에서 성북산(城北山, 360m)으로 이어지고, 남쪽은 예성강의 지류인 누천(漏川)이 곡류를 그리면서 봉천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쪽은 예성강 유역으로 심한 곡류로 흐르며 남부에서는 군계를 형성한다. 중앙은 철봉산(鐵峰山, 503m)과 같은 잔구가 남아 있기는 하나 대체로 200∼300m 가량의 낮은 구릉이 65%, 200m 이하의 땅이 30%, 300m 이상의 산지는 5% 가량의 넓이를 이루고 있다.

주요 기반암은 석회암·사암·역암·화강암 등으로 되어 있다. 연평균기온은 9.8℃, 1월 평균기온 -7.2℃, 8월 평균기온 24.6℃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325㎜로 우리 나라에서는 많은 편이다. 산림면적은 군면적의 64%를 차지하며, 소나무·참나무·이깔나무·밤나무 등이 주종을 이룬다. 산림갈색토가 넓게 분포하며 충적토가 쌓인 곳이 많다.

[산업·교통]

농경지는 군면적의 24%를 차지하며, 이 중 밭이 59%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이고, 그 밖에 벼·콩 등이 생산된다. 과일은 사과가 많이 생산되고, 배·복숭아 등도 재배되고 있으며, 남부의 주포리·봉탄리 일대에서는 밤을 가꾸어 ‘평양밤’으로 거래되고 있다. 또 ‘평산대추’는 유명한 특산물이다.

지하자원이 풍부해, 임산리 부근에서는 슬레이트, 봉천리 일대에서는 대리석·화강암 등이 많이 채굴되고 있으며, 군의 여러 곳에서 나는 형석은 질과 양에서 세계적인 자랑거리로 되어 있다. 이 군은 황해북도에서 사리원 다음가는 교통의 요지로 알려져 있다.

군의 중앙을 지나는 평부선과 함께 평양·개성간 고속도로, 1호국도(목포∼서울∼신의주)가 관통하고 있다. 또한 평산에서 신계를 거쳐 강원도의 세포(洗浦)에 이르는 청년이천선(靑年伊川線)이 건설되어 북한의 동서 교통의 간선이 되었다. 평산을 중심으로 봉천·해주·신계와의 사이에도 도로가 통해 있다. 예성강의 한포(汗浦)까지는 상당히 큰 배가 다닌다.

[교육·문화]

유적으로 구평산(舊平山)의 산성리에 있는 태백산성(太白山城)은 성안에 서문루(西門樓)·동문루(東門樓)·태사사(太師祠)가 남아 있고, 평화리에 있는 주류대(駐留臺)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義州)로 몽진(蒙塵)할 때 머물렀던 곳이다.

멸악산에는 주천자(周天子) 또는 여진(女眞) 금황제(金皇帝)의 시조묘라고도 전하는 천자묘(天子墓)가 있다. 멸악산은 멸악산식물보호구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갈나무를 비롯해 북부광엽수림(北部廣葉樹林)과 신갈나무가 섞인 혼합림으로 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산성리에 평산향교가 있었으나 그 터만 남아 있고, 한포리에 있던 동양서원(東陽書院)도 6·25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 태백산성 안에 신숭겸(申崇謙)을 비롯한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시조묘(始祖廟)인 태사사(太師祠)가 있는데, 6·25전쟁 때 불탔으나 지금은 복구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평산고등중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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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평산읍지』
『지방행정구역발전사』(내무부, 1979)
『황해도지』(황해도지편찬위원회, 1981)
『한국고고학지도』(한국고고학회, 1984)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이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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